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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망 Nov 28. 2023

교사실격

11월 초. 근 10년만에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으로 학생들도 저도 들뜬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호텔에 수영장이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야외수영장은 문을 닫았고 실내수영장은 밤까지 운영한다는 이야기.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우리반 학생이 저에게 부탁을 합니다.


"샘. 레크레이션 시간에 나와서 노래 불러주세요."


저는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나는 그런 자리 나가는 것 별로야. 너희들의 무대가 되어야 되는데 내가 나가면 샘만 기억에 남는다고."

(그런데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노래를 부름.)


학생이 다른 부탁을 합니다.


"샘. 그러면 수영장에 한번 빠져주세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물에 빠져달라고? 빠뜨리겠다는 이야기야?"


"아뇨. 학생들이랑 같이 물에 들어가달라는 이야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수영장이 있으면 당연히 물에 들어가야 되는게 아닌가?.......'


"상황 봐서 같이 놀자."


학생에게 대답하고선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 자유시간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수영장에 모였고 질서지도하기 위해 저는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수영모를 잘 챙기라고 일러주고 물에 같이 들어가 수영을 했습니다. 조금은 재미없게 놀길래 팀을 나눠주고 수영 시합도 시켜주며 첫번째 밤을 마무리했습니다. 정리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카운터에서 야외수영장도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전달해줍니다. 


"얘들아. 내일은 야외수영장도 개방한데."


다음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수영시간. 선생님들께 제가 수영장에서 애들 관리를 하겠다고 하고선 수영장으로 향합니다. 남학생도 여학생도 다같이 수영을 즐기러 나왔습니다. 날씨는 약간 선선했지만 아이들은 추위도 잊고 열심히 물장구를 치며 즐거운 수학여행 밤을 만끽하였습니다. 사진도 찍어주고 물도 뿌리면서 재밌게 보내다가 실내 수영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입구에서 남학생 한명이 호텔 직원에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수영장 타일에 발가락을 다쳐서 약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오셨고 저도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괜찮다는 말에 다시 가서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잠시 후 부장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 제 생각에는 이건 아닌거 같아요. 선생님은 여기 관리자로 오신거예요. 애들을 관리하겠다고 수영장에 오셨는데 학생이 다친 것도 모르시고 애들 통제도 안되잖아요."


유구무언입니다. 부장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학생들과 놀아준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놀고 있던 것은 저였던 것 같습니다. 


"네.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성하고 돌이켜보니 학생들은 수영모도 잊고 다들 물에서 통제가 되지 않게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정돈하고 상황을 정리해서 수영시간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다친 학생을 다시한번 돌보고 상태를 확인합니다. 많이 다쳤을 수 있어서 호텔 관리직원과 부장님이 병원에 다녀옵니다. 


점호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 교사의 자질에 대해 고민합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추억을 만들어주는게 교사의 역할인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수학여행을 즐기고 정해진 규율을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인가. 사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다친 학생을 생각하니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자고 하는 아이들에게 더 불을 지피며 학생보다 더 논 교사. 교사 실력입니다. 적당히 놀고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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