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브런치를 좋아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따뜻한 이야기와 위로가 있는 곳이었다.
브런치에는 유독 상담을 하시는 분들의 글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그분들도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는 같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입장이었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 구독자가 늘고 책을 내고 나면 어느새 바쁜 냄새가 글에서 난다.
글에서 나는 바쁜 냄새는 때론 위압감으로 어떤 날은 거만함으로 어떤 날은 멀리멀리 있는 아주 유명한 상담사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처음 브런치에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 구독을 시작하던 그 시기에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었는데.. 어느 날.. 너무 먼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도, 그 사람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대부분의 상담자들이 내담자를 대하는 것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웃이었겠지만,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면서 어느 날 상담자의 입장에서 브런치인들을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상담자의 입장에서 브런치를 개인의 성장의 발판으로 사는 것에는 반대한다.
글을 잘 써야 좋은 상담사는 아니지 않을까? 반대로 글을 잘 못 쓰면 나쁜 상담사일까?
그건 아닐 것이자.
내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상담사들의 모습은 영화에서처럼 밝고, 따뜻하고 현명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위트가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만났던 상담사들과 상담을 공부하시는 분들, 상담자가 되기를 희망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차갑거나 재미가 없었고, 지극히 현실적인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각자의 상처가 있어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이 많았다.
자, 여기서.."내담자"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상담사들이 부르는 호칭이다.
논문이나 책들에 많이 쓰여지는 대중적인 용어이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을 위해 한번 더 설명을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진짜 상담은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처럼 멋있지도 않고, 따뜻하지 않아서, 내가 만나게 된 상담사가 그리 현명하지 않아서
잘못된 충고를 해줄 수도 있다.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똑같다.
내가 바쁠 때 전화 오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처럼
내가 피곤할 때 인상을 쓰고 목소리가 힘이 없는 것처럼
상담자들도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물론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상담자들을 평가하는 것은 내담자의 일이고,
내담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으니까 상담자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내담자가 상담자로서의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내담자가 처음 왔을 때와 라포가 형성된 뒤에는 상하관계가 바뀌게 된다.
처음 내담자들이 상담자를 방문했을 때는 서로 조심스럽지만 내담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검사를 하는 초기 단계를 거쳐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라포"라고 한다.
상담자들은 내담자와 라포가 형성되고 나면 자신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일방적인 관계에서 내담자를 바르게 인도한다는 명분 하에 충고를 하게 되고 내담자도 상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상담을 거듭하면서 관계가 친숙해진 가운데 내담자의 말에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거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내담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게 된다. 상담자는 결국 상하관계를 만들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관계이지만 상담자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이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우리 문화적 특성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아직 우리 문화는 상담을 문제가 있어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담자들 자신들도 내담자들이 문제가 있어서 온다는 관념적인 생각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하 관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수직적 관계에서는 작은 충고나 잘못을 지적한다거나, 내담자를 주관적 판단하여 말할 경우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상담자의 잘못된 말이나 단어 선정은 내담자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는데, 동등한 친구의 관계가 아니기에 내담자는 상담자의 말을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말하는 라포가 형성된다는 것은 내담자가 상담자를 믿고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상담자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때로 상담자의 말이 틀렸더라도 그 말을 믿고 상처를 받게 된다.
나는 여러 명의 상담사들을 보았다. 상담료가 수십만 원대인 상담사부터 무료 상담사까지 만나 보았지만, 그 가격만큼의 차이로 그들을 판가름할 수 있을까.
상담은 돈으로 가격을 매기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분야이다. 사람의 마음이 달린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하나의 장르와 플랫폼이 만나서 일부분의 상담자들을 "좋은", "탁월한", "믿을 수 있는" 상담자로 인증해주고 있다.
누군가가 좋은 상담자인지 아닌지는 그의 내담자밖에는 알 수 없다.
현실에서 상담자들끼리 내담자의 이야기를 나눌 때는 결국, 내담자는 '문젯거리가 있는 내담자'일뿐이니까 말이다.
어떤 내담자도 자신 앞에 앉아있는 상담자가 자신을 문젯거리라고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상하관계일 때 상담자와 내담자의 거리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있다 하더라도 그 거리는 100층 빌딩만큼 멀고, 그 길은 가시투성이의 상처로 가득한 길이다.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이다.
반대로 좋은 내담자와 상담자의 거리는 그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것이 아니라
의자 하나의 사이만큼 똑같은 거리에서 나란히 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상담자를 sns 활동을 잘한다는 것이나, 글을 잘 쓰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