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의 영역으로 향하다.
지금까지 대만드는 임상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는 한의사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중 법의 영역에 계시는 김민지 변호사님을 만나뵈었습니다. 한의사에서 변호사로 진로를 전환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법조인으로서의 생활, 변호사님의 최종적인 목표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바꿔가는 김민지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페럿과 사막여우, 꽃사슴, 기린이 대신 전해드립니다!
변호사 생활
Q. 현재 일하고 계신 분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로펌 변호사의 업무는 소송하는 업무랑 자문하는 업무,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소송하는 업무는 흔히 생각하시는 법원에서의 소송을 위한 업무를 하는 것이고, 자문하는 업무는 계약서를 쓰고 검토하거나, ‘이런 주제에 대해서 객관적인 의견을 주시면 저희가 의사결정을 하겠습니다.’ 혹은 ‘이미 이런 행위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처럼 의뢰에 객관적인 답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작년에 있었던 로펌에서는 소송과 자문을 둘 다 했었고, 올해는 이직을 하면서 소송을 하는 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소송하는 팀에서는 한쪽의 입장을 듣고 그 사람이 최대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논리를 구성합니다. 이를 위해 글을 작성해서 법원에 내고 현장에서 발언을 합니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로펌에서는, 소송 팀 내에서도 다양한 팀이 있는데, 저는 ‘규제’ 관련 업무를 위주로 하고 있어요. 의료 관련 소송은 흔히 의료사고가 난 경우 환자와 의사 사이의 소송을 생각하시기 쉽지만, 제가 하는 일은 의료 영역에서는 행정기관이 의료법, 약사법 등을 근거로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 대응하는 업무입니다. 저는 의료 규제 관련 소송 업무만 하고 있지는 않고, 주로 ‘금융’과 같이, 국가의 규제가 많이 이루어지는 다른 산업의 규제 관련 소송에도 임하고 있습니다.
Q.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로 일했던 경험이 변호사로 일하실 때 어떤 도움이 되나요?
A. 운전을 할 수 있어야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를 이해하는 게 빠르잖아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도움이 됩니다. 한의학과 관련된 의료 사고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진료를 했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죠. 하지만 의료 관련 업무를 할 때 남들보다 이해가 좀 더 빠른 것 같긴 해요. 한의대를 다니면서 배운 전공 지식이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한의사라는 직업을 경험했던 것이 변호사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Q. 한의사로 일하셨을 때와 변호사로 일하시는 것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A. 변호사의 경우 한의사보다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은 것 같아요. 한의사는 주로 임상이나 연구를 하게 되는데, 변호사의 경우에는 좀 더 다양해요. 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고, 공직에서 일할 수도 있고, 로펌 변호사로 일할 수도 있고, 검사를 할 수도 있고, 국회로 진출할 수도 있죠.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변호사는 업무를 하는 공간에 제약을 덜 받는 것 같아요. 한의사는 계속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환자들을 봐야 하죠. 변호사의 업무는 법원에 나가서 변론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고민하고 글을 써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거든요. 그래서 공간의 제약없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변호사님은 발리에서 한 달 동안 일하기도 하셨어요.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노마드적 삶을 살 수 있죠. 사실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해요. 항상 머릿속에 사건이 있고 집에 와서도 연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과 휴식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또 승소와 패소로 명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장점이에요. 제가 요양병원에서 일해서 더욱 크게 느꼈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진료의 결과를 주로 환자의 의견에 의존해야 했거든요. 환자들의 말에 의존해서 증상의 경감 정도를 간접적으로 확인할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변호사 일은 피드백을 확실히 받을 수 있어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재판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의뢰인을 만나는 것도 저에게는 에너지를 주는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Q.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겪었던 뿌듯한 순간이나 힘들었던 순간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A.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은 비슷하게 느끼실 텐데 일단 변론을 쓰고 제출하면 되게 후련하고 뿌듯해요. 특히 ‘오늘은 글을 잘 썼는데!’ 하는 날에는 단기적인 보람이 있죠. 큰 보람은 아무래도 재판에서 이겼을 때 느낍니다. 하지만 열심히 했는데 결과에 납득이 안 되는 경우는 힘들어요. 사실 저는 법원의 결과에 납득이 안될 때보다 의뢰인이 최선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힘들어요. 예를 들어 의뢰인은 100억을 받기 원하는데, 저희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50억 밖에 못 받아내는 상황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70억을 받아낸다면 로펌 입장에서는 신이 나죠. 그런데 의뢰인은 100억을 못 받아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아 합니다. 저는 이때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최선을 다했고, 이것이 최선의 결과인데 의뢰인이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어쨌든 의뢰인을 만족시켜야 하는 일종의 서비스직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순간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Q. 졸업 후 타 분야로의 진출을 원하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주위에 같은 길을 걷는 선배가 많이 없다는 게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그 길을 만들어 가시면 그 뒤로 다른 후배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거거든요. 대만드도 한 학교에서 어떤 분이 들어오시면 그 뒤로 많이 들어오시는 것처럼요. 선배가 많이 없어서 힘드시겠지만 본인의 길이 누군가에게 선구자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생각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로가 고민될 때는 휴학을 하시는 것도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시는 걸 추천해요. 평생 해야 할 일인데 자신이 하고 싶어 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셔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만드 공식 질문
Q.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의 극복 방법이 무엇이었나요?
