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의 의료기기 활용 및 임상 판단과 원장님의 자세한 임상 경험 이야기는 재밌게 읽으셨나요? 3편에서는 교수 및 강의 활동과 한의원 브랜딩 및 콘텐츠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교수 및 강의 활동
Q. 클리닉을 운영하시면서 동시에 학교에서 강의도 병행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임상과 교육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는데요.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강의 활동도 하시게 되었는지 그 계기와 실제 기회가 생긴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수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을 접하게 됐습니다. 레지던트 1년 차 때는 인턴 선생님을 가르치고, 레지던트 2년 차가 되면 1년 차 선생님을 챙기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어요. ‘남 앞에서 지식을 정리해 설명하는 일’이 결국 내 지식을 더 깊고 탄탄하게 만든다는 거였죠. 인턴 선생님을 교육하다 보면, 오히려 제 인턴 경험 1년 치가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의 기회가 오면 피하지 않았습니다. 의국장으로서 대표로 본과 4학년 대상 진로 강의를 했고, 개원 후엔 협회에서 강사 구인을 한다길래 자원했죠. 지도 교수님께서 병가 중이실 때는 한 학기 동안 대구한의대 본과 3학년 순환신경내과 수업을 맡기도 했고, 중고등학생 진로 특강, 간호조무사 대상 강의, 하베스트 강의 등 다양한 강의를 해왔습니다.
2024년 1학기에는 대구한의대 본과 4학년 [임상대가특강]을, 2학기에는 [병원관리학]을 맡았습니다. 2025년 올해 1학기는 본과 2학년 [진단학및실습]을 맡았고, 2학기에는 본과 4학년 [병원관리학]을 수업할 예정이에요. 어떤 분들은 박사 학위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야기하시기도 하는데요, 강의나 교육을 생각하신다면 박사 학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임상 연차가 조금 모자라도 박사 학위가 있으면 강사 자격이 주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강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박사 학위는 꼭 준비해 두시길 권하고 싶어요. 막상 강의를 해보니, 이게 정말 큰 기반이 되더라고요.
강의를 맡게 되면 저는 100을 요구받아도 120 이상 준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과적으로는 70~80밖에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준비한 자료와 공부가 결국 제 자산이 되거든요. 진료에 직접 쓰일 수도 있고, 다음 강의에 활용도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태도’입니다. “강의 한번 해보시겠어요?”라는 제안이 오면 저는 늘 “예, 해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맡게 됐을 때는 최선을 다했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강의 주선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가고, 비슷한 기회가 있을 때 또 저를 찾아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떠한 기회가 왔을 때 놓치거나 거절하게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오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은 제가 수성구한의사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어서, 강의나 어떤 일에 대해 제안을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더 실감합니다. 한 번 거절한 사람에게는 미안해서 다시 제안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내게 다가오는 기회를 잘 잡고 최선을 다하면, 다음 기회는 더 쉽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작은 강의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강의 실력도 늘고, 준비 시간이나 자료 구성도 점점 효율적으로 변하거든요.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베스트 온라인 강의도 제안을 받았고, 그게 계기가 되어 서울대 사범대 임철일 교수님과 함께하는 교수역량 향상을 위한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교수법을 많이 배웠어요. 이런 기회들이 결국 제 강의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는 거죠.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성실하게 해나가다 보면, 강의는 결국 교수 역량과 임상 역량 모두에서 저 자신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강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각자 수련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을 나누면, 결국 한의계 전체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강의에서 가장 중점을 두시는 메시지나 교육 철학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후배로서 큰 배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두 가지 범주의 진단’에 중점을 둡니다. 임상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이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선 1. 병에 대해서 진단을 해야 하고, 2. 한의학적인 처방이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변증’이라는 진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의사와 우리의 차이점이에요.
또, 저는 항상 ‘한의사는 내과학을 전공하기에 탁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잠재적으로 유능한 내과의사다.’라고 강조합니다. 내과학은 질병의 내면을 보는 학문이며, 질병은 굉장히 복잡하므로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전체적인 시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우리 한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론적(holistic) 관점, 정체관념(整體觀念)이에요.
