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이야기: 힘을 빼자
금요일 저녁, 금요일을 마무리하며 토요일을 기대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폰으로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다음 날 갈 카페를 찾아보는 것이다.
새로운 맛집과 카페를 찾는 것은 나의 소소하고도 소중한 취미 중 하나다.
카페를 찾아보고 블로그 리뷰를 살펴보다 오 괜찮은데? 싶으면
네이버 지도에 저장한다.
그렇게 저장된 카페와 맛집만 해도 800개가 넘는다.
처음에는 동네를 구분 지어 정리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도 귀찮아져서 뭉뜽그려 ‘내 장소’에 저장한다.
더하는 건 수도 없이 더할 수 있는데 삭제하는 건 쉽지 않아
지도의 별들은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중이다.
(네이버 지도 저장 개수에 한계가 있나요?)
여러모로 나는 타고난 맥시멀리스트다.
좋은 대로 다 저장해버리고,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다.
어디 나갈 때면 작은 가방 보다는 품이 큰 백팩을 선호한다.
큰 파우치와 읽을 책과 아이패드와 자판, 다이어리, 필통까지.
음료를 쏟을 수도 있고 충전이 필요할 수도 있고
혹시 모를 가능성에 나의 짐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다.
교실에서도 '가능성'에 대비한 나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채색 도구를 안 가져온 학생을 염두에 둔 모둠별 마카세트와 색연필 사인펜이 구비되어 있으며
어떤 보드게임을 좋아할지 모르니 종류도 다양한 보드게임이 한가득이다.
졸업을 앞둔 6학년들에게는 학교생활을 추억할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 학급문집을 1년 내내 만들고 롤링페이퍼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준비한다.
인디스쿨에서 선생님들의 정성이 담긴 전문적인 자료를 구경하다 보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막 저장해버리고,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욕심에 프로젝트를 펼친다.
일단 하고 보는 것!
장점이자 단점이고 나를 설레게 하다가 옥죄이게한다.
그래서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초라한 상황이 빈번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뚱뚱해지는 백팩처럼 꽉 찬 교실을 보며,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나 활동에 맥을 못 추는 나를 보며,
이대로라면 교실이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끔찍한 생각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는 과한 친절과
좋은 것을 주고 또 주고 싶은 오지랖이
한계가 없이 커지다가 펑 하고 터져버리기 전에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교실에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다같이 토의해서 정하는 학급 규칙을
교사가 제시하는 '이종대왕의 4원칙'으로 바꿨다.
학급 온도계나 칭찬점수도 없앴다.
수업에 집중하여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왜 아이들을 달래가며 보상을 주고 있었나 싶다.
학습 태도가 눈에 띄게 좋았던 날은 오후에 짬을 내어 교실 게임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반적인 생활 태도가 좋아서 선생님이 특별히 준비한 시간입니다."
생색과 칭찬이 적절히 섞인 멘트와 함께 풀어지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부가적인 프로젝트성 활동보다 수업에 집중했다.
힘을 빼도 될 과목은 기본에만 충실했다.
숨겨진 이야기, 자료가 풍부한 과목은 수업 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활동으로 변형시켰다.
인생을 살면서 내내 배웠던 것이 선택과 집중인데 교실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선택했고 집중하려다 보니 과부하가 왔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만의 기준이 세워지고 있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기준,
더하는 것 보다 덜어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심플하지만 기본 이상은 하는 것.
타고난 맥시멀리스트라 A를 하다가도 B에 눈이 가고 C도 고민이 되는 순간이 적지 않지만
오늘도 되새겨본다. 빼자! 빼자! 빼자! 힘을 풀자! 풀자!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