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젯밤 과식을 한 이후 실내 러닝을 30분 정도하고 돌아왔다.
회사일로 짜증과 화가 났던 기억이 환기될 때마다 혼잣말을 내뱉고는 회사를 그만두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상상에 그칠 뿜니다. 여러 곳에 묶인 몸이라 “어쩔 수가 없다.”
화 때문인지, 저녁을 많이 먹은 탓인지, 후식으로 커피를 마신 탓인지, 이전보다 높은 강도로 러닝을 했기 때문인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몸에는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이었고, 잠은 잘 오지 않아 러닝을 하며 보던 <마녀 2>를 마저 보기로 했다.
새벽 1시 반쯤 잠이 들었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눈이 떠졌고, 이내 서재로 향했다.
아내에게 선물로 준 헤드폰을 쓰고 <마녀 2>의 막바지 전투신을 봤다.
선호는 어제 일찍 잠이 든 덕에 7시 즈음 일어났고, 아내는 잠이 깬 선호를 돌봐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곧 선호 방으로 가서 함께 짧지만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어제도, 오늘도 7시 즈음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의도로 향했다.
믿음이 신실한 아내는 잠시라도 교회에 들러 주일 기도를 드리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장모님의 말씀이다.
교회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선호가 이모와 놀이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소파에 앉아 비몽사몽한 상태로 핸드폰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빨래를 하고, 선호에게 티비를 틀어 준 후 소파에 앉아 잠시 낮잠을 잤다.
한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심심해하는 선호를 위해 눈을 뜨고, 모래놀이 장난감과 비눗방울 장난감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우리 둘은 모두 패딩을 입었다.
밖은 봄날이었고, 반팔을 입은 사람부터 가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게다가 혹시라도 선호가 잠이 들까 봐 휴대용 유모차를 챙겨서 길을 나섰는데, 만 5세가 지난 선호가 두꺼운 패딩을 입고 휴대용 유모차를 타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유모차를 내가 끌고 있는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다.
선호와 함께 개천 길을 따라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더워 우리 둘 다 패딩을 벗었다.
꽤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가고자 했던 모래놀이터에 도착했다.
선호가 조용하길래 확인해 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났을까. 길어진 다리 때문에 편안히 다리를 펴지 못했지만, 그래도 선호는 쌔근쌔근 잠을 잤다.
모래놀이터는 시설이 낙후되어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다시 길을 나섰는데, 폭포 시설도 20일부터 6월까지 정비 중이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커피숍에 도착했다.
잠이든 선호를 깨우기가 애매해서 커피숍으로 왔다.
자고 있는 선호와 함께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고, 음료를 받아오는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커피숍의 직원분들은 친절했다.
특히나 선호가 유모차에서 잠이 든 상태라서 쟁반을 든 상태로 유모차를 끌고 2층으로 가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일단 선호를 맡아 둔 자리 옆에 잠시 두고 오겠다는 취지로 ”다시 내려오겠다“고 말하자, 직원분은 매우 상냥한 미소로 띄우며 알겠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홀로 선호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 보여 더욱더 상냥하게-어쩌면 위로의 마음을 담아- 미소를 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와 선호의 시간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들이 꽤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스 말차 라떼와 복숭아 아이스티 그리고 피칸파이를 옆에 두고, 아이패드로 일기를 쓴 후, 율라 비스의 <소유하기, 소유되기>를 읽을 예정이다.
보고, 보여지기.
그리고 여전히 편안한 얼굴로 쌔근쌔근 잠을 자는 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