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 작가님의 <어린왕자와 여우>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서로를 닮는다.
노란 뱀의 기다란 몸은, 어린왕자의 흩날리는 스카프를 닮았다.
어린왕자의 흩날리는 스카프는, 사막여우의 풍성한 꼬리털을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서로를 닮는다더니, 작품 속, 노란 뱀과 어린왕자의 스카프와 사막여우의 꼬리털은 서로서로가 너무나도 닮아 있다.
내가 요새 여주의 <초록 공간>에서 벽화 작업을 하며 느낀 점은 어린 왕자의 노란 스카프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스카프는 나의 벽화 그림 속에서 사막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밀밭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우주를 가르는 별똥별로 표현되기도 한다. 어린왕자의 스카프는 나에게는 사막이자, 밀밭이자, 우주인 셈이다. 사막과 밀밭과 별똥별. 이들은 모두 노란색 컬러의 이미지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숙한 내면에는, 어린왕자가 정말로 아끼고 그리워하는 추억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린 왕자의 스카프에, 사막과 밀밭과 별똥별만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노란 뱀의 가늘고 기다란 모습도, 사막여우의 풍성한 꼬리털도 담겨 있을뿐더러, 노란 뱀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도, 사막여우에 대한 사랑과 우정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린 왕자가 하루는, 자신의 노란 스카프 대신, 노란 사막뱀을 두르고 다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를 목마 태워주듯, 어린왕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란 뱀을 자신의 목에 휘감고 다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것도 그럴 것이, <어린 왕자> 소설 속에서 노란 뱀은 현자와 같이, 어린 왕자에게 삶의 지혜와 교훈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여우짓(?!)을 하는 사막여우처럼, 어린 왕자도 자신의 스카프를 한들한들 바람에 날리며, 사막여우를 흉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흉내 내고, 따라 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사막여우야말로, 어린왕자의 노란 스카프를 흉내 내어, 자신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서로를 닮는 법이니까 말이다.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그러했듯,
어린 왕자가 사막여우에게 그러했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마음속에) 담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닮는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을 닮는다.
여기, 어린 왕자의 마음을 담은 사람이 있다.
여기, 어린 왕자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 있다.
그는 노란 스카프를 그린다.
그는 사막을 그리고, 밀밭을 그리고, 우주를 그린다.
그는 어린 왕자를 그리고, 그렸고, 그리다 그리워한다.
그는 참으로 어린 왕자를 닮았다.
- 전시명 : 김희태 작가님 개인전, <어린 왕자와 삐에로>
- 전시기간 : 2024년 5월 17일 ~ 5월 30일
- 전시장소 : 갤러리 안단테 판교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