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진 Nov 02. 2023

작곡가는 올빼미?

늦은 기상에서 죄책감 지우기

    나의 하루는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사람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으로 주로 낮 11시에 시작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늦잠이나 자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 다르게 표현하겠다. 나의 일과는 주로 새벽 3시 정도에 마무리된다. 낮에도 일하지만 가장 집중력이 좋고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뮤지션들이 올빼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밤에 감수성이 더 풍부해진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 기분을 잘 모른다. 이건 내가 주로 영상 음악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위한 음악 작업이므로 사실 나의 감성에 빠지기보다는 작중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분석하는 능력을 많이 써야 하고 음악적인 효과나 시간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계산적인 부분도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내 감수성에만 빠져서는 제대로 작곡할 수 없다. 물론 장르에 따라 따뜻하거나 몽글몽글한 감수성을 발휘할 때도 있다. 여담으로 내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 기본적인 정서는 슬프거나 따뜻한 음악에 가깝다.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아내가 잠자리에 들고 두 고양이도 ‘우다다’를 마치고 작업실 소파 한편에서 조용히 그루밍을 하다가 잠든 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 행복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비지니스 아워’는 아침형 인간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남들과 같은 시간에도 생활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나는 혼자만의 음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에서 활동하고 있고 다른 업무를 맡은 사람과도 소통해야 하는 영상 음악 작곡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활동 시간에도 깨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평상시엔 어느 정도 일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지만 급한 작업 일정이 생기면 밤낮없이 일하다가 아무 때나 쓰러져 자기 때문에 정해진 대로 생활하기가 쉽지는 않다.


    원활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하다. 나는 선천적인 저녁형 인간이다. 그 사실을 성인이 돼서야 깨달았는데 아침보다는 저녁에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의욕이 넘치는 편이다.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가 먼데다 심지어 1교시를 7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야 했는데 쏟아지는 아침잠에 첫 시간은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얼굴에 문신을 새기기 일쑤였다. 이런 나와 정반대로 내 아내는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어 음식을 찾고 오전 시간에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려면 나는 저녁형 인간으로만 지낼 수는 없다.


    올빼미로 사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0~70년대의 근면 정신으로 살아 온 내 어머니도 내 늦잠을 곱게 봐주지 못했는데 이런 영향으로 나는 늦은 기상에 대한 죄책감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기상 시간보다는 수면시간을 더 신경 쓰며 예전보다 자유로워졌지만 나도 모르게 여전히 눈치를 보기도 한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주변 상황과 일정에 따라 내 생활 리듬을 바꿔왔기 때문에 저녁형 인간일지라도 필요할 때마다 패턴을 바꾸는 게 어렵진 않다. 한동안 아내와 함께 ‘미라클 모닝’을 해보겠다며 매일 5시에 기상했던 때가 있었다. 함께 맥모닝으로 아침을 시작해 카페에서 독서를 하거나 작곡 외의 업무를 봤는데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나의 본업인 작곡의 능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생활 리듬을 가지고 있든지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좋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 못지않게 중요한 건 마감을 지키는 일이다. 마감 기한을 앞두고 한가롭게 아침형, 저녁형을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상시에 잘 만들어둔 생활 패턴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주고 간헐적인 ‘벼락치기’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니 좋은 작곡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몇 시간을 자고 어떤 시간에 일해야 좋은 컨디션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스스로 잘 관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10년 넘게 작곡가로 일하며 찾게 된, 나에게 맞는 패턴은 낮 11시 기상, 새벽 3시 취침이다. 수면시간이나 기상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묶여 자신을 괴롭히지 않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