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마지막 날 <독서>를 주제로 강연하다
며칠 전 10월 마지막 날, 회사에서 “독서 습관”을 주제로 강연했다.
올 초 복직하면서 새로운 사업부로 이동했는데, ‘책 쓴 작가가 우리 사업부로 왔다’라는 소문 비슷한 얘기가 돌면서 부서 교육 담당 후배가 연초부터 제안했었던 강연이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땐 대수롭지 않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적응 좀 하고나서 할게!”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후배는 그 대답 이후 수 개월간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지원해주면서 하게될 강연에 살찌우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마지막 날 그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강연 내용을 주저리 옮기는 건 그렇고… 한시간 정도 진행된 강연동안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 청중들의 아이 컨택과 피드백이 좋았다는 점, 이후 20여분 간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강연의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 갔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 읽은 정준희 교수의 <묻는다는 것>에서 질문의 본질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며칠 전 강연에서 청중들과 질문을 주고받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대답의 완벽함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게 묻는 것들을 고민하며 대답하면서 점점 서로 집중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독서 습관”을 주제로 강연 요청을 받고 10월초 처음 연습장에 전체 강연의 흐름을 그릴때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책 읽는 것(독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반 청중이 아닌 같은 회사 직원인데 그러면 지적 수준이 비슷하니 좀 더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눠야 할까?’, ‘그들의 문해력과 독서량은 어느 정도 될까?’ …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강연의 주제를 잡고 키워드를 뽑았다. 그리고선 강연의 뼈대를 그렸고 그것에 맞춰 에피소드를 붙였다. 그렇게 A4 13장의 초안을 만들었다. 며칠 던져놓았다가 다시 들여다 보았더니 논리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이 보여 수정했다. 그리고 썼던 글을 입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강연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강연 3일전 참석자들에게 배포되었던 사전 질문지를 받아보고는 무척 당황했다. 내가 준비했던 내용과는 사뭇다른 부분을 궁금해하고 있어서였다. 나는 참석자들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독서습관”을 붙이기 위한 방법에 관해 가장 궁금해 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받아본 질문지에서 그들이 내게 묻는 건 “나에 관한 궁금증”이었다. “넌 어떻게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니?”, “넌 어쩌다 책을 읽게 되었고 책까지 쓰게 됐니?”, “넌 주로 어떤 책 읽니?”, “난 책 읽어도 하나도 바뀌는 게 없던데, 넌 뭐가 바꼈니?” 같은 질문들이었다.
대략 난감.
말 연습도 끝냈고 자료도 다 만들어놨고 강연시간에 맞춰 분량도 딱 맞춰놨는데… 이게 뭐야!!
그냥 원안해도 할 것인가? 아니면 다 뜯어 고칠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강연이란 무엇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내가 내린 답은 “ 얘기를 통해 청중과 나 사이 공감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안을 뒤집고 강연의 뼈대를 다시 짰다. 에피소드도 질문에 맞춰 다시 구성했다. 그래도 초안이 있었기 때문에 3시간만에 수정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받았던 많은 질문을 여섯 개의 그룹으로 나눴고 그 그룹마다 하나의 질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여섯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구성했다. 시간은 촉박했지만 훨씬 더 느낌있고 말하기 편한 내용으로 대본이 완성됐다. 왜냐면 그냥 내 경험을 풀어내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독서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아닌 내 경험과 시행착오, 그러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결과물들.
결론은 이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듯 서로 공감할 수 있어서 나 스스로도 70점 정도는 줄 수 있었다. 후일담으로 올 1년간 진행한 강연 중 최고였다는 얘기도 들렸다. 한번 더 하자는 얘기도 들렸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약간의 뿌듯함과 작은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무언가 시도한다는 건, 새로운 것(반드시 새롭지는 않더라도)을 한다는 것은 공포가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여러번 돌아보게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내 현재 독서에 대해 점검했고 초심을 되새겼다.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충분히 내게 좋은 강연이었다.
끝.
잃어버린 책 대화 상대(내 뮤즈)를 찾아야하는데…
# 2024.11.03
# <묻는다는 것> (정준희 씀)을 읽다. 글이 쓰고 싶어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