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민족"이 되기 위해 치룬 희생은??
어릴 적에 외할머니 댁에 다듬이돌과 방망이가 있었다.
호기심에 할머니 흉내를 내며 꽤 무거운 방망이를 두들기고 놀았던 것도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이불 홑청을 빨고 풀을 먹여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리셨다. 할머니가 홑청과 이불을 펴놓고 안경을 쓰신 채 바늘귀에 실을 끼워 달라 하던 그 옛날이 아련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오랜 습관대로 이불 홑청을 빨고 다시 꿰매셨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드셔서 못하실 때까지 말이다.
아주 먼 옛날 같지만... 적어도 내가 10살 이전이니까...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하얀 이불 홑청을 꿰맨다고 반듯하게 펴는 엄마를 도왔던 기억도 난다.
지금의 우리는예전처럼 복잡한 공정은 잘 머릿 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이불은 사면되고, 겨울에는 이불 커버의 지퍼를 열어 오리털 패드를 넣을 수도 있고 전기장판을 쓸 수도 있다.
또 세탁소에 맡길 수도 있다. 옷도 그렇다. 전화만 하면 된다.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세탁기를 썼을까?
언젠가 우리 집에는 "짤순이"가 생겼고..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는 늘 "세탁기"가 있었다.
세탁기가 없다면? 세탁소가 없다면???
수도도 없다면? 비누도 없다면??
그 옛날에는 빨래를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자랑스러운 "백의민족"인데 말이다!!!
개항의 시기, 아직 옷을 지어 입던 시절이었다.
겨울 옷은 솜을 넣고 꿰매야 했다.
이 시절의 세탁이란 먼저
1. 바느질되어 있는 옷을 뜯어 솜을 꺼내고, 잿물에 담근다.
2. 가장 가까운 냇가나 우물, 어디든지 머리에 이고 간다.
3. 빨래를 판판한 돌에 놓고 방망이로 두들기거나, 표면이 울퉁불퉁한 나무판에 억척스레 문지른다.
4. 어떤 빨래들은 부뚜막에서 뜨거운 물에 삶아내야 한다.
5. 그리고 다시 빨래를 머리에 이고 가서 널어 말린다.
6. 빨래가 마르고 나면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광택이 날 때까지 두드린다.
7. 다시 솜을 넣어 꿰매거나, 이불일 경우 또 꿰맨다.
그 시절 꽤 오래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그의 책에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여성들은 빨래의 노예다."
"3월 초 처음 서울을 방문하여 남산에서 종로를 내려다 보았을 때 나는 종로를 그 전해 내린 눈더미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좁은 골목들의 미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종로는 길 가운데 두줄로 늘어선 시전 상점들에 의해 교란되었을 뿐 원래는 거대한 하나의 도로였다. 또 눈더미처럼 보이던 것은 빨래라는 한국 여인들의 그 지칠 줄 모르는 노동이 이루어 놓은 하얀 한국 두루마기의 물결이었다."
조선에서 밤을 보내본 외국인들은 멀리서 들려오던 여인들의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기억한다.
때로는 밤새도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쓸쓸하고, 가련한 소리로 말이다.
나는 할머니 덕분에 다듬잇돌과 방망이 소리를, 적어도 어릴적 그리운 소리로 기억하는 행운을 가졌다.
지금은 어느 집에나 세탁기가 있고, 수도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고, 세탁소에 맡기면 다림질까지 해서 가져다 준다.
2015년의 우리는 그때의 여인들처럼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