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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 Jul 13. 2024

명랑한 산책자가 되어볼까

도시 산책자가 되어 발이 이끄는 대로!


6월이었나,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갈 때 회사 창 밖으로 보이던 풍경을 보았다.

뭐랄까... 남의 속도 모르고 낭만적이었달까?

또 그런데 그렇게 남의 속도 모르고 낭만적인 걸 보는데 왠지 또 마음이 푸근해지더라.

그리고 곧 꽤 고층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생을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서 일을 한다.

어쩌면 가장 멀리 볼 수 있고 고공의 황홀함에 젖어들지만, 왠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에 좀 전의 낭만은 까맣게 잊고 다시금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려 애쓰는 자신을 본다.




오늘 "산책자"에 관한 인문 강좌를 들었다.

그중 김진섭의 <산보와 산보술>을 발췌한 내용이 있었다.


"흔히 생활은 우리의 머리 위에 하나의 무거운 철추를 휘두르고 있다. 조금인들 꿈꿀 여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온종일 일을 하고 저녁이라 먹고 나면 어쩐지 그대로 자기가 억울하다. 이대로 자서 내일의 노동에 연락되기보다는 이러한 생활로부터 한 번은 해방되어 그 사이 하나의 거리를 지켜보았으면 한다. 만족에서든 불만족에서든 우리는 스틱을 잡고 집문을 나서 보는 것이다.

......

이때 생활을 떠나고 이해를 초월한 산보자에게 자기와는 관계없는 만물과 인생의 생활을 안한(걱정이나 탈이 없어 편하고 한가로운)히 봄에서 유래하는 하나의 쾌활한 순간이 찾아올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떠한 지리적 비약이 없이 모든 여행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이 산보는 참으로 도회인이 가지는 일단의 경쾌한 시가 아니면 아니 된다. 말하자면 거니는 것이 휴식이 되는 상태가 산보다. 그러므로 산보의 휴식을 구하는 자는 문자 그대로 기분을 전환시켜 최고 정도로 자기 해방의 도를 성수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일상이 숨 가쁘다.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김진섭의 말처럼 머리 위에 무거운 철추를 휘두르고 사느라 꿈꿀 여유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속절없이 보낸다.

하루가 저무는 것이 아쉬운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요즘엔 10시, 11시만 되어도 졸리다. 이게 처음엔 참 이상했다. 아직 할 일이 있는데 이렇게 졸릴 시간인가...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난다.

지인이 이런 의아함을 듣고 깔깔깔 웃는다. 당연한 걸 이상하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잘 때라 졸린 건데 그걸 놀라워한다고. 아, 하긴 그렇구나. 잠이 보약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적어도 10시엔 자고 새벽에 일어나 뿌듯한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또 무슨 먹고살 궁리를 그리도 요란스럽게 하는지 잠을 물리치면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알아차리는 게지. 아, 왜 이리 졸린가.

한편으론 나이를 든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다. 잘 때가 되면 졸린 것? 잠도 이겨먹으며 바득바득 생을 채워갔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스친다. 그땐 이보다 참 젊었던 게지.


루이 후아르트 <산책자의 생리학>


산책자 강의 중 루이 후아르트의 <산책자의 생리학>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내용 중엔 산책자가 되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명랑"하고 "필요할 때는 성찰"하며 "유연한 사유"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특히 "자신을 쉬게 할 줄 아는 의식 상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단다.


"어떤 경우에도 명랑"이라니!

아마도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을 때라야말로 꽁꽁 묶어두었던 자신을 풀어두는 순간이 아닐까. 그러니 '명랑'이라는 것은 산책을 하는 이상 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 같은 것일까?

"필요할 때는 성찰"이라니!

그저 이끄는 대로 흐르듯 걷다가 필요할 때를 만나면 성찰을 한다는 것, 이 또한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 눈이 어디를 향하는가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메타인지가 작용하는 것이 아니겠나.

"유연한 사유"라니!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한다. 아직도 '그럴 수는 없지!'라고 한다면 아직 미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많은 경우, 아마도 80프로 이상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주관의 영역이더라. 시각에 따라 입장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명랑한 마음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세상에 입장하는 것이 '산책'일까?


요 근래 "해방"에 관한 생각이 차오른다. 나를 결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을 하던 터였다. 책임을 지되 속박되지 않는 그 경계가 언젠가는 위태롭지 않은 안전지대가 될 것임을, 그 안전지대는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임을 느낀다.

그런 과정에  '산책자'를 만났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어떠한 행위를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은 실천을 불러일으키기에.

그러니 명랑하게 산책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발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깨닫게 되면서 절로 가벼워지고 충만한 해방감을 느끼는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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