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일기>를 통해 앤디 워홀

보보스의 아스팔트 asphalt

by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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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으로 힘들었던 지난 연휴, 집중할 것을 찾아보다가 넷플릭스에서 앤디 워홀을 만났다. 앤디 워홀, 팝 아트의 상징, 아니 팝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고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그에 대해 내가 알던 것은 거의 없었다.


관조


<앤디 워홀 일기>는 앤디 워홀의 녹음된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과 그의 숨겨졌던 개인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워홀이 세상을 바라봤던 자세를 알 수 있었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주위 환경을 관조하며 살아왔다. 워홀은 유년시절에 이민자 부부의 아들이며, 게이인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서 그러한 방식을 택했으며, 60년대 팩토리 시절을 거치면서 표현에 자유로워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관조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고 언제나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변장


워홀은 언제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여러 겹 두른 채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워홀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하나의 재미, 그리고 의도된 연출이었다. 우리가 워홀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이미지는 전부 그가 세심히 고른 언어와 행동이었으며, 그가 매번 세상에 모습을 보일 때마다 '변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돌리고 준비를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사는 삶은 무척 피곤하겠구나 싶었다. "소비자 너네는 즐기기만 하면 돼"


Show, don't tell


워홀은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작품으로 보여주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작품은 1차원적이며, 보이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것 또한 변장이었으며 그만의 의도는 분명히 있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작품을 변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대중이 매체에서 워홀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의 본모습이 궁금해 알려고 하면 수많은 작품이 쌓여 가로막고 있는 것과 같다.


슬픔


하지만 워홀이 언제나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말년으로 갈 수록 그의 작품은 점점 워홀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과감해졌다'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삶을 지배했던 슬픔이라는 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두 남자, 언더그라운드와 주류 사회 사이의 내면적 갈등, 예술계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갈망, 그리고 에이즈와 죽음으로 암울했던 80년대 후반 미국의 시대상까지 한 데 그의 슬픔을 자극하고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는 유년시절 자신을 지켜줬던 종교를 점점 의지하기 시작했고 위안을 얻은 덕분에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었다.


새로움


마지막으로 워홀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변화가 있으면 언제나 그 곳에 발벗고 나섰다. 2023년, 결국 AI가 예술을 대체하네 마네 하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AI가 예술 자체를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예술에 철학을 담는 것은 아직 힘들진 않나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 그것도 어떻게 달라질진 모르겠으나 워홀을 보며 느낀 것은 결국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개인'은 아직 유효하며 작품과 예술가의 관계가 당분간은 중요해지고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앤디 워홀 일기>를 시청하기 시작했지만 호흡이 긴 다큐멘터리이고 내용이 가볍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아서 끝까지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워홀은 담낭 수술의 합병증으로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어딘가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워홀이 일궈놓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 속 일은 진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닌 삶이야말로 영화 같다. 영화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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