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바빠도 머리 자르러 갈 한 시간쯤은 있겠지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단발과 긴 머리 사이를 오가는 데 미용실 방문은 일 년에 많아야 두세 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띄엄띄엄 갔던지, 담당 디자이너가 그만둔 줄도 모르고 거의 1년 만에 찾아갔다가 스텝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짧은 머리를 유지하며 3주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의 겨울이었다.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을 보다가 유미와 구웅의 마음속 순위에 대한 장면을 보았고, 구웅은 늘 자신이 1순위인 데 비해 유미는 구웅이 1순위인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나를 1순위로 두자.' 이 마음은 긴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버리는 데 충분한 원인이 되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거추장스럽게 기르고 싶지 않았다. 귀도 파지 않고 어설프게 자른 컷트 머리는 세 달을 넘기지 못하고 투블럭으로 넘어갔다. 12미리였던 투블럭은 몇 달이 지나자 4미리가 되었다. 점점 짧아지는 머리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영영 긴 머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2018년 초부터 2019년 여름까지 내 미용사는 늘 한 명이었다. 회사 근처 체육관에서 만난 분이었는데, 할인가에 지인 할인까지 더해 만 오천 원에 머리를 잘라주셨다. 그분이 강남 모처의 고급 미용실로 이직하며 고민이 시작되었다. 두 배 넘는 3만 3천 원에 머리를 잘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비스는 월등히 좋아졌다. 네이버 예약이 지원됐고, 스텝이 코트를 받아줬다. 머리를 감겨줄 때 마사지는 기본이고, 눈 부시지 말라고 안대를 씌워줬다. 샴푸가 끝나고는 손으로 조명 불빛을 막아준 채 안대를 벗기며 눈이 부실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겨울에는 목 뒤에 뜨끈한 타월을 한동안 대주기도 했다. 자리에 앉으면 아로마 오일로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주었다. 그리고 메뉴판에서 마실 것을 고르면 과자와 함께 쟁반에 내 왔다. 음료가 담긴 머그잔에는 종이로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펌을 할 때는 과자가 아닌 시리얼이나 샌드위치가 나오기도 했다. 컷트가 끝난 후에는 또 다른 스텝이 머리를 감겨주었고, 머리 세팅까지 끝나고 나올 때는 마중까지 해줬다.
처음에는 그 서비스가 마냥 좋아한 달에 한 번 나에게 호사를 베푸는 마음이었다.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기 두렵기도 했다. 다른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망쳐 놓아 한 달 내내 기분이 나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었다. 신뢰와 의리로 함께 해 온 미용사와 결별한 것은 예약 때문이었다. 늘 주기적으로 머리를 자르기 때문에 일찍 예약을 해두는 편인데, 예약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하루만 예약을 미뤄주면 안 되냐고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흔쾌히 예약을 미뤘다. 머리를 자르러 간 날 스텝에게 물어보자, 그 전날 별일 없이 출근해 일했다는 말을 했다. 선약이었던 내 예약을 미루고 다른 사람의 일정을 잡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서운한 마음이 들자 그곳에서 머리를 자를 이유가 사라졌다.
내 머리가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여성의 머리였다면 미용실을 찾기 조금 더 수월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남성의 머리스타일인 투블럭을 한 여성이었다(지금은 상고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찾는 미용실은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다.
1. 성별에 따른 가격의 차등이 없는 곳
2. '여성스러움'을 더한다고 어설프게 머리를 남기지 않는 곳
3. 미용사가 여성인 곳
세 가지 조건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성별에 따라 가격을 달리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머리 길이 때문이라면 가격표에 <남성/여성> 컷으로 나눌 게 아니라, <상고·투블럭/숏컷/단발·긴머리>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다. 성별 때문이라면 그건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자 헤어에 디자인 요소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성별에 따라 서비스도 디자인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한 미용사는 나에게 숏컷이라고 후기에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짧은 머리가 긴 머리보다 자르기 힘들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애당초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따르고 싶은 것이라면, 머리를 길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블럭에서 뒷머리만 길러 축구선수 김병지의 스타일이 되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을 티 낼 수 있는가? 애당초, 우리는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다. 머리가 짧거나 길거나, 치마를 입었거나 바지를 입었거나, 화장을 하거나 안 하거나, 우리는 태어나기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살았다. 구레나룻이나 귀 위 머리, 뒷머리를 남긴다고 해서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우스울 뿐이다.
