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흘려보내고, 희망만 남긴 5시간의 기적”
어릴 적 가수를 동경했지만, 광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공연을 자주 보러 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콘서트 문화는 늘 미지의 세계였다.
대학교 1학년, 친구 따라갔던 엄정화 콘서트.
무대 위 댄서 김종민의 춤사위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음악을 귀로만 듣고, TV와 인터넷으로만 접하며 살았다.
30대에는 엄마와 함께 이승철 콘서트를 갔다.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였기에 효도 차원이었다. 알던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즐겼던 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내게 콘서트는 여전히 멀고 먼 세계였다.
게다가 나는 ‘몸치’였다.
노래방에 가도 몸을 흔드는 게 부끄러웠고, 콘서트에서 뛰며 노래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40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에너지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흥겨운 자리에 있는 게 좋아졌고, 목청껏 소리 지르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여름, 나는 드디어 ‘싸이 흠뻑쇼’에 갔다. 갑작스러운 기회라 준비도 없었다.
“싸이 노래는 많이 아니까 따라 부르면 되지. 여름 물놀이 못 했으니 시원하게 물 맞고 오자.”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나는 이석증 환자였고, 한여름 장거리 운전으로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과연 체력이 버텨줄까 두려웠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 무대 중앙에서 튀어 오른 싸이,
그리고 첫 곡부터 쏟아지는 물줄기. 내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물이 퍼붓고 불꽃이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흔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예술이야’가 울려 퍼질 때, 진짜 예술은 무대 위가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살아내는 우리 자신이라는 걸 느꼈다.
화면에 뜨는 가사 덕분에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나는 싸이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미쳤구나. 그런데 공연을 보고 있는 나도 미치게 만드는구나.”
‘감동이야’라는 곡은 내 가슴 깊이 박혔다. 지금도 차 안에서 반복해 듣는다.
옆에 있던 50대 관객도, 젊은 팬들도 모두 하나 되어 뛰었다. 남녀노소가 함께 울고 웃던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40대라고 해서 늦은 게 아니었다. 내 안에는 여전히 뜨겁게 뛰는 심장이 있었다.
후반부, 싸이가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2016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과 이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그때, 나는 버스 안에서 늘 이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견딜 수 있어.”
그렇게 버텼던 시절이었다.
그 노래가 무대 위에서 다시 울려 퍼졌을 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절망이 아니라 치유였다.
9년 전의 상처를 이미 이겨낸 내가, 다시 그 노래를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싸이가 내게 “잘 버텼다, 이제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흠뻑쇼가 남긴 것
“상처는 사라지고, 오직 치유와 위로만 남았다.”
본 공연보다 더 길었던 앵콜, 무려 5시간 가까운 무대.
나는 단 한순간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또 한 뼘 성장한 기분이었다.
그날의 흠뻑쇼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기댈 곳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안의 불씨는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일도, 또 다른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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