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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구리즘 Sep 01. 2023

올해 여름휴가는 독서

여행은 걸어 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연수가 다 끝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나만의 오롯한 여유를 즐길 차례다.

어떻게 하면 휴가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방 안에 박혀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에

청춘도 시간도 아깝다고 느껴졌다.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혼자여행’, ‘근교여행’, ‘힐링’, ‘맛있는 음식’ 등등 가지를 뻗쳐나갔다.

가까운 일본을 다녀올까?

해외여행에 대한 생각이 스쳤지만

홀로 해외여행은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금세 해외라는 단어는 지워졌다.

스마트폰으로 가까운 경주, 울산, 창원을 검색하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보통 여행을 계획할 때는 두근거림이 있지 않나.

설렘보다는 귀찮음의 감정이 지배적이었다.

반나절을 고민하다가

그냥 대구를 가서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책이나 실컷 읽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경조사가 많아 수중에 돈도 없을뿐더러

(나그네처럼 통장에 살짝 스쳤다가는 내 월급)

엄마 아빠도 항상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위문차 방문하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밖 산과 강

대구는 제1의 고향이다.

곧 나의 본집이 있는 곳이다.

지금 내가 몸을 누이고 있는 곳 말고도 언제든 편안하게 쉼을 취할 수 있는 곳이 다른 지역에 있다는 것이 꽤 행복한 일임을 느낀다.

무궁화호를 타고 1시간 40분을 달려 도착하는 대구는 괜히 여행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평일 아침 기차는 사람도 많이 없어 좋아하는 창가자리를 선점할 수 있고, 옆자리에 큰 가방을 둘 수도 있다. 양반다리를 하며 갈 수도 있다.

부지런히 아침에 집을 나서 넉넉하게 부산역에 도착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샀다.

향긋한 커피냄새와 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 직원들.

붐비지 않는 익숙한 공간에 잠깐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플랫폼에서 기차가 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한껏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기차에서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새로운 찬양과 가요를 접한다.

평소라면 좋아하는 익숙한 노래만 들었을 텐데

기차와 기차밖 풍경이 주는 여유가

여행자의 마음에 틈을 만들어준다.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나무가 흔들리는 대로

나도 느슨해져 본다.

귀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과 눈에 보이는

푸른 것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넓은 세상에 나는 별 거 아니구나 흘러가도 되는구나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온전한 나로 있게 해 준다.

비어진 머릿속에는 그 공간만큼의 생각들이 차오른다.

카페에서 주문한 것들

‘처음 오셨어요?’

대구 카페에 가면 늘 듣는 질문이다.

오늘부로 4번째 출석인데 띄엄띄엄 가니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하다.

‘아니요 전에 왔어요’ 머쓱한 듯 웃으며 대답하고

당당히 4번째 포인트를 적립한다.

아침 8시부터 영업하는 부지런한 카페는

고소한 빵냄새와 진한 원두냄새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사장님의 친절함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는 곳이다.

대구에 살았으면 일주일에 4번은 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얼른 자리부터 잡는다.


<이어령의 마지막수업> 책을 펼쳐서 읽는다.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문장을 기록하고 수집한다.

그렇게 블로그에 쌓인 책과 문장이 늘어나면서 머릿속 저장공간 용량은 비워진다.

동네카페답게 아늑하며 요란하지 않은 백색소음에 둘러싸여 책은 술술 넘어간다.

2시간이 조금 지나고 번뜩 SNS에서 봤던 이디야커피 3시간 제한 문구가 생각나 커피를 하나 더 주문한다.

차가운 카페라테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책으로 몽글몽글 녹혀진 마음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며

주어진 2시간을 충분히 만끽한다.


오랜만에 휴대폰을 오랫동안 덮어두고

아이패드와 자판, 책 한 권 까지.

오롯이 나 혼자 보내는 특별여행을 즐겼다.


여행은 걸어 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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