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는 순간에도 아이들과의 거리를 놓지 않으려 애썼던 교실의 기록.나는 20년이 넘도록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다.
지금은 조그마한 교습소를 운영하는 원장이다.
영어를 잘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는 시간이다.
20년 넘게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아이들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나 역시 함께 자랐다.
우리는 어느 순간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섰다.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교습소를 오래 운영하다 보니
이곳은 졸업한 아이들이 다시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다.
성인이 된 제자들이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진로를 고민하고, 인생을 묻는다.
나는 이 일로 엄청난 부를 이룬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을 오랫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아이들 덕분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기도 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오래 함께한 나는 사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꽤 많이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웃음 속에서 영어를 배우고, 관계 속에서 자라는 교실의 하루.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는 감정적으로 욱하지는 않는다.
또, 이유 없이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대화와 수많은 학습의 과정 속에서
나 역시 아이들 하나하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는 순간,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우리가 정말 선생님을 화나게 했구나.”
그리고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나는 화를 내고 그날로 끝낸다.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리셋된 얼굴로 아이들을 만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아이들이 나의 화를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영어 교습소이기에 내가 가르침에 중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꾸준함과 성실함만큼 강한 교육 효과는 없다고 믿는다.
일찍부터 나와 함께 공부하며 스스로 하는 습관을 만들고,
호흡을 맞추는 법을 익히다 보면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처음엔 자신의 성적에 스스로 놀란다.
그러다 그 성적이 자리를 잡으면 어느 순간 친구를 데리고 온다.
그 흐름이 우리 교습소에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내 교습소는 아직도 작다.
주변 학교의 아이들도 해마다 줄어든다.
흔히 말하는 교육 중심 도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내가 더 오래 이곳에 남아주길 바란다.
아이들은 항상 내게 말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편하게 찾아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싶다고.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선생님과 의논하고 싶다고.
이번 연재에서 나는 공부를 잘 시키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내가 배운 인생의 조각들을 나누고 싶다.
화를 내기도 하지만 사랑받고 있음을 아이들이 느끼는 교실.
그 ‘신뢰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부터 천천히 꺼내보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배우고 있는 '글빛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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