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은퇴자와 30대 대학원생의 배낭여행
비행기를 타고 밤새 와서 하루종일 인터넷과 씨름하면서 1만 6 천보 이상 걸은 덕분에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했다.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아침 여덟 시 반까지 통잠을 잔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다. 반면 어머니는 밤새 자고 깨고를 반복한 모양이다. 원래도 불면증이 심한데, 어제 마신 커피가 독했나 보다. 나는 카페인에 예민해서 하루에 마시는 커피 정량이 반모금인데 비해, 엄마는 커피를 좋아해서 통 끊지를 못한다. 커피를 끊어야 불면증이 나아질 텐데도. 같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꾸 딸이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샤워를 마치고 왔는데도 늦잠을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고 같이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어제 장 봐온 음식을 다시 꺼내는데, 빵이 없다. 냉장고를 다시 뒤지고 봉지를 몇 번을 들여다봐도 없다. 식빵 한 덩이를 사서 딱 다섯 조각 먹었는데… 누가 저 봉지에서 식빵만 들고 갔을까? 돌이켜보니 어제 내가 빵을 데워먹는다고 부엌에 가져가서 두고 온 모양이다. 하루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주방에 두고 간 음식은 지체 없이 폐기처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어제저녁이었다면. 스텝에게 문의해 보자는 엄마를 만류하고 포기한 상태로 아침을 먹고 점심도시락을 쌌다.
어제 먹었던 파스타가 영 별로였던 데다가 저녁이 너무 맛있었는지 엄마가 도시락을 싸자고 했다. 둘러보니 게스트하우스 사람들도 도시락을 싸고 있다. 외식비가 비싸고 식자재 값이 저렴한 호주다 보니 길가에서 직접 싸 온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침식사는 그릭요구르트에 사과와 바나나를 잘라 넣은 것이다. 사과는 좀 더 단단하고 셨는데, 엄마는 아침식사 전에 양치를 해서 그렇단다. 오후에 간식으로 먹어보니 과연 그랬다. 그렇지만 엄마의 말에 반박하는 것도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사과 맛이 다르다며 퉁퉁거리다가 얇게 썰어달라고 부탁하고 사이에 살라미와 치즈를 끼워 넣었다. 이제 마트 가서 빵만 사서 끼워 넣으면 샌드위치 완성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도시락을 둘러메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길에 나서자마자 엄마가 “이리 와 봐”를 외친다. 아빠가 궁금해할 테니 셀카를 찍어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제부터 벌써 족히 일백 번은 들은 것 같다. 아마 일만 번을 채울 때쯤 여행이 끝나지 않을까. 그래도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퉁퉁거리는 마음을 곱게 접고 미소를 지어본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해결되지 않는 유심칩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트에 먼저 들렀다. 이미 뜯은 유심칩이라 마트 재량으로는 환불이 안 되는 모양이다. 본사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챙겨서 마트 옆 다른 통신사로 향하려고 했는데, 복잡한 건물 구조 탓에 길을 잃고 어제 들어가 보지 않은 골목으로 갔다. 바로 눈앞에 인터넷 먹통이던 그 통신사 매장이 있었다. 때로는 여행에서 이런 작은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직원도 마침 한가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마트에서도 유심칩을 파냐며, 그들이 파는 가격과 같다고 했다. 친절한 직원을 만난 덕에 바로 개통에 성공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신호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어쩐지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작은 빵 몇 덩어리를 사서 건물을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또다시 북쪽이다. 목적지가 같다고 경로도 같을쏘냐. 어제는 시내구간을 따라 걸었다면 오늘은 일찌감치 동쪽으로 틀어 하이드파크를 초입부터 즐겨보기로 했다. 하이드파크 입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지나 걷다 보니 철창 뒤에 숨은 작은 정원이 하나 보인다. 루이 5세와 6세를 기리기 위한 정원인 샌드링엄 기념정원과 분수(Sandringham Garden)다. 도시농부인 엄마 눈에는 그곳이 텃밭으로 보였나 보다. 내 눈에는 꽃과 풀인데, 엄마 눈에는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는 맥문동, 야채로 먹는 셀러리, 차로 우려 마시는 로즈메리다. 단순히 꽃으로만 이뤄진 정원보다 훨씬 낫다며 좋아하신다. 단순 도시민과 도시농부의 시선은 이렇게나 다르다.
