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온 장기 여행자

by 만주

달라이 라마님과의 아침 식사



내 가슴에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이는 누군가로부터 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진심 어린 포옹을 받았을 때, 드는 기분과도 같았다.


5월 7일, 우리는 달라이 라마, 그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따로 사무실에 가서 신청을 하면 달라이 라마를 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우리는 결국 그의 건강상의 이유로 개인적인 만남은 못 만들었던 참이었다. 7일 그날은 어느 누구도 메인 티베트 사원에 오면, 그의 장수를 기원하는 세리머니와 함께 그를 뵐 수도,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적인 자리였다.


다람샬라,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티베트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고, 망명정부와 함께 달라이 라마의 존재를 배우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그의 철학과 티베트 불교 사상에 대해 아는 지식이 많지 않다. 오직 나는 이곳 주민들을 통해 그를 향한 겸허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삶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달라이 라마'의 존재는 영어로 'his holiness' 자체로 불리기도 한다. holiness란 신성함, 그 자체가 아니 인가. 그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신성함, 그리고 거듭된 환생의 이야기. 그는 사람이 아니라, 부처와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는 어떠한 신이 아니라, 거듭된 환생, 수많은 삶을 거쳐가며,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유지되는 신성함, 그 자체인 걸까?


카쉬미르 테러 사태에 이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 소식이 있었다. 뉴스 미디어에서는 공항 몇 군데를 5월 10일까지 폐쇄한다 하였고, 우리가 있는 다람샬라도 그 경계구역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어느덧 걱정과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나처럼, 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놓고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나의 파트너 장처럼 혹시라도 전쟁이 여기까지 번질지도 모르니 우리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된다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더군다나 12일 밤 비행기로 우리는 델리에서 한국으로 떠나기에, 델리까지 가는 길이 마치 혹시나 피난길처럼 막히지는 않을지 걱정까지 하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이는 10일을 기점으로 잠잠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그 평화의 소식에 안도를 표하는 듯했다. 이런 소식들이 오고 가는 일에도 이곳 사람들은 큰 믿음을 위해 더욱이라도 기도를 하러 갔고,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달라이 라마 존재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합창의 소리가 들린다.

철통 같은 경호와 함께, 그는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까지 평온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그 공기를 만들어내었고, 아쉽게도 조금은 멀리 있어서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가 지나감과 동시에 나의 가슴은 무언가로 꽉 찬 듯, 벅찬 듯 행복함과 눈물이 차오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사진과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그를 영접하러 가는데 카메라는 무슨 소용이람. 카메라와 폰은 반입 불가라는 말을 우리는 잠시의 실망도 없이 납득하였다.


축복의 형태로 이어지는 의식으로 우리 또한 축복을 나누어가지는 듯, 따뜻하고 구수한 티베트 버터 차와 과자, 약밥처럼 달달하게 만들어진 건포도가 들어간 쌀밥, 그리고 바나나 등이 수행자들을 통해서 거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졌다.


장은 다람샬라에 와서 그래도 달라이라마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피식 웃었다.

시간과 공을 들여 그 순간의 느낌을 설명하려 하였다. 나만 마치 혼자서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려고 할 때, 그는 이렇게 순수한 얼굴로 행복해했다.

순수함에서 피어올라오는 즐거움의 이름으로.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옛날 옛적 여행자는 무엇을 하였을까?

예부터 견문을 높이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유학을 가고는 했다.

그들이 여행을 떠났던 이유는 ‘나의 삶을 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았다.


관찰이라는 여행의 일상적 시간을 통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를 재조명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행동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규정짓기도 하였음을 다시 조명하기도 했다.

영어로는 How are you doing?

