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하면 역시 무덤 뷰

마음의 공간이 필요할 때 떠나는 주말여행 #2

by 문마닐


DAY 2



PM 7:30 일행 추가 +2


합류하는 친구 둘을 만나기 위해 카페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경주 시내는 작아 산책하며 걷기 딱 좋다. 굳이 차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돌아가는 길에 2층 규모의 번듯한 황남빵 집이 있는 걸 발견해서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반도체 공장처럼 하얗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빵을 빚어내고 있다. 두 알만 달라고 했더니 갓 구워 나온 황남빵을 종이봉투에 담아주었다. 어렸을 적 기념품처럼 사온 차가운 황남빵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따끈따끈한 건 처음이다. 겉껍질이 파삭하고 속이 부드럽고 달콤하다. 친구는 황남빵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사이좋게 뜨거운 빵을 베어 물고 호허호허 입안을 식혀가며 걸어갔다.


<황남빵>
경북 경주시 태종로 783
황남빵 1,000원(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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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 석굴암을 오르느라 땀 흘렸던 몸을 한번 가볍게 씻어내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잠시 핸드폰을 충전할 겸 누워서 빈둥거리니 어느새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한 친구는 토요일에 있는 클라이밍 수업을 빠지기 싫어서, 다른 한 친구는 금요일 저녁에 요가 수업이 있어서 토요일에 오후에 출발하겠다고 했다. 친구들의 일정에 맞춰서 게스트하우스도 2명은 2박, 2명은 1박으로 예약해놨었다.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해서 꼭 한 곳에서 모여서 출발하고 모든 일정을 함께 할 필요는 없다. 가볍게 떠난 여행이니만큼 마음도 몸도 가볍게, 각자의 체력과 일정에 맞춰서 모인 것이다. 집에서 337km 떨어진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니 그만큼 반가움의 마음이 크다. 불필요한 짐은 모두 방에 내려두고 한껏 걸어도 무리 없는 가벼운 짐을 챙겨 다시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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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저녁


후발대로 온 친구 두 명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맛있는 저녁! 경주하면 황남빵을 보통 떠올리지만, 의외로 낙곱새도 유명하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맛집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알아왔다고 해서 기대감이 커졌다. 도착하니 과연 동네 맛집인가 보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가벼운 옷차림의 중장년이다. 동네 분들이 주말의 저녁식사를 하러 찾은 듯했다. 낙곱새 3인분에 낙지부추전 하나를 주문하고 취향 따라 맥주와 소주를 골랐다. 전골이 보글보글 졸아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근황과 소식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기에 딱 알맞다. 초면인 두 명의 친구는 둘 다 소주 취향이었고, 넷 다 기분 좋게 각 1병씩 해치웠을 즈음에 제법 친해져 있었다.


<할매낙지식당>
경북 경주시 한빛길 4
낙곱새전골 8,000원, 낙지부추전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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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9:50 첨성대 야경 투어


배부른 속을 달래기에는 역시 밤 산책이다. 택시를 타고 첨성대로 향했다. 서울이었으면 이미 허둥지둥 술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갔겠지만, 이곳은 영업제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사람 가득한 어둑어둑한 거리를 보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아래에서부터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능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소주파 두 명은 저 앞에서 둘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어 괜히 흐뭇하다. 그 앞으로 유난히 붉게 물든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빛을 낸다. 며칠 전에 스트로베리 문이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각자 카메라로 열심히 담아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눈으로 본 달이 가장 선명하다.


얼마 가지 않아 나무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첨성대가 보인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아무리 사진으로 보아 익숙한 형태더라도, 실물로 보는 건축물은 그들만의 아우라가 있다. 특히나 이처럼 오래된 것은 어떤 영혼이라도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고고하게 빛나고 있는, 어쩌면 외계인이 신라인을 만나 우주에 대한 해답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전설이 있는 친구를 뒤로 하고 숲길을 향해 걸었다.


