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독한 짝사랑의 끝

똑같이 사랑하는 건 없다.

by 망구리즘


마음에 거리낌이 없을 때는 일요일 저녁이 끔찍할 만큼 싫지 않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꽤 괜찮게 받아들여진다.

아침에 나가 저녁이 되기 전 퇴근하는, 가끔 밝은 낮에 퇴근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한 직장이 있다는 것.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수고를 증명하는 월급을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게만 여겨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저 감사한 날들. 이래도 되나 싶은 날들.

새 학기가 유유히 잘 흐르고 있다. 올해 6학년 아이들은 참 괜찮다.

괜찮다는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년 6학년 아이들과 비교하여 모든 면에서 훨씬 수월하다.


한 번만 말해도 모둠을 척척 만들고

시간을 들여 준비한 수업에 기대 이상으로 부응한다.

갑작스러운 시간표 변경에도 왜요?라고 따지지 않는다.

사물함 위에 올라가지 않고 칠판에 마음대로 낙서하지 않는다.

선생님 물건에 손대지 않고 반항 어린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지고 있을 때도 분을 못 이겨 체념하거나 씩씩대지 않는다.

아침 시간이 고요하다.


고작 3주 봤지만 작년과 다른 점을 읊으라면 숨이 차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이다.

3주 동안 위로도 받았다. 작년 동안 ‘내가 못나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나를 갉아먹고 있던 죄책감과 자괴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 탓이 아니었구나. 그 아이들이 평균 이상으로 어려웠던 거구나.

사춘기가 세게 온 아이들이 유독 우리 반에 많았던 거구나.


그럼에도 이상하지.

작년을 떠올려보면 퇴근 후 집에서도 내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학교와 집은 완벽히 분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잘 지내지? 뭘 해주지? 어떤 활동을 해볼까?라는 고민을 하는 날 보며

이건 진정한 사랑인가, 무지성 사명감인가, 바꿔보겠다는 도전 의식인가 생각했다.


늘 좋은 행동만 하다가 한 번 삐끗한 사람과 평소에 무뚝뚝한 사람이 한 번 호의를 베풀었을 때 후자의 사람에게 더 큰 감동과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난 이 아이들에게 그런 쪽으로 훈련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아이들과의 관계가 쌍방이라면 작년은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목이 아프다가도 수업 시간에 똘망똘망 쳐다보는 눈이나

열심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정수리를 볼 때면 금세 사르르 녹았다.

불필요한 말대꾸로 자주 내 마음을 상하게 했던 아이가

선생님 먼저 드셔야 한다며 내 식판을 들고 기다리던 순간으로 오후를 힘차게 보낼 수 있었다.


대체로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나는 너무 쉽게 감동했다.

10개를 주고 10개를 받아야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1~2개가 왔을 때 그걸로 충분했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알게 되면 한껏 너그러워지듯,

저마다의 이유로 삐뚠 구석이 있지만 들키기 싫어 꼭꼭 숨겨놓은 속내에는 작고 여린 마음과 불안이 있단 걸 알기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일주일에 1번은 꼭 나를 찾아온다.

여전히 까불까불 얼굴을 하고선 동아리에서 떨어졌다느니 반장 선거를 했다느니

이야기보따리를 한 아름 들고 옆에서 조잘조잘 풀어낸다.

어느 날은 박카스 한 병을 달랑달랑 들고 온다.

또 어느 날은 아무것도 못 사 왔다며 잠깐 머쓱해하기도 한다.

나는 교실에 가득한 하리보 젤리나 자유시간이나 그런 것들을 손에 쥐어주고 보낸다.


아직은 헐렁한 교복이 몸에 맞고, 말갛고 어린 얼굴에 선이 생길 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직 초등학생티를 다 벗지 못한 3월이 지나 중학생의 신분이 더 익숙해질 때 발길은 점점 끊길 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무뎌져 덜 쓰라린 이 지독한 짝사랑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에 온 마음을 쏟아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색안경을 벗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