세 번째는 불편한 이야기를 '최소한' '덜'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다니는 미용실에 따라간 적이 있다. 옆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으니, 그 남자 미용사는 갑자기 과격함을 운운하며 요새 여성이 남성처럼, 남성이 여성처럼 자른다고 얘기를 했다. 아마 머리가 긴 남성이 왔으면 과격이라는 단어는 저 깊은 서랍 속에 넣어둔 채 개성 있다며 칭찬을 했을 것이다. 머리 만지는 걸 업으로 하면서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길래 과격하다는 표현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여성을 여성스럽게' 하지 않는 이상 그가 남성스러움을 뽐낼 방법이 없음을 고백할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시도했던 미용실의 가격대별 서비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친구를 만나 머리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녀본 미용실들이 가격에 따라 서비스가 어떻게 되는지, 이른바 썰을 풀었더니 재밌다며 글로 옮겨보라고 했다. 물론 모든 미용실이 같은 가격에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미용사들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끝내주는 솜씨를 자랑한다. 유럽에서 잘라 보고 나서야 깨달았던 사실이지만. 매우 개인적인 경험의 총정리라는 것을 독자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처음으로 방문한 미용실은 합정에 있는 곳이었다. 친구가 다니는 곳으로, 컷트 가격이 2.5만 원인 개인 미용실이었다. 코트를 받아주고, 음료를 주고, 머리를 시작과 끝에 한 번 씩 총 두 번 감겨주고, 머리를 감을 때 눈 위에 타월을 올려주는 등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결과물은 아주 조금 아쉬웠다. 머리가 두껍고 숱이 많아 정리가 필요했는데, 숱을 치는 데 너무 조심한 까닭이었다. 너무 무거운 컷트라 답답해 한 번만 가고 다음 곳을 알아보았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숙명여대 근처의 미용실이었다. 투블럭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역시나 개인 미용실로, 대학교 앞이라 그런지 1.5만 원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컷트가 끝난 후 단 한 번 머리를 감겨주었고, 눈 위에 타월을 올려주지는 않았다. 음료 제공도 없었다.(서비스에 대해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가격대에 따라 서비스가 하나씩 빠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흔히 무형으로 생각하는 서비스는 어떻게 유형화되고 계산되어 제공되는가?) 미용사는 시원시원한 성격답게 머리도 시원시원하게 잘라주었다. 이전보다 더 짧아진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격도 시원시원하게 올랐다. 두 번 자른 후에 가격이 3천 원 올랐다. 다른 곳보다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라 계속 다녔다. 네이버 예약이 열리며 가격이 한 번 더 올랐다. 마침 회사를 다니기 시작해서 바빠졌다. 이 곳은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다른 미용실을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세 번째로는 회사 근처 미용실을 돌아다녀보았다. 한 곳은 예약 없이 자를 수 있고 가격도 1.5만 원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계산할 때마다 "남자 컷트 가격으로 해드렸어요"하고 생색을 내더니(아니 남자 컷트랑 크게 다를 바 없는 투블럭인데?) 머리를 잘라주던 디자이너가 미용실을 그만둬버렸다. 다른 한 곳은 남자 가격에 해달라고 하자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잘라주고 계산할 때 "남자 가격이라고요!"하고 신경질을 내길래 두 번 가고 말았다(아니 남자 컷트랑 다를 바 없는 머리인데 왜 3주에 한 번씩 방문하는 나를 진상으로 만들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만 원에 잘라주었으나 자르는 내내 뒤에 갤러리로 앉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유 나도 젊었으면 저렇게 한번 잘라보는 건데!" 등의 감상평을 들어야 했다. 부담스러워서 다시 방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나서 셀프로 왁스를 바르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다. 만 원 가격이면 왁스는 셀프서비스였던 것이다.)
