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편리한 세상이다. 깐 마늘, 깐 콩나물만 마트에서 파는지 알았더니, 이제는 깐 쪽파에, 깐 양파, 깐 알밤까지 다 팔고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깐 마늘과 깐 콩나물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껍질이 안 벗겨진 콩나물과, 마늘만을 고집하여 사 오셨다. 마트에서 파는, 깐 마늘, 깐 콩나물보다는, 집에서 직접 손으로 껍질을 벗겨 재료를 손질하는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이라고 하셨다.
물론, 유년시절의 나와 동생에게 있어, 음식의 맛은 그렇게 중요한 평가 요소가 아니었다. 우리의 평가요소는 순전히 재료 손질의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줄이는 일이었다. 콩나물 껍질과 마늘 껍질을 직접 손으로 까는 일은, 곧 나와 동생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콩나물도 계속 다듬다 보면, 나중에는 점점 재미있어진다고 하셨지만, 나는 콩나물 다듬기로부터 재미를 느끼지 않아도 좋으니, 500원 돈을 더 얹어 주고서라도, 깐 마늘과 깐 콩나물을 사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에게는, 나의 자유시간, 나의 여가시간 보장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졸린 눈으로 마늘 껍질을 까다가 문득 <어린 왕자> 책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 속의 상인은 어린 왕자에게, 갈증을 없애주는 알약을 팔고 있었다. 그 상인의 말에 따르면, 그가 파는 알약을 한 알만 먹으면 그 어느 누구라도 일주일 동안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그런 약을 팔아요?”라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이 약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절약해 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해 봤는데, 이 약만 있으면 매주 53분을 절약할 수 있단다.”
“그 53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데요?”
“뭐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지......”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53분이 주어진다면, 나는 시원한 물이 솟는 샘까지 천천히 걸어가겠어.’
만약 할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깐 마늘과 깐 콩나물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면, 어쩌면 나도, 동생도,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도 매주 53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 53분을 가지고, 우리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내 손으로 마늘 껍질을 까며 드는 생각은, 어쩌면 할아버지께서는 그 절약한, 53분이라는 시간으로, 사랑하는 손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만약 나와 동생이 마트에서 깐 마늘을 사 왔다면, 나와 동생은 분명히 그 절약한 53분으로, 친구들과 놀러 나갈 생각을 했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그때 그 당시에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껍질이 안 까진 마늘, 껍질이 안 까진 콩나물을 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까지지 않은 마늘과 까지지 않은 콩나물 덕분에 나와 동생과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53분의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한 달이면 3시간 반, 일 년이면 42시간 30분. 그리고 10년이면 17일 하고도 반나절의 대화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53분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그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까. 나는 그 53분이라는 시간을 아끼고 아끼어, 내가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와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를 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