누군가 "어떻게 지냈니?"라고 물으면,

나는 곧잘 이런 이런 일들을 하였고, 어디를 가보았고, 내가 이루었던 것들, 성취한 것들, 경험한 것들을 위주로 말을 하고는 했다. 심지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었는가? 굉장히 단순한 질문에도 나의 행동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오랜만에 만난 여행자 친구가 있었다. 그와는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면서, 주기적으로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가 맥로드간지에서 지내었을 때, 그는 조금 더 위의 동네에서 지내었고, 2주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내었는가 서로의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러다 이상하게 그의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과시하듯이 한국에 들어가서 새로 시작한 원석 비즈니스 주얼리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러 다니고 싶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후회를 해보았다.


거창한 소식이 없어도,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그저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잠깐 집에 가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렇게 간단히 말하는 것이 어려운가? 여태껏 여행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돌아가기 전에 잔뜩 부풀어 있는 계획과 프로젝트를 호기롭게 가지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보이는 것에 의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다 생각할 때, 주변에 고마움을 표해야지.


다시 다짐해 본다.


내가 얼마나 많은 덕을 보고 있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본다.


이제 집을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여행을 끝마치고 집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갖고 와, 이제야 돌아가는가. 처음에는 이것도 하고 싶었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여행을 통해 시간이 많았다고 느꼈다. 소위 ‘나의 시간’이 많아지니, 나는 욕심을 내어보았다.

시간이 많으니까, 이 정도는 해봐야지.

일상의 소중함이 어느새 순간을 갉아먹는 기만적 행동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시 현재에 충실한다. 우리 모두,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햇볕을 쬐어보고 걸어본다. 걷다 보면 일상의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충만해지는 그 소소함이 들어선다.


이렇게 좋은 날이 많은데도 때로는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그 이미지와 기대감, 인정받고 싶은 욕구, 무언가가 되기 위한 욕심들이 나의 목소리들로 괴롭히기도 한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남의 목소리를 듣는다.

남의 언행을 문제 삼기 전에 나의 목소리를 먼저 다시 들어본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였는가?

그에게 상처받는다는 말을 하기 전에, 문제 삼기 전에 나는 얼마나 사랑을 이야기하였는가?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떠나기 전, 마지막 해가 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덧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정신없던 바깥의 풍경을 뒤로 한채 졸림이 몰려온다.

다람샬라에서 짧으면서도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가까운 친구들이 생겼다.


한 가정을 이룬 내 또래의 여성,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순수한 젊은 티베트 친구들. 그리고 지나가다 눈인사로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물어보았던 티베트 승려, 수행자분들. 나에게 상세히 하나하나 어떤 원석인지 설명해 주시던 원석가게의 주인아저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크게 다시 중요하지 않았다. 다람 샬라 이곳은 티베트인들 뿐만 아니라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인도의 경제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들의 삶 속에 가난이 보이기도 했지만, 불평을 하는 사람들보다 순간을 받아들이며 기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았다.

원하는 대로 우리처럼 여행을 못 가는 이들로부터 다음 해에 올 거지?라는 소리에 쉽사리 내년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꼭 올 거라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집요하게 물어보는 친구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지만, 자주 가던 티베트 카페 주인장이 지켜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니까, 저렇게 꼭 보고 싶어서 말을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굳이 '착해질 필요'가 없다며, 요새는 그 '착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나 또한 굳이 착하고, 친절하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 바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세상처럼.


더 이상 손해 보고 싶지 않고,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가여운 나의 마음처럼.


그럼에도 친절한 눈인사와 진심 어린 세심한 행동들은 전염된다. 단순하고, 별 것 아닌 행동으로 우리는 연결되고, 알아가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번 여행의 이야기를 그렇게 마무리 짓지 않을까.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던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돌아온 이곳은 여전히 나의 오래된 모습을 박제해 놓은 듯 기억하고 있다. 그 차이에서 비롯된 부적응의 시간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다.


변하고 싶었고, 실제로 달라졌다고 느꼈지만, 내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던 것은 내 주변의 ‘관계들’이었다.