펜스 건너에 있는 숲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눈앞에 보인 것은 거대한 나무가 반 이상 베어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몸을 비틀어 생명력을 쏟아내고 있는 나무는 무려 1,300살로 추정되고 있는 회화나무다. 회화는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라 하여 보통 입구에 심는단다. 펜스 안쪽은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었던 숲으로, ‘계림’이라는 이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진 나무들 뒤로 대릉원이 빛나고 있다. 유럽에서도 무덤만 찾아다닌다는 이른바 ‘무덤 애호가’ 친구는 이곳에서도 한껏 정취를 즐기고 있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며 자연이 가득한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약간 으스스한 것은 덤이다. 인적이 드문 한밤 중의 계림을 넷이 간 덕분에 하나도 무섭지 않게 산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까지 걸음을 이어갔다.


<첨성대>
경북 경주시 인왕동 910-30
야간 무료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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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AM 7:00 성동시장과 우엉김밥


직장인 생체시계는 주말에도 일찌감치 눈을 뜨라 종용한다. 결국 평소보다도 이른 시간에 눈을 떠 샤워실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 유명한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조식에 보태자고 했던 참이다. 원래는 둘이서 갈 생각이었는데 씻고 나오니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결국 차례대로 씻고 간단히 채비하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숙소에서 나왔다. 항상 첫 번째로 가려고 한 집은 문이 닫혀 있는 징크스가 있다는, 여행지 먹을 복이 없다는 친구가 김밥집에 전화를 걸자 인터넷에 표기된 것과는 다르게 아홉 시 반에나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리 알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다른 친구가 숙소에서 미리 제공한 ‘딮슐랭 가이드’에서 우엉김밥이 맛있는 집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심지어 우엉김밥 집이 더 가까웠다. 누구든 하나씩 보태면 뭐든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게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모두 신나는 발걸음으로 시장으로 향했다.


성동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다. 처음 들어간 골목에서 김밥집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나물을 팔고 계신 어르신께 길을 물었다. 어르신은 질문을 끝까지 듣고 드시고 계시던 것을 삼키시더니 손짓과 함께 “쩌~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오른쪽으로 가서 보면 김밥집이 보여!”라고 말씀해주셨다. 참 심플한 설명이었지만 그대로 따라가니 정말로 김밥집이 보였다. 경주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정확하다. 시장에 오래 계신 분의 경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숙소로 돌아와 전날과 같이 계란을 부치고, 토스터기에 빵을 굽고, 각자 커피와 차를 챙겼다. 왜 우엉김밥인가 했더니 일반적인 김밥 위에 달콤하게 조린 우엉을 얹은 것이었다. 여태 먹어봤던 우엉 중에 제일로 맛있었다. 평소에 아침을 챙겨 먹지 않았던 친구들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보배김밥>
경북 경주시 원화로281번길 11 성동시장 328호
우엉김밥 1줄 2,500원 (카드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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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9:50 대릉원과 천마총


방을 정리한 후에 1층에 짐을 맡기고 대릉원으로 향했다. 후식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최영화빵에 들러 갓 나온 황남빵을 샀다. 가게 앞에서 한입씩 먹고 있자 지나가던 구 야쿠르트 아줌마 현 프레시 매니저 님이 어떻게 알고 왔냐고, 경주 사람들은 황남빵을 다 여기서 사 먹는다고 한다. 어제 먹었던 황남빵보다 조금 덜 달고 곡물 맛이 더 난다. 한 알을 다 먹으니 아이스커피가 생각난다. 마음속 커피 게이지가 차오르는 걸 느끼며 해가 따끈하게 비추는 거리를 걸었다.


