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광주시립미술관 《김재형·정승주: 찬미와 탐미》에서 만난 두 화가의 시간
by
글빛 지니
Mar 2. 2026
"‘찬미와 탐미’가 나란히 걸린 전시장.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은, 누군가의 생애를 조용히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려한 색채 속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보도자료를 통해
전시 소식을 먼저 접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가봐야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 양성 교육을 받았던 동생이
개막식을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조금 늦게 찾았을지도 모른다.
평일 저녁이었지만
전시장은 붐볐다.
지난 26일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김재형·정승주: 찬미와 탐미》 개막식. 평일 저녁임에도 많은 이들이 자리를 채웠다.
작가의 가족과 제자,
동문 선후배들이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두 화가의 작품이
슬라이드로 흐르고 있었고,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듯 서 있었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의 2026 원로·작고 작가전으로,
신앙(성경)을 중심으로 작업해 온
김재형 작가와
설화를 바탕으로 서사 회화를 구축한
정승주 작가의 화업을 함께 조명한다.
광주시립미술관 《김재형·정승주: 찬미와 탐미》 전시장 입구. 전시 제목 앞에서, 두 화가의 시간이 시작된다.
전시는 세 개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의 사실적 화면,
주제가 분명해지는 전환기,
그리고 예술적 완성에 이르는 시기까지.
김재형 작가의 화면은
묵상처럼 느껴졌다.
남도의 풍경 속에 스며든
성경의 장면들.
강렬한 색채 속에서도
기도의 시간이 머무는 듯한
고요함이 있었다.
전시장 한편에 상영된 작가 영상. 화면 속 작가와 현재의 관람객이 한 공간에서 조용히 만난다.
하지만 나는
정승주 작가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여인이 많았다.
설화 속 인물들,
그리고 ‘베가’라는 제목의 연작.
천주교에서는
성녀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림 속 여인들은 화려했지만 고요했다.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감정이 가장 응축된 순간을
붙잡아 둔 화면처럼 보였다.
색은 강렬했고,
표정은 절제되어 있었으며,
화면은 장식적이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었다.
설화 속 여인들이 걸린 벽 앞에서, 한 관람객이 오래 머문다. 그 고요함이 나를 붙잡았던 순간과 닮아 있다.
신앙과 설화.
서로 다른 서사처럼 보이지만
결국 두 작가는
모두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신을 향한 찬미로,
다른 한 사람은
인간을 향한 탐미로.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며
나는 깨달았다.
이 전시는
그림을 모아놓은 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붙잡았던 태도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것을.
평일 저녁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는
작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나는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삶을 건 사람이 남긴 질문을 마주했다.
그림은 결국,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그림으로 만나는 글빛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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