요즘의 한의 의료기과에서는 근골격계 통증을 위주로 진료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한의학의 본질은 내과학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한의사라면 누구나 내과학을 잘할 수 있는 자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학습 및 성장
Q. 바쁜 진료 중에도 강의를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유튜브에 10분짜리 영상을 올리면, 그 영상의 재생 시간이 100분이 되어 있는 경우도, 1000분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것을 보면서, ‘내가 한 번 찍어서 올려놓은 10분이라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나는구나.’, ‘내가 찍어놓은 영상이 내 생각을 계속 전하면서 나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 26시간으로 늘어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소름이 돋았어요. 유명 연예인이나 방송이 큰 부가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이 한 번 찍어놓은 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기 때문이잖아요. 저는 지금 여러분과 대화하고 있지만, 제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은 지금 이 순간 제가 없는 장소에서도 계속 다른 사람에게 제 생각들을 전하고 있을 수 있어요. 이러한 사실은 제게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강의도 마찬가지예요. 저에게는 3시간이지만 100명의 학생이 제 얘기를 3시간 동안 들으면 300시간이 되는 것이거든요. 이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의 준비가 힘들어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같은 멋진 일이 세상에 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만 수고하면 학생분들도 조금 더 나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제 일상의 1시간만 할애해서 식단 사진을 정리해 환자분들 단톡방에 올려드리면 환자분들의 인생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좀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사소한 이타적인 부분들이 저를 버티게 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제 이익만을 위한다면 하기 싫을 때 그만두고 말 텐데,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개인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잠깐 미루고,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 에너지 또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진료와 강의까지 병행하시면서도 공부를 꾸준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공부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시는지, 또 실제로 공부하실 때 어떤 자료를 중심으로 참고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거나 적용하시는지 후배로서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진료 외 시간은 자기 계발과 학습에 쓰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병원 교수님들께서 외래가 없는 시간에 연구하고 공부하시는 것처럼요.
개원 초에 휴일 없이 365일 진료를 해 봤더니 자기 개발이나 학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분필을 계속 쓰는 것처럼 소모적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진료 결과를 정리한다든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365일 진료를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일부러 시간을 비워둡니다. 목요일과 일요일이 휴진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 쉼표가 있어야 자기 계발이나 학습을 통해 더 수준 높은 진료가 가능해요. 강의 콘텐츠 준비도 이 시간에 합니다.
공부는 새벽 시간에 집중합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온전히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새벽이에요. 진료 시간은 환자분께 집중해야 하고, 휴진인 날도 낮이나 저녁 시간에는 온라인 상담으로 바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로 새벽에 독서나 공부, 운동, 취미 활동 등을 합니다.
또, 개원하며 금주를 시작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술을 굉장히 많이 마셨고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취해 있으면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없겠구나. 리더로서 환자분들을 제대로 이끌 수 없겠구나. 취해 있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숙취로 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게,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 너무 아깝기도 했고요. 그래서 음주를 안 하게 되었어요.
