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곁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by 박이눈

당신의 부재에 대해 또렷이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찾으면 늘 있었고 굳이 찾지 않아도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그런 믿음만 가득했습니다. 학창 시절 수련회 캠프파이어 앞에서 당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었지만, 그저 낳아 키워주시는 은혜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희미하게 당신의 부재를 떠 올려본 적은 있었지만 사실 그리 슬프지도 와닿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병을 앓고 있다거나 죽음이 가까운 나이가 아니기에 그랬습니다.


얼마 전 암벽 등반 중 예기치 못한 추락으로 당신의 세상이 사라질뻔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선명히 스쳐간 가족들의 얼굴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되새기곤 두 팔을 가지런히 모아 죽음을 받아들였다 하셨지요. 번뜩 당신과의 추억 전부가 물 밀듯 눈앞을 메웠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부재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30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쳐 산산이 부서졌을 당신을 짐작하니 온 신경이 아득해졌습니다. 줄이 낭떠러지 중간 지점 바위틈에 걸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제 곁에 없었을 겁니다. 이 또렷한 상상은 당신이 늘 곁에 있을 거란 제 순수한 믿음에 태어나 처음 균열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 제 아들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곤 합니다. 제게 낑낑대며 기어와 배 위에서 잠들 때면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이 벅차오릅니다. 꼭 추운 겨울 입 안 가득 따뜻한 물을 머금은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도 그러셨을까요. 제가 첫걸음마를 뗐을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셨나요. 어렸을 적 아버지는 무슨 꿈을 꾸셨나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장면이신가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보답해드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니 제발, 오래도록 제 곁에 머물러주세요. 인생의 반고비에 어두운 숲길에서 길을 잃었다는 단테처럼 여전히 제 삶은 물음으로 가득합니다. 이따금 세상이 어려워 지칠 때 아버지께 달려갈 수 있도록, 오래도록 곁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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