그래도 본업은 건축이다 보니, 여행을 나와서도 그 동네 유명한 건축물을 찾게 된다. 시드니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일본인 건축가 카즈요 세지마(SANAA)가 지은 건물이 있다. 바로 아트 갤러리(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다. 아트 갤러리는 시드니 시내에서 가장 큰 두 공원, 하이드 파크와 로열 보타닉 가든 사이에 있는 넓은 잔디밭인 더 도메인(The Domain) 바로 옆에 있다. 세지마는 기존의 남쪽 건물에 증축하여 해변 쪽에 더 가깝게 위치한 북쪽 건물을 설계했다. 이 건물은 시드니 최초의 공공미술관이며,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되었다.
건물은 사각형의 매스가 제멋대로 층층이 쌓인 것처럼 보이는데, 해변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형에 순응하고 주변과 조화로울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은 G(그라운드) 레벨로 입장한 다음에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4층을 차례대로 관람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전시를 제외하고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여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지하 4층에 도착하자 ‘The Tank’라는 사인이 보인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연합군에게 줄 기름과 연료를 저장하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3층의 공간과는 거대한 원형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결국 이 공간을 보기 위해 거금 35달러를 내고 입장권을 끊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4층까지의 거대한 공간을 할애한 것은 바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였다. 1911년에 태어나 2010년에 사망하기까지 천수를 누리며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했던 여성 예술가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거미 동상으로 인기를 끄는 작가다. 리움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바로 그 거미 맞다. 이번 전시 제목은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낮이 밤을 침범하였나 혹은 밤이 낮을 침범 하였나?)>다. 지하 2층의 콘셉트는 낮, 지하 4층 탱크의 콘셉트는 밤이다. ‘낮’은 작가의 주제별로 작품을 소개한다. 뜨개, 금속, 대리석, 나무, 퀼팅, 자수 등등 정말이지 다양한 재료를 통해 작품세계를 펼쳤다. 거미는 작가에게 무섭게 대한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인데, 창작가이자 고치는 사람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은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부인이자 어머니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기 파괴적인 사랑에서부터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넘쳐난다.
‘낮’의 막바지에는 이런 작품이 있다. 푸른 테두리의 분홍색 손수건에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나는 지옥에 갔다 왔다. 말하자면, 그건 환상적이었다).”이라고 하늘색 실로 수놓았다.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한 마디가 아닐까. 작가는 노년까지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계속한 게 분명하다. 95세에 만들었다는 작품을 보면 그렇다. 스카프와 블라우스를 오려내어 바느질로 콜라주한 작품인데, 해가 중천에 떠 있다가 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둥근 해를 둘러싸고 퍼져나가는 천이 시간에 따라 기울어지는데, 한 장면에 한 시간씩 표현하여 총 12개의 연작으로 만들어냈다. 옆에 있던 할머니 관광객과 살짝 부딪치며 스몰토크를 했는데, “95세에 이걸 했다니 진짜 건강했나 봐요”라고 운을 띄우자 “나도 집에 있는 스카프로 한번 만들어볼까 봐요” 하신다. “예술가가 되기에 늦지는 않았죠”라고 하며 헤어졌다.
‘밤’은 어두침침한 콘크리트 공간 안에서 핀라이트와 프로젝터를 활용한 전시다. 2층 높이의 공간에 음악 소리가 울린다. 루이즈 부르주아를 담은 영화와 음성이다. 거대하게 만든 화장대 거울, 천장에 매달아 놓은 사람의 몸, 구석에 자리 잡은 사람의 얼굴을 한 고양이, 연료탱크 두 개를 연결하여 만든 작품 등 위층과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지하 2층에서는 작품에 집중했다면, 지하 4층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즐기기 바빴다. 음악만 바꾸면 바로 클럽이 될 것 같은 공간이다. 베를린의 잠룽보로스가 생각난다. 전쟁이 만들어낸 공간들은 차갑고 거대한, 같은 어휘를 말한다.
미술관을 다 보고 나와서 바로 앞의 항구로 향했다. 울루무루 만에서 손가락처럼 쭉 뻗어 나온 ‘The Finger Wharf’다.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당시 물류창고이자 항구로 쓰이던 공간을 현대적으로 다시 만든 공간이다. 시대적 이데올로기가 변함에 따라 같은 위치의 같은 공간도 다른 용도와 쓰임으로 재탄생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곳은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 공간이자 요트를 정박해 두는 항구로 사용 중이다. 샴페인에 점심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 항구의 끄트머리로 갔다. 내내 흐리더니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가자마자 볕이 쏟아진다. 그래도 파란 하늘 아래에 앉아 흔들리는 맑은 바닷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한참 걸어 피로해진 발을 쉬었다.