또 다른 팁은, 강의나 스터디와 같이 공부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됩니다. (웃음) 진단학에 평소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긴 했지만, 지난 학기 본과 2학년 진단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더 심도 있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강의 준비를 하면서 내용이 머릿속에 더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한국한의학연구원 등 한의학 관련 사이트에서 고전 의서와 그 번역본을 PDF 파일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이들을 공부에 많이 활용합니다. 교과서는 기본으로 참고하고, 최신 논문은 pubmed나 각 학회, 또 외국 학회의 임상 진료 지침을 참고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된 책이나 논문을 많이 보는데, 요즘은 ChatGPT가 큰 도움이 됩니다. 영어로 된 책이나 논문의 내용을 업로드하면 요약도 잘해주고, 강의 자료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도 잘 해줘요. 예전엔 어렵게 느껴졌던 외국 책과 논문들이 지금은 ChatGPT의 도움으로 훨씬 쉽게 읽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ChatGPT의 도움을 받으면 영어로 된 책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번역본이 아닌 원서를 꼭 활용해 보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또, Scrivener라는 프로그램도 많이 사용해요. 이 프로그램은 본래 시나리오나 장편 소설과 같이 긴 글을 작성하는 데 특화된 워드프로세서인데요, 한 주제의 글을 쓰면서 작업한 모든 내용을 한 파일 안에 넣어 저장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또 윈도우를 좌우 또는 상하로 나누고 작업할 수 있어서 참고문헌을 옆에 띄워두고 개요나 강의자료를 작성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통속 한의학원론 강의를 준비하며, 한쪽에는 책의 내용을 띄워놓고 그 옆의 창에서 책 내용을 요약하고 강의 개요를 짜는 식이죠. 본과 2학년 진단학 수업 교과서는 영어로 된 원서인데, 번역본을 다른 창으로 띄워서 함께 봐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영어를 하나하나 다 해석할 수가 없으니까, 번역본을 보며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그어두고, 그 부분을 정리해서 강의 자료로 만듭니다. 시간이 많이 절약돼요. 논문이나 기고문 작성에도 활용합니다. 글의 개요와 글감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둘 수 있고, ‘research’ 항목에는 참고한 파일, 이미지, 링크들을 모아둘 수 있어요. 작업에 사용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이처럼 유용한 툴들이 많으니 학습할 때 적극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이전 인테그리티 인터뷰에서 추천해 주신 《Textbook of Physical Diagnosis》를 제외하고 한의대생에게 추천해 주실 만한 전공 관련 책과 일반 책 한 권씩 추천 부탁드립니다.
《Guyton 의학생리학》을 추천 드려요. 내과학 공부를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수적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景岳全書》도 추천 드려요. 본과 3~4학년 임상 과목 교과서는 주로 《東醫寶鑑》 기반으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어요. 《景岳全書》는 동의보감이 저술된 이후 조선으로 수입되었기에 동의보감에서는 볼 수 없는 의론(醫論)과 새로운 처방을 볼 수 있거든요. 《濟衆新編》, 《⿇科會通》, 《醫宗損益》, 《⽅藥合編》 등 《東醫寶鑑》 이후에 나온 의학 서적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책의 목차가 체계적으로 잘 잡혀 있어 읽기에 어렵지 않을 겁니다.
《類經》이라는, 황제내경을 체계적으로 재해석한 장경악의 책이 있어요. 이 책도 추천해요. 황제내경을 소문과 영추 각 편의 순서대로 보면 좀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책은 임상가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통속한의학원론》도 추천합니다. 비전공자도 쉽게 읽을 수 있고, 한의학의 전체 틀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에요. 현대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내용도 있지만, 학교에서 어렵게 배운 개념들을 명쾌하게 풀어낸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앞부분 ‘일반론’만 읽어도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양방적 접근 방식의 한계는 책이 쓰일 당시에도 분명히 드러났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읽어도 유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한의학을 일반인에게 설명할 때도 유용하고, 임상현장에 나가기 전이나 진료 중에도 한의학에 대한 전체적인 틀을 다시 정리해보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딩 및 콘텐츠 운영
Q. BM한방내과는 온라인 콘텐츠의 퀄리티가 높고, 인스타그램과 웹사이트의 디자인도 매우 통일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모두 직접 제작하시는지, 시각적 브랜딩은 어떻게 접근하셨는지,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은 딱히 없었습니다. 저희 한의원의 콘텐츠는 주로 내부에서 만들고 있어요. 처음엔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1일 1블로그’를 꾸준히 했는데, 그게 쌓여서 제 지적 자산이 되었고, 이후 유튜브 영상, 카드 뉴스, 각종 홍보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확장됐습니다. 콘텐츠에 그 의료기관의 색깔을 제대로 담아내려면 원장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어요. OBS studio 프로그램 설치부터 설정,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 편집까지 하나하나 직접 익혔습니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면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제 역량은 자라지 않으니까요.
