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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Feb 15. 2024

안녕, 시드니

60대 은퇴자와 30대 대학원생의 배낭여행


은퇴자와 학생의 7kg


30대 대학원생과 60대 은퇴자가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의 건강과 나의 시간이 허락하는 흔치 않은 기회다. <고요와 평화로 지어올린 성당>이 출간된 지 2년 만에 가족에게 공개를 했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엄마가 “나도 너랑 자유여행 갈래”라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총 4학기를 다니는 대학원 생활 중에 2학기가 끝난 시점, 아직은 논문의 압박이 덜한 겨울방학, 미루고 미루던 은퇴를 한 엄마와 여행을 하기에는 적기였다. 다만 겨울이었으니 날씨가 좋은 곳으로 가야 사이좋게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지구상에서 계절이 반대인 곳, 자연스럽게 호주로 여행지가 결정되었다.


둘 다 신분 상 수입이 형편없는 터라 최대한 경비를 아끼기로 했다. 어차피 최고급 호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시드니에서 일주일, 멜버른에서 일주일을 보내려는데 돌아오는 비행기는 직항이 없었다. 환승 시간이 빠듯한 걸 보더니 부치는 수하물은 빼자고 하신다. 숙소도 게스트하우스로 잡았으니 세탁도 걱정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7kg의 기내수하물 안에서 짐을 해결하기로 했다. 15일간의 짐을.


방학 시작하자마자 공모전 하느라 열흘을 보내고, 밤샌 걸 회복하겠다며 며칠 요양하고 나니 설이었다. 설이 지나자마자 출발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미루다 뒤늦게 사흘 전부터 정보를 찾아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맨몸으로 한번, 배낭 메고 또 한 번, 쉴 새 없이 무게를 재는데 7kg를 넘기기 일쑤였다. 결국엔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추가 수하물 가격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출발하는 날 엄마와 집에서 배낭을 엎고 무게를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7일치를 챙겼던 속옷을 5일만, 우산은 빼고, 티셔츠도 몇 개 덜어내고, 파우치도 빼내고… 결국 각자 6.99kg까지 맞추고 출발했다. 정작 공항에선 짐을 맡기지 않아도 되니 모바일로 체크인을 하는 바람에 무게를 잴 일이 없었다. 그래도 첫날 그 짐을 메고 다니며 최대한 가볍게 가져오길 잘했다고 되뇌었다.




특등석이야 완전


항공편 예약은 일찍 했는데 좌석 선택이 유료길래 미루고 미루다 자리가 거의 다 차고 나서야 예매를 시도했다. 한국에서 시드니 가는 비행기는 화장실 바로 앞자리에만 둘이 붙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몇 없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그 자리가 특등석이었을 줄이야. 젯스타(Jetstar) 항공 국제선은 자리가 한 열에 9석씩 있는데, 3개씩 붙어있고 사이에 복도가 있는 형태다. 우리가 예약한 창가 쪽 자리 두 개를 둘러싸고 복도 쪽 자리 하나, 바로 앞 세 자리 모두 비어 있었다. 덕분에 각자 세 자리씩 차지하고 가끔씩 편안하게 다리도 펴고 쉬면서 왔다. 엄마는 장기간 비행은 자주 해봤는데 이렇게 편하게 온 적은 처음이라며 “특등석이야 완전~” 하며 행복해했다.


밤 10시 즈음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달려 아침 10시에 시드니에 도착했다. 창문에는 덮개가 없었는데, 대신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선글라스처럼 창이 어둡고 파랗게 변했다가, 다시 누르면 실제 색깔로 보였다. 안대와 마스크, 귀마개까지 착용하고 꿀잠을 자다가 깨니 창밖이 파르스름했다. 처음에는 비행기 날개 쪽에 조명을 켰나 했는데 다시 보니 일출이었다. 3만 9천 피트 상공 위에서 강렬한 빛을 내는 파란색 태양은 마치 외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해가 날개 끄트머리에서 창문 위로 이동했을 즈음 시드니에 왔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Medicine? Bye~


비행기에서 내릴 때 ‘미안합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입국서류를 쓰라는 얘기였다. 호주는 자연보호에 진심인 국가라 해외에서 들여오는 과일, 흙, 육류, 약에 민감하다. 모두 없다고 체크했다가 뒤늦게 배낭에 들어있는 상비약이 생각났다. 다시 yes로 표기하고 ‘period pain relief(생리통 약), digest(소화제), eye drop(안약)’이라고 부연설명을 달았다. 모두 no라고 표기한 엄마와 입국장 끄트머리에서 다른 줄로 보내졌다. 한참 줄을 서서 대기했는데 정작 서류를 확인한 직원은 약이냐고 물어보더니 쿨하게 잘 가라고 인사해 준다. 한시름 덜었다. 이제 진짜 호주에 도착한 것이다.


