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미화한 유튜브와 그에 동조한 교사에 대하여
지난 광복절. 나왔던 뉴스였습니다. 당시 그냥 혀만차고 넘겼는데 다음날 수업시간에 학생이 저에게 이와 관련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때마침 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해당 영상이 뜨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해당 유튜브는 일제 강점기와 한일병합되기 전의 조선을 비교하면서 보건, 교육, 산업, 권리 등의 분야에서 더욱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들이 버젓이 있는데 왜 그대로의 사실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냐고 반문합니다. 일본은 분명히 잘못했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일본과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는 더 잘못되었다고 마무리를 짓죠.
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런 말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는 정말 개인의 자유가 있구나라는 생각과 도대체 왜 아직도 친일파는 척결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영상 마지막은 우리가 그러니까 한국 국민 대부분이 생각해 볼 문제라며 "일본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민족적 신앙에 가깝다." "논리나 이성이 아닌 감정과 애국에 호소해 왔다." 등으로 현재 일본에 대한 역사 인식을 비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착합니다. 정작 우리를 36년 동안 억압하고 짓밟고 빼앗고 죽였던 가해자는 여전히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데 피해자 입장에서 논리로 대항하자. 지성의 길로 나아가자. 건강한 담론을 이야기하자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예시를 들고 싶습니다. 돼지를 기르는 목축업자가 돼지가 먹는 여물을 최상의 것으로 바꾸어주고 큰 집을 지어주고 청소해 주고 건강검진까지 시켜줬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이때 돼지가 목축업자에게 느껴야 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는 목축업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또 우리는 이 목축업자를 돼지를 위한 좋은 목축업자라고 이야기합니까? 일제강점기 일본이 시행했던 많은 의료, 교육, 보건 분야의 정책들을 정말 우리 조선을 잘 살게 해 주기 위해 시행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초등학생 같은 너무 순진무구한 착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읽은 '불변의 법칙'이란 책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내용이 나옵니다. 7장 통계가 놓치는 것. 모든 것을 통계와 숫자로 접근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국방장관 직을 수행할 때 베트남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시상황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통계화하여 보고를 받았지만 계속 전략은 맹점을 드러냈습니다. 특수작전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랜스데일에게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맥나마라는 묻습니다. 이에 랜스데일이 대답하죠. "베트남 국민들의 감정입니다."
왜 일제강점기가 좋았다고 평가하는 주장들은 정확한 사실이라며 수치와 통계는 강조하면서 마찬가지의 정확한 사실인 일본의 조선과 한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던 일제의 정책들은 거론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난과 슬픔, 고통과 아픔을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며 호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그 감정들도 분명한 사실인데 말이죠.
수업시간에 일제강점기를 가르치며 항상 학생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얘들아. 일본 애들 어떻게 해야 돼?" 그러면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들이 이렇게 답합니다. "죽여야돼요." 그럴 때마다 꼭 강조하며 아이들의 태도를 수정해 줍니다. "아니야. 내가 이 부분을 가르치는 이유는 일본을 미워하고 공격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야. 당시 있었던 일들을 너희들이 바로 알고 그에 따른 일본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함을.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용서가 시작되고 양국이 서로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해줍니다. 제가 생각하는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과 정의는 이렇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개소리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