제가 콘텐츠의 내용을 만들면, 디자인의 시각적인 완성은 아내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봉직의로 있을 때는 진료만 잘하면 되는데요, 개원하면 진료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의료기관의 장으로서 그 이상의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됩니다. 특히, 내 의료기관의 존재 이유(Why)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건강한 자유’가 저희 한의원의 존재 이유이자, 제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30대 중후반에 “우리 한의원에 내원하시는 분들의 건강 회복을 돕고, 이분들이 건강한 자유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데 내 삶을 바치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게 지금 저희 한의원의 전체적인 색깔과 방향성을 만드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래서 병원관리학 수업에서 이런 과제를 내기도 했어요. ‘지금 내가 의료 기관을 개설한다면, 어떤 점을 의료기관의 미션(Mission) - 비전(Vision) - 핵심 가치(core value) - 전략과제(Strategy)로 두고 싶은가?’ 여러분도 어떠한 의료기관을 목표하고 있는지, 이를 이루기 위해 중단기적으로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의료인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 소홀하기 쉬운데, 사실 일반 기업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Q. 최근 ‘글로벌 한방 스쿨’을 일본어로 소개하신 콘텐츠를 보고 인상 깊었습니다. 원장님께서 이런 국제적인 콘텐츠를 제작하시게 된 의도나 계기가 궁금해요.
2022년에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 ‘한의약 분야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지원프로그램 참여 의료기관’을 모집하더라고요. 마침 저희 한의원의 진료 모델을 외국인에게도 적용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이 기회가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원했습니다. 지원서에 저희 한의원의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 등을 정리해 넣었는데, 굉장히 인상 깊게 봐주셨어요. 이렇게 존재 이유와 설립 목적을 분명하게 가진 의료기관이 잘 없다며 신기해하셨고, 운 좋게 참여 의료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외국인 환자 유치 기관으로 등록하자 수성구청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수성구는 외국인 의료 관광에 굉장히 적극적인 지자체였어요. 그 중심에 한 주무관님이 계셨는데, 일본 현지 분들과 교류를 많이 하고 계셨고, 외국인 의료 관광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강하셨어요. 지금은 수성문화재단의 과장으로 계시는데, 이런 열정적인 분과 연결된 것도 저희에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외국인에게는 한의학이 굉장히 메리트 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잘 아시다시피 일본에는 한의학, 동양의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하는 의사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방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한의학을 전 세계로 알리고 싶었던 우리와 잘 맞는 것이죠.
수성구에서 올해부터 한의학 강좌를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래서 수성구한의사회 원장님들과 함께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제가 대표로 직접 일본에 가서 강의도 했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제가 가진 진료 시스템을 외국 환자에게도 적용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시도였는데, 그것이 진흥원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수성구와의 협업으로, 그리고 해외 강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기회는 정말 많아요. 좁은 진료실에 갇혀 환자만 보려고 하면 그 기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진료 외의 시간을 자기 계발과 연구, 학습을 위한 시간으로 생각하며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여러분을 도와줄, 또는 여러분의 역량을 키워갈 기회가 많이 보일 거예요.
Outro
Q.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지만 극복했던 순간이 있으셨다면 그 과정과 배운 점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힘든 순간이 많기는 했지만 극심하게 힘든 일은 없었어요. 3수를 할 때, 인턴을 할 때... 모두 그 당시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절실하게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일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니었다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분명한 건, 힘든 고난을 이겨내고 난 후에는 항상 뿌듯함이 찾아왔다는 점이에요.
삼수 때 그걸 처음 느꼈습니다. 만약 재수에서 입시를 마무리했거나, 삼수까지 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운이 좋게도, 힘든 과정을 거쳐서라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금 제 삶의 태도를 만들어줬어요. 그런 의미에서 삼수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지금의 저를 만든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성향 자체가 힘든 순간들이 있더라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그 힘듦을 이겨냈을 때 오는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편인 것 같습니다. 힘든 인턴 시기에도 ‘이 시기를 넘기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오니까 이겨내 보자’하며 버텼던 것 같고, 실제로 레지던트 때, 전문의가 되었을 때 그 힘든 시기에 대한 보상이나 성취감을 충분히 누렸던 것 같아요.
지금도 힘든 건 여전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저만의 방식으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면 또 제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인생인 것 같아요.
강의하고 기고문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정말 힘이 듭니다.(웃음) 강의하러 갈 때는 거의 밤을 새우고 가요. 강의 자료를 밤새 만들어서 새벽에 업로드 하고, 잠깐 씻고 가서 다크서클 내려온 채로 강의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의를 마치고 나면 또 그만큼 뿌듯함이 찾아옵니다.
