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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구리즘 Sep 11. 2023

진정한 흔들림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않은 것

서이초 선생님의 추모식을 다녀오다.

유튜브에는 방송 프로그램을 짧게 요약하거나 자극적인 부분만을 편집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온다.

가끔 울고 싶을 때 일부러 슬픈 영상을 찾아본다. 내 눈물을 쏙 빼게 하는 1등 영상이 있다. (특별히 공유하겠다.)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한다.

아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후 다 끝났다 싶었을 때 같은 질문에 대상만 바꿔서 다시 설문조사를 한다.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들의 대상이 아버지로 바뀐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흐느끼는 젊은 아버지들의 표정에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도 그 처지에 몰입되어 눈물이 주르륵 난다.

아버지의 영상편지가 나오고 화룡점정으로 아버지가 직접 손자, 손녀를 안고 방에 등장하며 젊은 아들을 안아주거나 토닥이는 모습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댓글에는 ‘광고 기획자 보너스 조회수만큼 줘야 한다 ‘ ‘안구건조증 심해서 인공눈물 없을 때 자주 보러 옴’ 등등

너도나도 실컷 눈물을 흘리고 가는 영상임을 인증하고 있다.

(심지어 카드사에서 만든 홍보영상인데 정말 잘 만들었다…)


‘너의 눈물을 쏙 빼겠다’는 목적이 확실한 영상에 약 5분간 눈물이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나면

알고리즘에 뜬 슬픈 영상 2~3개를 순회하다가 유턴하여 또 다른 영상을 만나 웃거나 분노하거나 스르륵 다른 감정을 찾아간다.

실컷 부모님을 떠올리며 오열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영상을 보기 전과 다름없는 내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히 알지 못하며,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빈도는 늘지 않았다.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의 49제 추모식을 다녀왔다.


2년 차 교사의 삶을 내던져야 했던 무게를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초, 중, 고 가릴 것 없이 연이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더 관심 있게 기사들을 보게 된다.

댓글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댓글도 있으며 함께 슬퍼하는 댓글도 있다.

가끔 아주 가끔 이런 댓글이 있다.

‘그래도 교사는 공무원 아니냐.’

‘어쨌거나 몇 달 힘들고 방학 때 꿀 빠는 거 아니냐.’

‘힘들면 교사 말고 딴 거 하면 되지 할 만하니깐 하고 있는 거 아니냐.’

‘교사보다 더 힘든 직종 많다.’


표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교사라서 부정적인 댓글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굳이 더 큰 아픔이 있다며 끌고 와 비교해 버리는,

한 사람의 삶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을 정치로 돈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런 말들.


너도 아플 수 있고 슬플 수 있는데 ‘나’만 남아있는 것 같은 현시대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고 엉망으로 얽혀있는 지금의 시대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했다.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발달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공감이다.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건 절대 기계가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충분히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반은 나름 평화롭다. 학기 초에 학생들 간의 관계 문제로 몇 번의 민원이 있었지만 악성 민원으로 번지지 않았다.

참 다행으로 여겼다. 다행으로 여기며 조용히 무사히 1년을 지내면 되겠다 생각했다.

서이초 선생님의 일이 있었을 때 안타까웠다.

‘왜 죽었을 까 왜…’ 가늠할 수 없었다.

안타까웠고 슬펐고 그게 다였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했다.


추모식을 다녀온 후에 비로소 흔들렸다.

수많은 선생님들의 교직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럽지만 '나' 또한 ‘너’ 일 수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내가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누구나 다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무너진 교권을,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교사가 지켜짐으로써 학생들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학생들이 책임과 아픔과 공감을 아는 사회 일원으로 자라나야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던 교사들을 스스로 지키기로 했다.


그제야 진정한 흔들림이 있었다.

추모식을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후의 나는 많이 변화했다.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남은 저희가 바꿀 테니 부디 평안하시길.


오늘 하루 무탈했던 것이 미안합니다…

무탈했던 것에 안심한 것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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