<최영화빵>
경북 경주시 북정로 6-1
황남빵 1,000원(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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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은 훌륭한 산책로다. 나무 그늘과 땡볕을 오가며 한여름의 초록을 즐겼다. 지증왕의 묘로 추정되는 천마총은 내부까지 관람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덤이다. 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어두워 실제로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통로 끝에 다다르자 천장이 둥근 고분 내부 한가운데의 밝은 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무로 짠 관 안에 망자에게 입힌 화려한 옷과 금관이 사람 모양대로 놓여 있다. 재밌는 점은 관 옆에 함께 놓인 나무상자 안에 밥솥과 주발, 수저 등 식사와 관련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저승에서는 과연 저 왕족들이 스스로 밥을 지어먹기를 바라고 밥솥을 넣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순장해서 밥을 짓게 했을지, 친구들과 한국인답게 밥에 관련된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관 뒤편 통로에는 함께 매장된 물건과 그에 대한 설명을 함께 전시해놓았다. 이곳의 유물들은 대부분은 복제품으로, 실제 물건은 경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적혀 있었다. 복제품을 그냥 봤을 때는 단순해 보였는데, 옆에서 상영되는 제작 과정을 보니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자 금관과 장식품을 감명 깊게 본 친구 하나가 박물관에 들러야겠다고 했다. 마침 그 친구만 버스 시간이 30분 늦어, 점심을 먹은 후에 헤어져 박물관에 가고 우리는 카페에 들렀다가 서울로 향하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은 자유롭게 가는 것이 이 여행의 컨셉이다.


<대릉원+천마총>
경북 경주시 황남동 33 일대
입장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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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1:00 무덤 뷰 커피와 무덤 뷰 점심


산책을 마치고 뙤약볕 아래서 충전한 커피 게이지를 해소하러 카페에 갔다. 일찍 나온 덕분인지 대릉원을 보는 동안에도, 카페에 와서도 사람이 많지 않다. 이렇게 사람 없는 관광지를 얼마 만에 오는 것인지. 미리 점찍어둔 곳들은 아직 오픈 준비 중이라 그냥 열려 있는 곳에 들어갔는데, 음료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 한옥을 개조해서 모던한 느낌으로 인테리어 한 것이 독특하다. 각자 취향대로 커피와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주고받고, 미리 점찍어둔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츠커피> @counts.coffee
경북 경주시 포석로 1099
수박주스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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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하면 대표 음식은 역시 피자다. 경주에 오기 전 ‘무덤 뷰 카페’를 찾아봤는데, 대릉원이 넓고 주변에 다 음식점과 카페라 어디서든 창가에서 고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경주에서 본 가장 최고의 무덤 뷰는 바로 이 식당이었다. 길 건너편에 대릉원이라 때깔 좋은 잔디를 입은 고분이 한눈에 보이고, 옆에는 신라대종이 있어 열두 시에 종을 울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종 울리는 소리에 놀라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갔는데 아쉽게도 세 번만 울리는 종이었다. 의외로 평범한 복장의 중년 남성이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로 종을 치고 당목(종을 치는 나무통)을 바닥에 쇠사슬로 갈무리한 다음 담담하게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뷰만큼이나 피자 맛도 좋았다. 샐러드 한 접시와 함께 페퍼로니, 고르곤졸라, 루꼴라 피자를 한 판씩 시켰는데, 순식간에 다 먹어서 없앴다. 도우와 재료는 심플하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맛이 좋은 집이다. 특히나 페퍼로니가 짭쪼롬하니 풍미가 좋아 별미다. 평소에는 운전하느라 술을 아꼈지만 오늘만큼은 운전하는 멤버가 없으니 다들 텡커레이를 넣은 진토닉 한 잔씩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우리의 취향이 모두 봄베이보다는 탱커레이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진토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미> @domi_community
경북 경주시 중앙로 10
고르곤졸라 14,000원, 루꼴라 15,000원, 페퍼로니 14,000원,
부라타치즈샐러드 15,000원, 탱커레이진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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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가는 친구와 이별하고 경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어제 들렀던 카페였다. 이 카페가 너무 좋아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다들 마음에 들어했다. 어제 앉았던 바 자리에 앉았더니 사장님도 아는 체를 해주신다. 누군가는 여행을 가면 같은 메뉴를 다시는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마음에 드는 곳은 또 가는 사람이다. 여행지의 낯선 도시에 단골 가게를 하나씩 만들어놓고 온다. 그렇게 만든 단골집은 그리움의 길잡이가 된다. 그 도시를 생각하면 그 카페, 혹은 그 식당에 앉아 그 도시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도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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