돌이켜보면 심하게 힘든 일이 없었던 건 참 감사한 일이고, 매 순간 힘든 부분을 어떻게든 이겨내서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고난이 99%, 순간적인 성취감과 행복이 딱 1%인 것 같아요. (웃음) 그 1%를 위해서 평생 99%를 힘들게 노력하는 것 같고요. 모두 각자 처해있는 상황이 힘드실 텐데, 고행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단기 목표로는, RDCS(국제심장초음파 자격)를 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 한의사들은 근골격계 초음파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며, 모든 초음파 분야에 다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순환기내과 전공이니 관련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당연하죠. 또, 외국인 환자 진료를 더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희 한의원을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입니다. 저희 환자분들이 건자꿈 캠프의 플랫폼에서 계속해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도록 동행하는 것이 제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의 노력을 해야겠죠.
장기적으로는, 우선 환자분들 관련해서는 온라인 카페가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해보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고요, 학문적으로는 제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전문의 선생님들과 학회를 만들어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문에 기고하고 있는 임상 케이스를 논문으로 발표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학술적인 활동을 지속해서 해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한의원에 입원실이 없는데, 규모를 키울 수 있다면 입원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수련 한방병원을 만들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과 수련 시스템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꿈과 현실은 다르지만, 이런 꿈을 가지고 살면 현실을 이겨나가기 쉽잖아요. (웃음)
저는 한의사 제도가 미국의 DO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DO는 MD와 동일한 의료 권한을 갖지만, 학문의 철학 기반이 다르므로, MD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에 기여하죠.
한의사도 양의사와 동일한 권한과 도구를 갖되, 한의학의 의철학과 한의학 이론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살린다면, 환자들의 건강 증진에 더 넓고 깊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접근 방식이나 해석, 적용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한의사의 역할과 역량을 이런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도 저의 큰 목표입니다.
Q. 앞으로 원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저는 ‘한방 내과’라는 명칭이, 보편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아요. ‘한방 내과’라는 개념을 ‘한의사에 의한 내과학’이라고 우리 스스로가 정의해야 합니다. 내과학이라는 학문을 한의사가 전공하면 한방내과, 양의사가 전공하면 양방내과인 겁니다. 내과학을 전공하는 주체에 따라 편의상 구분 짓는 것일 뿐, 한방내과든 양방내과든 모두 다 '내과학'의 범주 안에 속하는 학문인 것이죠. 지금은 법령상 ‘한방 내과 한의원’이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사실 앞에 한방이라는 수식어은 필요 없어요. ‘내과 한의원’이라고 하면 의미 전달에 전혀 문제가 없잖아요. 이곳은 한의사가 진료하는 의료기관이라는 점도 분명하고요.
계속 강조하게 되는데, 한의학은 내과학에 최적화된 학문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내과학에 대한 우리의 역량을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내과 분야에서 한의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분들의 건강을 위해 권한과 도구에 제한이나 차별없이 우리의 전통적인 지식이나 학문적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인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의사는 잠재적으로 유능한 내과의사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두 분 정도 떠오르는데요, 제주도 더아이맘 한의원의 김정태 원장님을 추천합니다. 신생아와 영유아 환자를 포함한 소아 환자를 많이 진료하세요. 생후 14일의 신생아가 내원해서 침을 맞습니다. 산후조리원을 퇴원하며 들르는 한의원입니다.
파주 래소한의원의 권해진 원장님도 추천합니다. ≪우리 동네 한의사≫, ≪텃밭에서 찾은 보약≫의 저자이시고, 진료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활동 또한 왕성하게 하고 계셔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3편으로 나뉠 만큼 깊이 있고 열정이 가득했던 인터뷰였습니다. 환자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성장해 나가는 원장님의 태도에서, 환자에 대한 진심과 삶을 대하는 단단한 자세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역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마치 불씨가 옮겨붙은 듯, 저도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시고, 진솔한 생각을 아낌없이 나눠주신 이제원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Interviewer. 꽁치, 사막여우, 햄스터, 고등어
Writer & Editor. 꽁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