건너온 김에 울루무루 지역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근교 지역이라 좀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시내에서 항구까지는 부촌이었다면, 이곳은 2~3층 규모의 낮고 작은 목조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동네 마트 앞에 있는 나무그늘에서 노숙자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에서 찾은 약국에 들어가 엄마를 내내 괴롭히고 있는 티눈에 쓸 밴드를 구했다. 붙이니 한결 편안해진 것 같다.
저녁 7시에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는 공연을 예매해 두어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저녁도 해결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오로라 플레이스를 구경했다. 어제는 핸드폰이 작동을 안 해 확인을 못했지만 지나가면서 비례나 재료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로비에 엄마를 앉혀두고 잠시 둘러보는데 역시 렌조는 렌조다 싶다. 그 지역에 딱 맞는 건축을 하는 건축가답게, 유리와 철골, 그리고 자기 타일로 완성했다.
원래는 저녁으로 피시앤칩스를 먹으려고 했는데 유명하다는 집이 세 시에 닫아 못 먹게 되었다. 반 블록 전에 지나왔던 길에 햄버거 냄새가 기가 막히던 집에 옳다구나 하고 들어갔다. 내 메뉴는 트러플 버거에 감자튀김 추가, 엄마 메뉴는 치킨 버거에 흑맥주 추가다. 버거 맛은 끝내줬다. 엄마는 맥주가 너무너무 맛있다며 술 끊은 나에게 연거푸 세 번이나 권했다. 향은 정말 좋았다.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나도 행복하다. 외식 하나가 성공해서 다행이다. 맥주가 맛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이 엄마한테 매일 20달러치 맥주를 사드리라며 용돈을 보내왔다. 학생은 직장인의 용돈을 사양하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오페라하우스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의 부둣가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금요일 저녁이라 모두가 불금을 즐기러 나왔나 보다. 어제와 비교도 안 되는 인파다. 부둣가에서 해변가를 따라 쭉 걸으면 오페라하우스가 나온다. 어제와는 반대편 길로 온 것이다. 이 편이 훨씬 뷰가 좋다.
어제 박스오피스에서 예매한 공연은 <‘The Man From Snowy River’ in Concert>다. 오스트레일리아 시인이 쓴 동명의 시를 멜버른 근교의 농촌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다. 1890년에 지은 시에서 영감을 얻어 1982년에 개봉한 영화를 2024년에 콘서트 버전으로 보다니, 세월을 건너 건너온 문화유산을 즐기러 온 것이다. 맨 앞자리를 얻어서 목 아플 걱정을 조금 했는데, 공연 시작부터 계를 탔다.
일곱 시 정각이 되자 웬 인터뷰 영상을 틀어줬는데, 감독을 먼저 소개하고 뒤이어 주연 두 명이 등장하는 장면과 함께 실제 배우들이 무대로 나왔다. 영상에서 봤던 모습에서 그대로 나이 든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두 배우는 이제는 추억이 된 영화를 찍을 때의 에피소드들을 풀어놓았다. 바로 앞에서 그들의 숨소리가 들릴만한 자리에서 토크쇼를 즐겼다. 영화에 등장한 말, 여배우, 남배우가 순서대로 캐스팅되었는데, 남배우 오디션 날 수많은 배우들을 제치고 여배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케미스트리로 단번에 뽑혔다고 한다. 음악감독도 마찬가지로 세 개의 테이프 중 무작위로 골라서 튼 테이프를 듣고 바로 채용했단다. 여러모로 열정적인 촬영현장이었던 모양이다.
뒤이어 오케스트라가 영화의 장면장면마다 음악을 연주했다. 놀랍게도 인터미션이 있던 시대의 영화다. 인터미션 전에는 음악이 별로 없어 연주자들이 다소 지루해 보였는데, 인터미션 후에는 영화가 점점 극으로 치달으며 다양하게 변주된 멜로디가 흘렀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때 그 시절 정말 인기 있던 영화였나 보다. 영화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백인 99%의 관중들이 관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지역 향토음식으로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남의 가족식사에 참여한 기분이었다. 근데 밥이 제법 맛있는 식사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시드니 시내를 밤이 감싸고 있었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인파를 따라 다시 부둣가로 향해서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잃어버렸던 빵 한 덩이를 다시 사고 몇 가지 과일을 챙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