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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초등교사 이야기

by 망구리즘


3월 18일. 3월의 반을 지났다.


“와 벌써 3월 중순이다” 나지막이 내뱉었다.


듣고 있던 동학년 선생님들이 한 마디씩 거드신다.


“아직도 3월이라니 좀 절망스러운데요”


“하루는 엄청 정신없이 지나가는데 일주일은 긴 것 같지 않아요?”


“근데 5월 공휴일은 깜깜무소식이네요.

너무 멀다~~~”


“방학 디데이 세고 있습니다. 128일 남았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벌써’와 ‘아직도’ 사이를 오가다 보면 시간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정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너도, 나도 맞다.


다들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연초나 연말 모임에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는 표현까지가 첫인사말이 된다.


6번째 학생들을 마주한 지금.

나 또한 신규가 아니라 헌규라는 사실이 꿈만 같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고여있는 실력과 꼬락서니를 직시할 때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 스스로 묻는다.


초임 때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학창 시절부터 꿈꿔왔던 직장에서 내가 DIY 하는 교실이라니.

‘학급경영’이란 말은 24살 풋내기의 마음을 열띠게 했다. 그 말이 ‘지지고 볶기’와 유의어로 해석될 때까지는 1년이 채 안되었지만 말이다.


학부모 상담, 공개수업, 동아리,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동학년 회식, 직원체육 등 날 긴장시키고 설레게 했던 많은 것들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니 ‘일상’이라는 말로 변모했다.

익숙해진 것들이 쌓여 삶을 무뎌지게 만들고 웬만한 일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며칠을 준비하고 꼼꼼히 따져볼 만큼 중요했던 일들도 반복될수록 사소한 일이 되는 경험이 늘어가는 중이다.


익숙함에 능숙함도 따라오면 좋으련만 예나 지금이나 뭐 하나 수월히 해내는 것이 없다.

매년 새로운 학년, 새로운 업무로 업데이트된

골머리를 앓는다.
시종일관 1학년이나 6학년을 맡지 않는 이상 교사는 능숙과는 거리가 먼 직종인 것도 같다.

1학년도 6학년도 어려운 나는 앞으로도 ‘능숙’에는 자신이 없을 예정이고 ‘익숙’에도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살아온 기억이 늘어날수록 추억은 점점 짧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세계를 궁금해하고 도전까지 할 만큼의 열정과 깜냥은 되지 않기에 내일도, 내년에도 교사의 자리에서 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될 것을 안다.


미숙하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올 때에 편하고 익숙한 것에서 의지적으로 벗어나 도전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렇게 매년 달라지는 나와 교실을 발견하며 시간의 속도를 조금은 늦추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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