코로나 시기를 이유로 4년 동안 호주에서 지내며 여러 이유로 한국의 집을 찾지 않았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고, 외할머니는 급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 모든 일이 내게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완벽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딸이 집에 오지 않자, 결국 참다못한 엄마는 생애 처음으로 혼자 해외 비행기를 타고, 호주까지 나를 보러 오셨다. 그렇게 찾아오신 엄마를 통해 나는 오래전 나의 모습을 다시 보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내 모습들을 엄마에게서 발견하며 괜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세월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컸구나.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그 깨달음은 마냥 달콤하지 않았다.

나는 괜히 엄마에게 투정도 부리고, 이유 없이 화도 냈다.

왜 이런 내 모습이 자꾸 보이는 걸까. 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엄마에게 떳떳한 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을까.


그럼에도 가족과의 시간은 조용히 나를 다시 안아주었다.

사실 내가 원했던 건, 그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5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느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가족에 대한 기대가 얽혀 나를 괴롭혔다.


이 소소한 순간들을 잊지 말자고.

그리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픈 몸을 집에서 다독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한 번씩은 한국에 와야만 했다.

매해 새로운 모습을 배우고 돌아오는 나를, 집은 언제나 모질면서도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상하게도, 기나긴 여정 끝에 집을 찾으면 항상 어딘가 몸이 아프다.


집에 돌아온 지 2주가 되어간다.


2주라는 시간은 길고도 길어,


인도의 차선 없이 빵빵거리며 자유롭게 달리던 차들과 오토바이들,

큰 도로든 작은 골목이든 느릿한 걸음으로 평온을 지키던 소들,

햇살을 즐기며 자기 구역을 누비던 개들,

좋든 싫든, 귀찮든 반갑든 간에

언제나 먼저 다가와 말을 걸던 인도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이곳,

질서 정연하고 조용하며,

모든 것이 새것처럼 반짝이는 한국에서는

꿈처럼 느껴진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는데, 사라져버린 장면처럼 말이다.



다시 찾은 부모님의 집은 이번 해부터 재건축에 들어가 이사를 가야 할 예정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아무 특색이 없다고 느꼈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아쉬움이 생겨 다시 보니 아름다운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해, 단지 구석구석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들과 시멘트 아파트들조차 정이 들어버렸다.

무엇을 그렇게 우리는 또 새것을 찾아, 깨부수어야 한다.



10개월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음식이나 물, 날씨 탓에 탈이 나기도 했지만, 이유 없이 아프고, 몸살이 나고, 쑤시는 이 느낌은 오히려 한국에 와서 시작되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오래된 친구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 나의 옛 모습을 기억해 주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다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

나의 오랜 친구는, 마치 새로운 나를 예전의 친구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듯해서 좋았다.

새로운 여행을 하든, 똑같은 직업을 이어가든, 우리는 결국 그 순수한 알맹이로 서로를 놀려먹기에 바쁘다.


작년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친구들 중 남자애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결혼식은 돈이 많이 들고 준비할 것도 많은 복잡한 행사처럼 느껴졌지만, 평소에 못 보던 친구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집도 없이 떠도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고, 내 친구들은 어느새 세상에 자리 잡고 각자의 이름과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어른들께 인사하는 친구들을 보며,

이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멋있다. 생각하면서도,

서로를 놀려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잠시 안도했다.


나는 곧 또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도 마치 당연한듯 이제 나를 만나면 묻는다.


“다음엔 어디로 가?”


이제는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몇 달간 머물며,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결혼식장에서 친구 하나가 말했다.


“네가 우리 중에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미소만 지었다.


“인도는 좀 위험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도,

해주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이 경험, 저 경험,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야 생각났다.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사실은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든

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10개월 동안 여행을 다니며 글쓰기를 유지하는 것도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지만, 그 도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상으로부터 아름다운 여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읽어주신다는 기대감 없이 최대한 제가 보는 것,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단어 하나 하나에 마음과 의도를 넣어 글을 써보았습니다.


네팔과 인도 10개월간의 여정은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저의 한 몸과 눈들이 되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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