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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망 Nov 14. 2023

교사생활 중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한 일

때는 바야흐로 10년전 여름. 5교시 중학교 3학년 역사 수업 중이었습니다. 우리반 수업을 한창하고 있는데 학생 한명이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 똥냄새나요."


"쓸데 없는 소리하지 말고 문제 풀어라."


대충 아이의 말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학생이 이야기합니다.


"샘. 진짜 똥냄새 나요."


대충 맡아보니 똥냄새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걸레냄샌가 싶어서 쓰레기통에 가보았는데 특별한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자. 누가 방귀한번 뀌었나보지. 조용히 모른척 해주자."


하고선 아이들을 잠재우고 돌아다니는데 땅바닥에 손톱만한 이물질이 보입니다.


"이놈들아. 점심을 먹고 제대로 안치우니까 교실에서 냄새가 나지."


당시엔 교실에서 점심급식을 할 때라 아이들에게 한소리하고선 대걸레를 가지고 와 닦았습니다. 그리고선 수업이 끝났죠. 6교시는 공강입니다. 밀린 업무와 내일 수업준비를 해야합니다. 업무를 보다가 다른 교무실로 가던 중에 남자화장실에서 소리가 납니다. 수업 종이 울린지 1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교실에 안들어간 학생이 있나 해서 들어갔더니 우리반 학생입니다. 6교시는 체육이라 밖에 있어야 할 녀석이 화장실에 있습니다.


"너. 수업 안가고 뭐하냐?"


아무말 하지 않고 나를 보고 당황한 학생. 그 옆을 보니 세면대 두군데가 막혀서 갈색물이 가득합니다. 학생의 교복바지는 젖어있습니다. 세면대 옆에 놓여있는 체육복 반바지는 빨다가 만 모양입니다. 바로 상황파악이 되었습니다. 아까 났던 똥냄새. 바지를 빨고 있던 학생. 세면대에 가득한 갈색물.


학생은 교실에서 똥을 쌌습니다. 화장실에 가지못해 바지에 실례를 했고 젖어버린 바지를 가리려 체육복 반바지를 입었으나 함께 더러워진 체육복 반바지. 그것을 빨기 위해 노력했던 세면대의 흔적. 그 모습을 보자 딱 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X 됐다.'


이제 겨우 8월인데 남은 4개월을 학교에서 바지에 똥싼애로 살아야할 이 학생의 학교생활은 말그대로 X됐습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핀 후 아이 옷을 벗깁니다. 화장실 안쪽으로 밀어넣고 호스를 가져다가 물로 씻깁니다. 빠르게 하지만 정확하게 씻긴 후 교무실로 돌아와 학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옷가지들을 챙겨서 입힙니다. 그 사이 세면대를 정리합니다. 막힌 곳을 뚫고 청소솔을 가져다가 더러운 이물질 들을 흘려보냅니다. 그 때 화장실에 들어오는 다른 반 학생. 급히 내쫓으며 이야기합니다. 지금 화장실 청소 중이니 다른 층으로 가라.


아이를 정돈하고 아버님께 전화합니다. 학생이 몸이 안좋은 것 같아 조퇴시키는 것이 좋겠다. 장염일 수 있으니 병원가도록 하셔라. 화장실 정리를 끝내고 학생 옷을 봉지에 담아 밀봉해서 건내주고 내 차에 학생을 태워 집으로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학생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 선호야(가명). 너는 지금 장염이야."


"저 장염 아닌데요."


"아니. 잘 들어. 너는 지금 장염이야. 지금 뭐라고?"


"장염이요."


"그렇지. 너는 지금 장염이야. 알았지?"


"네."


그렇게 학생을 집에 내려주고 학교로 돌아옵니다. 이제 우리반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줘야 합니다. 7교시를 마치고 종례시간. 반장이 저를 모시러 옵니다.


"샘. 저희 종례...."


"알았어. 샘 금방 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최대한 무서운 표정과 무거운 태도를 취합니다. 그리고 3분 뒤 교실에 입장. 안좋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샘이 지금 기분이 별로 안좋아. 학기 초부터 누누히 말했지만 아프면 샘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어!!!!"


괜히 애들에게 화를 냅니다. 쥐죽은듯 조용한 아이들.


"아프면 샘에게 이야기하라고 했잖아!! 선호 지금 장염이야!! 장염!! 아파서 병원갔어!!!"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별안간 날벼락을 맞은 아이들은 어리둥절하지만 저의 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프면 먼저 항상 나에게 와서 말하라고!! 알았어??!!!!"


"네....."


볼멘소리로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인사 후 아이들을 집에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걱정스러운 마음에 교실을 들여다보니 아이들이 선호를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너. 어제 장염이었다며... 괜찮아?"





성공입니다. 선호는 똥쟁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호는 정말 장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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