시드니 공항은 시내와 비교하여 근교에 자리하지만 지하철 네 정류장 만에 도착하는 비교적 근거리에 있다. 열차 타는 곳 앞에서 교통카드인 오팔카드를 사서 40달러씩 충전했다. 그래도 근교지역이라고, 시내까지 들어오는 데 20불씩 빠져나갔다. 지하철은 신기하게 2층 구조다. 타자마자 계단을 타고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결정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배낭을 옆 자리에 두고 쉬다가 Central 역에서 내렸다.




역시 이렇게 쉽기만 할 리가 없지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마트로 향했다. 엄마는 유심칩 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이심을 신청해서 왔고, 나는 마트에서 유심칩을 사기로 했었다. 이심을 신청만 해놨지 쓰는 방법은 미리 확인해두지 않아, 와이파이가 있는 곳에서 확인하고 연결해야 했다. 마트에서 50GB짜리 유심을 저렴하게 팔길래 샀는데, 아뿔싸, 인증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자꾸 오류가 나서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그나마 엄마의 이심은 어찌어찌 활성화에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점심시간 즈음이 되어 내내 인터넷 연결을 시도해 보다가 안 되니 신경질이 났다. 이럴 때는 여행메이트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숙소 근처에 유난히 한식집, 중식집, 베트남, 일식이 많더라니 차이나타운이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한 우리가 먹고 싶은 건 양식이었는데 말이다. 숙소에서 준 종이지도 한 장을 들고 무작정 길을 따라 걷다가 식당이 많은 골목 안에서 점심특선을 파는 카페 겸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나는 고기가 잔뜩 들어간 볼로네제 스파게티에 제로 콜라, 엄마는 커피에 새우오일파스타를 시켰다. 아는 그냥 그런 맛이었지만 배가 든든해지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시드니 하면 역시 오페라하우스


호주에 오기 전에 이메일로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는 공연을 하나 예매해 두었다. 도무지 결제 단계에서 넘어가질 않아 이메일로 문의를 넣었더니 우리 자리를 따로 빼준 것이다. 결제는 도착하면 현금으로 하기로 했으니 첫날의 목적지는 자연스레 오페라하우스가 되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설계와 시공 과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다. 국제현상공모에 당선되어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조개 모양의 지붕을 훨씬 늘씬하고 가파르게 설계했는데, 시공 과정에서 공법에 대한 문제로 보다 두툼하고 낮게 시공이 된 것이다. 건축가는 마음이 상해 완공된 오페라하우스는 와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드니 시는 시드니 시대로 정작 당선 안을 시공하려니 예상보다 공사비가 훨씬 많이 증가하여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다. 게다가 가파른 지붕을 시공하느라 인부들의 사상사고도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멋지게 완성되어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엄마와 도시 속을 걷다가 공원을 질러가는 길을 발견했다. 차이나타운에서 Pitt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가 하이드파크와 로열보타닉가든을 차례로 통과하면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한다. 비가 내리고 습하고 흐린 날씨라 아쉬웠는데, 오히려 습기 덕분에 풀내가 싱그러웠다. 공원을 걷기 시작하자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마트에서 산 유심카드는 잊고, 오늘은 종이지도에 의지해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도 20대까지는 지도책 하나 들고 미국 여행을 다닌 경험이 있고, 엄마는 핸드폰이 나오기 전부터도 여행을 다녔으니 스마트폰 없이 다니는 여행이라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


하이드파크와 로열보타닉가든은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대한 수목이 가득하다. 가까이로는 검은색의 기다랗고 휘어진 부리를 가진 흰 새가 보이고, 그 뒤로는 트로피칼 한 관목과 풀이, 그 위로 장정 열 명이 둘러싸도 모자랄 두께의 기둥과 풍성한 줄기를 가진 나무가 펼쳐지고, 배경으로는 하이라이즈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공원을 걷고 나서야 그제야 낯선 나라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난다. 시차는 고작 두 시간이지만 적도를 지나 남반구에 있는 나라, 호주 말이다.