A. 저는 변호사가 됐을 때보다 딱 로스쿨 합격했을 때가 더 기뻤던 것 같아요. 합격 발표가 오후 5시 정도였어요. 저는 일하고 있다가 퇴근하기 전에 떨면서 확인했죠. 고등학생 때에도 법대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이제 진짜 내가 원했던 일을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인턴을 시작한 처음 두 달이었어요. 당직이 많아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일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인턴이니 일을 하면서 교육도 받아야 했죠. 일도 많고 공부까지 해야 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전까지는 도움을 청하는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인턴 생활은 도움을 안 받고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인턴 동기들에게 부탁해서 동기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그러한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법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죠. 대신 인턴을 했기 때문에 주어진 기회가 많았어요. 요양병원도 병원 교수님의 소개로 들어갔었고, 인턴 하는 동안 양방 술기도 많이 배웠어요. 깔끔하고 확실하게 차팅하는 것도 그 때 배웠습니다. 지금 변호사로 일하면서 의료 사고를 볼 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어요. 힘든 시기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많이 배운 시기였습니다. 만약 인생 다운의 시기가 있으시다면 그 또한 지나간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시간을 가지고 여러 활동도 해보시고 많이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거든요. 변호사라는 직업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길이 있고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진로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임상 한의사를 꿈꾸시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개원을 할지, 부원장을 얼마나 할지, 심지어는 결혼을 어느 시기에 해야 할지 이 모든 걸 결정해야 합니다. 고민은 평생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진로가 고민된다고 해서 너무 우울해하지 마시고 많은 경험과 생각을 통해 결정 내리셨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선생님의 단기, 장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A. 일단 단기 목표는 이 로펌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직한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이전에는 20명 정도 규모의 작은 로펌에 있다가 지금은 천 명이 넘는 대형 로펌으로 이직해서 차이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공정거래나 금융 분야에서 규제와 관련된 법리들을 익히고 관련된 이력을 쌓고 싶어요. 그걸 활용해서 의료 규제의 영역에서 남들과는 다른 전문성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A. 사실 이전에는 국회 입법을 통해서 나라가 바뀐다고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사법적인 영역의 중요성을 많이 느껴요. 연명의료 결정법 입법 전 김 할머니 판결이나 보라매 병원 판결이 있었던 것처럼, 사법적인 영역에서의 판단이 축적된 상황에서 입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사법적인 판단 이전에는 변호사들이 많이 싸우고 다퉈왔었고요. 그래서 변호사로서 하는 업무들이 곧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의로운 목표를 가지고 변호사의 업무를 해나가다 보면 이런 결과들이 쌓여서 사회를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보건복지부의 박지민 사무관님을 추천합니다. 연구를 하시다가 공직자의 길로 가셔서 직업을 3번 바꾸셨다고 알고 있어요. 뜻이 있기에 그러한 과정을 거치셨고 지금 하시는 일에 굉장히 만족하신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만나서 인터뷰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평소에 궁금했지만 접하기 어려웠던 법조계 진로에 관해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영역을 넓혀나가는 변호사님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 질문에 정성껏 답변해주신 김민지 변호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나날도 대만드가 응원하겠습니다 :)
Interviewer. 페럿, 사막여우, 꽃사슴, 기린
Writer & Editor. 페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