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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Aug 15. 2024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힘들까

<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라는 책을 읽고

1년 전 즈음-회사에 합류한 지 1년 6개월가량이 된 때-, 2~3주 동안 저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부위를 마취제 없이 찢고 들어가서, 쌓여 있는 고름을 빼내고 소독한 후에 봉합을 하는 과정이니까요.

눅눅하고 냄새나는 고름을 제거하고 삐뚤빼뚤 봉합된 피부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처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깊어져서 동굴 속을 헤맬 때, 유튜브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p1dMLZoM6M8)을 보다가 <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영상 내용이 흥미로워 한 권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대략, '금융 자본가들이 좋은 일을 하는 이유는 다 자기한테 이득이 되게 때문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링크의 영상을 보신 분이라면 굳이 읽어보지 않으셔도 되겠지만,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제가 생각하는 책의 핵심 문단을 공유합니다.)

드렉셀의 파산은, 과거에는 이 시장에서 배제되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크본드 시장을 격렬하게 비난했던 한 은행이 다시 시장을 탈환하려고 벌인 일에 의해 재촉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드렉셀 은행의 파산과 함께 막을 내린 80년대는 포드주의 귀족계급과 신 금융자본 대표 간의 힘겨루기 시대였다. 후자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그들 의 하수인들이 자취를 감추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신 금융자본을 긍정적 이미지로 포장하는 데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이들 중 일부는 아마도 제일 덜 충명 하고 경제적 자원 이외에 다른 자원이 가장 결핍된 자들 유죄 판 결을 받고, 수감되고, 금융계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국면 전환과 새로운 이익 창출 기회를 재빨리 포착하여(어쨌든 이것이 이들의 직업본능이다) 자 신들의 약탈자 이미지를 지우고 시민 미덕의 챙피언으로, 존경받는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관투자가들은 완력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것만으로 권력을 안정화하고 정당화하기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강 한 요구를 느낀다. 난폭한 힘겨루기의 시대였던 1980년대가 끝나자. 마침내 '윤리와 도덕의 시대가 도래했다.




구세대 금융/산업 엘리트 vs 신세대 금융자본가


책의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저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 국가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정도의 힘을 가졌던 조지 소로스와 같은 신세대 금융자본가들은 미국 동부의 구세대 금융 산업 엘리트들과의 계급투쟁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 과정은 험난했고, 종종 선을 넘어 정크본드의 대부 마이클 밀켄처럼 감옥에 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구세대 금융 산업 엘리트들 수익만 좇는 비인격적 사업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 주치의’에 가까웠습니다. 상업은행과 고객의 관계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이 관계의 사회적인 깊이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도 않았고요.


즉, 은행과 고객의 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사회적 친밀감에 기초했고, 은행이 한 집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상류사회’에 머물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월가는 상대적으로 닫힌 하나의 ‘클럽’이었으며, 구성원은 주로 미국 동부의 대부호 집안 출신들이었습니다. 일종의 ‘사업 부르주아지’였지요.

그에 반해 신세대 금융자본가들은 구세대 엘리트와 달리 이렇다 할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없었습니다. 단지, 총명한 머리와 일종의 학력자본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이들은 업계의 아웃사이더들이었고, 주류 사회로의 편입은 불가했습니다.

문학도이자 조정, 등반과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며, 음악과 연극 애호가인 금융 엘리트들은 개인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테니스와 스쿼시를 좋아하고 나아가 레슬링과 격투기 선수 경력이 있기까지 했던 신세대 금융자본가들과 자신들을 철저히 구분하였습니다.


1975년 5월 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고정수수료 제도를 폐지하자 이러한 공고한 캐슬에 약간의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정수수료 제도가 폐지되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구세대 금융자본도 영업 다변화를 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신세대 금융자본가들에게도 취업의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회적 유산을 MBA와 같은 학력자본으로 보완한 신참들 - 미래에 신세대 금융자본가가 된 사람들 - 이 도맡은 일은 M&A와 같은 기존의 산업 엘리트들을 곤경에 빠뜨려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업무였습니다.


구세대 금융/산업 엘리트들이 꺼려했던, 흔히 말해 손에 피 또는 흙을 묻히는 일을 신참들이 도맡아 진행한 것이지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Hustle and Bustle


스타트업은 힘듭니다-물론 대기업, 중소기업도 각자의 이유로 힘이 듭니다. 유난을 떨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돈도 없고, “아빠! 나 헬스케어 사업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몇백억짜리 회사를 사주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도 없습니다.


이것뿐인가요. 기성의 기업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회사를 넘어뜨리려 하고, 각종 규제기관과 경쟁 스타트업과 본인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집요하게 공격하는 세력들도 즐비합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한 게 스타트업입니다. 태생이 언더독이고, 믿을 거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촘촘하게 짜여있는 규제의 칼날을 피해 가야 하고, 계약서를 하나 쓰러 갈 때면 턱이 아플 정도로 이 악물고 싸우러 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타트업 법인을 사람으로 치환한다면, 온몸이 멍투성이인 '사냥개들'의 건우와 우진이를 닮았지 않았을까요.


땀 흘리고, 손에 흙 묻혀가면서 눈앞에 과업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하는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신파일지 모르겠지만, 2019년 법인이 설립된 이후 회사가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힘들까


우아하게 일을 하며 삶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성과도 나쁘지 않았으니, 그렇게 일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온 이후, 그렇게 일을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돈을 벌어오는 사업부서 소속이 아니다 보니, 외부 로펌에 자문을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고, 실질적으로 일을 할 때에 법률적으로 의견을 나누기가 쉽지 않고, 신사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모든 법률 리스크의 책임은 저에게 돌아오는 상황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2주 넘게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나름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우아하게 일하며 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더십 교육 때 이야기 했듯이, 법조 엘리트-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서울대 로스쿨, 판사, 검사, 대형로펌 출신 등등의 이력-과는 거리가 먼 제가 이제 6년 차 커리어를 가지고 우아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게 저의 첫 번째 결론이었습니다.


좀 시시합니다. 너무 자조적인 결론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해결하는 Risk의 총량을 Leverage 삼아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리스크를 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담입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이지만 민-형사상 책임이 뒤따를 수도 있고, 그 수준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일응의 책임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스타트업은 험지에서 시작해서 빠르게 성장해 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존재이니, 그 구성원들도 스타트업의 운명과 일정 부분은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해결하는 Risk의 총량을 Leverage 삼아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시하고 자조적인 건 별로 멋지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내린 두 번째 결론입니다.


리스크를 쥐며 일하는 것은 그리 우아하고 고상하지 않습니다.

일의 과정은 거칠고 때로는 손에 흙을 묻혀야 할 때도 있고, 얼굴을 붉히며 계약 상대방과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의 과정이 거칠다고 해서 그 결과물 또한 거칠고 못생긴 것은 아닙니다.


때론 처절하게 실패할 때도 있지만, 회사의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주변을 둘러봅니다. 죄다 특이한 사람들뿐이더라고요 ㅎㅎ


제 주변의 특이한 동료들이 5년 후, 10년 후에는 스타트업 씬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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