로열보타닉가든 끄트머리에는 바다가 있다. 파란 물이 보이는 곳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왼쪽에 희고 둥근 지붕이 보인다. 요 며칠 볕이 강했는지 해안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팔과 다리가 붉게 물들어있다. 뒤늦게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게 생각났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가까이서 본 오페라하우스는 생각보다 질감이 독특하다. 사진으로는 희게 빛날 줄 알았는데 좀 더 아이보리 색에 가깝고 패널 하나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흰 조개를 받치는 계단은 걷다 지친 사람들의 벤치가 되어주고 있었는데, 해변의 모래를 닮은 거칠거칠한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화살표를 향해 가니 박스오피스가 있었다. 박스오피스 앞에서 내가 예매했던 공연이 2월이 아닌 3월 티켓이었다는 걸 발견했다. 다행히 우리가 가능한 일정 내에 볼 수 있는 공연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영화를 배경으로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는 방식이라고 하여 바로 결제했다. 결제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르니 화장실도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제법 멋졌다. 세면대 하나도 신경 써서 설계한 것이 보인다. 건축가가 속상해할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을 나와 담장 바로 밖에서 파는 젤라토를 두 개 샀다. 엄마가 계단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다. 별 기대 없이 산 아이스크림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에는 견과류가 잔뜩 들어있었고,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은 꾸덕하니 진하다. 행복감에 젖어있을 때 즈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편과 함께 휴가를 내어 호주에 온 친구다. 2시간 동안 스냅사진 촬영을 하고 오페라하우스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현대미술관 앞 카페에서 쉬고 있단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친구라 잠깐 얼굴을 보고 가자니 엄마가 흔쾌히 따라나선다. 사실 핸드폰도 먹통이라 엄마 없이는 곤란한 상황이긴 했다. 올드스쿨의 방향감각에 의존하여 어찌어찌 항구를 지나 미술관 쪽에 도착했다. 페리를 타러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오랜 촬영으로 조금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옛날 얘기를 짧게 나누고 서울에서 다시 보자며 헤어졌다.



친구와 헤어진 후에 숙소까지 다시 걸어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트램을 탔다. 엄마가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겨 아프다고 했는데, 그게 굳은살이 아니라 티눈인 모양이다. 하필 여행지에서 아프기 시작해서 걱정이다. 그래도 트램 덕분에 금세 숙소 근방에 도착했다.


저녁 재료와 아침거리를 사려고 다시 마트에 들렀다. 호주 마트는 정말 과일이 싸고 신선하다. 서울에서는 요새 과일값이 너무 비싸 마트에 가서 들었다 놨다 하다가 빈 손으로 집에 오기 일쑤였다. 간단히 사려고 했던 식재료는 점점 많아졌다. 호밀빵, 망고와 아보카도 각 한 알, 사과 한 봉지, 치즈 두 종류, 살라미 한 봉지, 올리브 한 통… 재료가 좋아 고민하면서 고르고 고른 게 그만큼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엄마보다 먼저 샤워를 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규모가 커서 사람이 엄청 많다. 과도 하나를 챙기고 과일을 씻어 자리에서 깎기 시작했다. 데운 호밀빵 위에 치즈를 바르고 잘 익은 아보카도를 썰어서 펼친 후에 살라미를 얹었다. 곁들여 먹을 망고와 사과도 준비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씻고 나온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차려주는 저녁이 있는 삶 어때요” 했더니 “자랑하고 싶어” 하신다. 엄마의 맥주와 나의 무알콜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맛난 저녁을 먹었다니 성공적인 하루다.



- 비행기 담요 15달러(카드)

- 오팔카드 충전 40달러*2인(카드)

- 오팔카드 추가 충전 40달러*2인(현금)

- Coles 마트 유심카드, 텀블러 등(현금)

- Soul 점심특선 20달러*2인(현금)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예매(현금)

- 오페라하우스 앞 젤라토 9달러*2인(현금)

- Coles 마트 식재료, 커피 등 (현금)

- 숙소 잔액 지급 (현금)

- 숙소 카드키 보증금 20달러*2인(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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