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근거하여
스타트업에 들어오기 전에는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조금만 고생하면, 몇 십억대의 투자를 받고 중국의 알리바바는 물론, 나아가 스스로가 한국의 마크 쭈커버그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스타트업 'XXX' 시리즈A 투자유치! VC로부터 X억 유치! 혁신센터 blahblah 청년들이여 창업하자 블라블라...인턴을 마쳤던 곳에서 정직원 제의를 마다하고, 뛰쳐나와 개발을 배울거라 설치기도 하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던 나에겐 마치 잔다르크 같은 이름이었다. '스타트업'과 함께라면 이 모든 고난을 헤치고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회사 생활이 힘겨워, 취업준비가 고되어, 재밌어 보여서
스타트업에 가려고 한다면
절대 그러지 마라.
특히 당신이 경력자가 아니라면,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하는 '쌩'신입이라면 '쌩'초기기업에는 절대, 절대, 절대 들어가지 마라. 전문성의 ㅈ도 쌓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낼 수도 있고, 운영에 민폐가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 공고를 보다보면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우대조건 : 스타트업 업무 경험' 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필자는 현재 회사에 대표를 제외한 첫멤버로 들어가서 개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를 했다. 약 9개월을 그렇게 일했다. 표면적으로는 마케팅 직무로 들어갔지만 세부내역들을 따져보면
<보도자료 작성, 미디어배포, 컨텐츠 제작(블로그,페북,동영상, 이미지 등), 매체 조사, 국내외 리서치, 검토, DB관리, 번역, 경쟁사 파악, 통계, 기획, 제안서 작성...etc etc>
였고, 약 11개월간은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람도 있었고, 뿌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다른 인력들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부분은 과거의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되었는데, 이전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우습지만 당시에는..) 그에 비하자면 여기서 하는 업무는 '나의'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매우 즐기면서 했다. 약 11개월간은 명절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얼른 회사에 나가고 싶어 안달을 내기도 하고, 집에서 일하기도 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영역에서의 전문성은 떨어지고, 내가 일을 ㅈ 같이 하던, ㄱ 같이 하던 나를 피드백 해 줄 사람은 없다. 어느정도 규모의 회사에서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나를 갈구는 상사가 있다. 더러워도 하다보면 실력이 늘기도 하고, 어디서 ㄱ가 짖나 싶어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신입'인데다가, 모든 것을 담당해야 한다면..그리고 스타트업 업무의 특정 상 이것저것 신경쓰다보면 깊이 들어갈 여유라고는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어느 정도의 실무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도 스타트업에 들어가기 전에 꼭 점검해보아야 할 문제다. 만약 실무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A라는 업무를 할 때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파악을 전혀 할 수 없고, 어떤 요소를 놓쳤는가도 알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건 그거대로 비록, 당신에게 많은 페이를 주지 못하더라도 일하라고 뽑아 뒀더니 일도 못하는 회사의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면, 가고자 하는 기업의 사이즈가 어떤지. 나를 가르쳐 줄 사수가 있는지 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 아이디어가 기본적으로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중개업체 제외) 이거나,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다면 절대 들어가지 마라.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인터뷰 당시 대표의 호언장담에 낚였기도 했고, 어문계 생으로서 돈냄새를 잘 못 맡은 것도 원인 중 하나다. 한창 스타트업 취업을 알아보던 타이밍과도 맞아 떨어져 '환상의 스타트업'이라는 콩깍지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도 큰 한 몫을 했긴 했지만..면접 당시 설명하는 서비스의 소개를 듣고, '오, 나라면 쓰겠는데?' 하는 안일한 생각에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을 수락하게 됐다. 당시에는 스타트업이라면 모두 로켓타고 날아갈 줄 알았고, 어플은 만들기만 하면 대박을 내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수익모델도 두루뭉실하게 나마 설명을 들었는데, 그 수익모델의 중요성을....그땐 왜 몰랐는지.
'돈냄새'가 나는 아이디어는 많지 않다. 제조업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찍어내서 팔기만 하면 어쨌든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모바일 업계에서는 게임이나, 이용은 무료더라도 수수료를 받고 파는 중개서비스들이 대개 투자자로부터 러브콜을 들을 뿐이다. 다행히, 필자의 회사는 의도와 기술을 인정받아서 다양한 공모전과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것보면 흔한 케이스 인 것 같기는 한데, 수익나기 전까지 '정부지원금' 받아서 당분간 운영하면 되지 라는 생각은 사실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다. 투자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자금이 부족한 곳의 경우 정부 지원은 단비 같은 존재이지만,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해 직접 돈을 벌지 못하면 언젠가는 문제가 터지고 만다. 정부 지원이 평생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거액을 투자하는 이유는 돈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내가 1을 주면 100을 돌려줄 수 있을만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템에서는 돈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심사관으로 나오는 VC들은 모두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 물었고, 우리가 내놓은 수익모델에 대해서도 고개를 젓는 것이 일상이다. "플랫폼을 키워 광고만 받아도 살만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광고가 들어오는 사이즈로 플랫폼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 특히 다루는 소재의 범위가 한정적일 경우에는 더욱더.