결국 회사 근처에서 머리를 자르는 걸 관두고 집 근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카카오헤어샵 어플을 이용해 찾은 곳이었다. 흔쾌히 남자 컷 가격으로 잘라주고 가격도 1.3만 원으로 저렴하긴 했지만 자르는 내내 "여자 머리는 남자 머리랑 다르니까" "남자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오해받는 게 무서웠으면 진작에 머리를 길렀겠죠?" "이상하게 남기지 말고 그냥 남자 머리라고 생각하고 잘라주세요"라고 설명해야 했다. 정착하려고 마음먹은 이곳에서 떠나게 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예약 문제였다. 예약하고 방문했는데도 다른 손님을 먼저 받아서 30분 기다리기를 몇 번 반복하자 다른 미용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곳의 미용실을 유랑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3주에 한 번씩 가는 만큼, 가격의 부담이 없고, 집이나 회사에서 가까우며, 마음이 편안한 곳을 원했다. 미용실의 조건은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1. 성별에 따른 가격의 차등이 없는 곳
2. '여성스러움'을 더한다고 어설프게 머리를 남기지 않는 곳
3. 미용사가 여성인 곳
4. 집이나 회사에서 가까운 곳
5.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곳
최종 정착한 미용실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조건 중 첫 번째와 세 번째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3번의 본질적인 이유였던 5번을 만족시켰고, 별말 없이 남자 컷 가격 1.3만 원으로 자를 수 있었기 때문에 1번을 흐린 눈으로 넘기기로 했다. 룸메이트가 미용실 어플로 찾은 이곳은 조선족 남성이 운영하는 1인 미용실이었다(차이나타운 인근에 살고 있어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은 동네다). 그가 나에게 머리 길이에 대해 물어본 질문은 단 하나였다. "혹시 요리사세요?" 셰프들이 모자 쓰기가 불편해서 머리를 짧게 자르는 사람이 많단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 이후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절대 기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시원한 상고머리로 잘라주고, 빽빽했던 머리숱도 가볍게 쳐줬다. 나의 추천으로 이 곳을 찾은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듣기를, 예전에 일하던 미용실에서 손님이 원하는 머리를 해주지 않았더니 다른 미용실에서 원하는 스타일대로 잘라왔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두 번 묻지 않고 원하는 대로 머리를 잘라준다고 했다. 어쩌면 미용사의 성별보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국적 내지는 고정관념을 떠나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상 이곳을 쭉 이용할 예정이다. 1.3만원 가격에 약 2.0만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성비 넘치는 미용실이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네이버 예약이 가능하고, 코트를 받아주고, 머리를 감길 때 마사지를 해주고, 파마를 할 때는 간식과 음료를 내주고, 인테리어가 깔끔하다.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참 편리한 것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1시간에서 20분으로 대폭 줄었다. 방바닥에 더 이상 긴 머리가 뱀처럼 기어 다니지 않는다. 화장이 어울리지 않아 그만둘 용기가 더해졌다. 린스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샴푸도 쓰지 않는다. 비누 하나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씻는다. 옷장도 단순해졌다. 그야말로 '머리에 이고 사는 짐'이 확 줄어든 것이다.
길을 갈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던 남자들의 시선이 없어졌다. 머리를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가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에 놀랐었다. 이전에는 익숙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생경하게 느껴진 것이다. 남자들은 지나가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눈을 가져다댄다. 시선강간이라는 단어에 억울해하는 남성들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시선의 자유를 가졌던 그들은 여성의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핫핑크색 쫄쫄이를 입은 남성을 보는 것만큼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모습의 여성'을 위아래로 훑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쫄쫄이 하의 앞으로 툭 튀어나온 성기 모습을 보는 만큼 여성의 가슴을, 몸을 쳐다본다. 이제 이해가 가는가?
일할 때도 나를 '여성'보다 '담당자'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 듣는 사람에게는 호감 표시도 칭찬도 아닌 그저 불쾌함 덩어리인 '예비 여자친구/며느리'로 보는 시선이 줄었다(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으). 사람들은 내 외모보다 말투, 표정, 내용에 집중한다. 나조차 나의 외모를 보지 않게 되자 대체로 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외모에 대한 압박이 사회적으로도, 스스로도 꽤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 하나, 공중화장실을 갈 때만큼은 조금 부산스러워진다. 크흠, 소리를 내고 들어가거나 일부러 친구와 말을 하면서 들어가고, 나올 때는 황급하게 손을 씻고 최대한 빨리 나온다. 세면대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여자화장실인지 확인하는 사람이 10명 중에 9.5명이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머리가 짧은 사람은 남성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탓이다. "여자 맞아요. 여자화장실 맞아요."라고 앵무새처럼 이야기하고 최대한 빠르게 화장실을 빠져나와야 한다. 짧은 머리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을 갈 때에야 행동이 조금 여유로워진다.
화장을 하지 않은 짧은 머리 여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서 타고난 모습 그대로 디폴트인 여성들이 사회적 여성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여성세(pink tax)를 걱정하지 않고 미용실을 다니고, 어느 미용실에 가든 내 스타일에 대해 해명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유치원에서 본 여자아이들의 머리가 반은 짧고 반은 길기를 소망한다. 초등학생들이 다이어트한다고 굶지 말고, 잘 먹고 잘 크기를 소망한다. 중학생들이 따돌림을 이유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소망한다. 고등학생들이 화장을 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할 시간을 쪼개 쓰지 않아도 되기를 소망한다. 단톡방에서 학생들을 외모로 순위를 매겨 낄낄거리는 남대학생들이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마스크로 가려진 아래로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하는 회사가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정말로 화장이나 긴 머리가 '선택'과 '자유'인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