수상내역과 인적, 물적으로 인풋은 쌓여가는 데에 반해, 회사로서 가장 중요한 '수익'이라는 아웃풋이 없으니 그렇게 즐겁게 하던 업무도 더이상 즐겁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인풋에 비해 뚜렷한 아웃풋이 없을 경우에는 아무리 의도가 좋고, 아이템이 신박하더라도 종래에는 투자나 지원을 받는 것도 어려워진다. 피봇팅 밖에 답이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대기업 오너의 자질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대표가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생존의 여부가가 갈리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대표가 가진 인사이트가 정말 중요하다. 따라서, 그 혹은 그녀가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절대 그곳에 가지말아야 한다. 이 때의 이해는 '일반 상식적인 대화' 영역에서 부터다. 사람이 좋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대화도 논리적으로 이어나갈 수 없다면 직장생활에서 숱하게 하게 되는 미팅에서도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고, 사업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도 이 이해력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영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해능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대표가 개발자이든, 예술가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이해도가 떨어질 경우에는 창업교육을 수백시간을 듣더라도, 그것을 내재화 하지 못해 경영에 응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 전체에 큰 위협이 된다.
같이 일해 보기 전에 이걸 어떻게 아냐고? 면접 때를 노려라. 나의 대답도 중요하지만 그가 내 발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체크하라. 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문서답 한다면..후보에서 제외토록 하자. 만약 CEO와 동등한 입장에 있는 공동창업자가 있어 나와 대화가 통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일반사원과만 그렇다면 절대 들어가지 마라. 사원은 사원일 뿐, 모든 결정은 대표가 하기 때문에 그가 이해도가 떨어지는 이상 사원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대표가 좋은 결정을 내릴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 더 풀어보자면 '너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는 자성이 된다는 것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결국 풀어낸다. 일례로, 이전 회사 대표의 경우 필드에서 경력은 꽤나 뛰어났지만, 기획에서는 탄탄하지 못했다. 그것을 사외이사를 뽑아 기획 부문을 전문으로 맡기고, 회사를 살려냈다. 이렇게 자성이 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할 수 조차 없다.
똑똑한 대표를 찾아야 한다. 대표가 똑똑하다면 사원이 이해도가 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 그것을 중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프로젝트 자체가 산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사원보다 대표의 통찰력이 중요하며, 스타트업이 굴러가기 위한 최소의 필요조건이다.
규모가 커진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 창업 초초초초기의 스타트업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몇 년을 버틸 각오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당신을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사람으로 뽑은 것이지, 단순히 일만 해주는 직원으로 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단순히 사원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닌, 회사 운영의 큰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나는 책임감도 강하고 참을성도 좋은 편이다. 일생을 그렇게 버텨내 왔기 때문에 다행히 지금까지 이렇게 견뎌낼 수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지인들은 일이 ㅈ 같아도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을 보며 견뎌낼 수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스타트업은 결코 그렇지 않다. 소위 말하는 열정페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내 스펙이 이렇고 저렇고는 상관이 없다.
필자는 해외취업을 목표로 푼돈 모아 갔던 어학연수 중에 집안에 생긴 우환으로 급히 귀국 후, 간병생활을 하다가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 케이스다.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고, 나이도 취업시장에서는 늦은 나이였던 지라 어디에든 얼른 취직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대기업 공채에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인턴생활을 시작했다가 결국 스타트업으로 와버렸다. 구인시장에서의 나의 가치를 책정해 기입해왔던 기대연봉의 1/3, 정직원이 되었다면 받았을 초봉의 1/2, 어쩌면 인턴 시절보다 더 적은 페이를 받고도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옆에서 신경쓰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짓누르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성공하지 않는 이상 해결 할 수 없다.
들어올 당시에는 마치 로또를 사는 마음과도 같았다. 곧 성공할 거니까, 몇 달 정도는..그렇게 1년을 지냈다. 더 오래 인내해야 할 수도 있다. 2년, 3년..하지만 올해 이렇다할 아웃풋이 없다면 아마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내가 다시 한번 버텨낼 1년 동안 우리 회사가 성공할 확률은? 피봇팅, 급작스런 바이럴, 급작스런 성공, 급작스런 투자....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확률은 결국 1%일 뿐이다. 페이스북이 생겨나는 동안 죽어버린 수많은, 비슷한 것들을 생각해보라. 스타트업이란 그런 것이다.
당신이 근무하는 그 스타트업이 로켓을 타고 날아오르지 않는 이상, 로켓을 탈 때까지는 몇 년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다. 로켓을 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로켓을 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성공할 때까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살아 남는 것..하지만 그것이 제일 힘들다.
창업자가 물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사원으로 입사했더라도 성공이라는 맛을 보기 위해 들어왔다면 주위에서 들리는 지인들의 소식이나, 내 마음의 짐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의 인내가 필요하다.
필자도 처음에는 우리 투자도 받고, 글로벌 진출도 합시다 하고 설쳐댔다. 최근 신입으로 들어온 사원은 내가 그때 했던 얘기들을 똑같이 하는데, 아마 지금 스타트업에 취업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기존 멤버들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내가 나서서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포부가 없다며 스타트업에는 들어가지 마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업무가 회사의 큰 주축이 되는 것도 즐겁고, 완성 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란 말이 나를 구해줄 잔다르크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환상도 이제 서서히 깨져 갈 때도 견뎌낼 힘.
이 경험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만 결국 나같이 무디고, 남들이 어떻게 살건 신경쓰지 않던 나도 결국은 후회하는 마음이 코딱지 만큼이라도 생기게 된다.
그저 다시 1년, 딱 1년만 더. 라는 마음으로 새로이 마음을 다 잡고 이 글을 쓸 뿐이다.
이제는 좀 더 전투적으로 임해야 한다.
부디 올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