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음악 작곡가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마감이 정해지면 극도로 초조하고 예민해져서 거의 모든 일상을 제쳐두고 방에 처박혀 ‘작업해야 해. 작업해야 해.”를 되뇌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곡이 안 나와’서 미치고 팔딱 뛸 듯하다가 결국 내가 생각해도 수준 이하의 결과물을 기한 내 겨우 제출했다.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 고작 이 정도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낸 자신에게 실망했고 다른 사람의 작업물을 들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내 모습을 보면 무조건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서 더 좋은 곡이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초조함을 견딜 수 없었다. 이제 막 집중력이 생기려는데 아내가 밥 먹으라며 노크를 하기라도 하면 화가 치미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무언가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까?’
정작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캐치해서 집중력 있게 작업하는 시간은 전체 시간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외 시간은 대부분 강박감만 있을 뿐 집중하지 못한 채 보냈고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나는 허리와 손목에 무리가 오고 협착증으로 산책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어떤 조치가 필요했다.
지금 나는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마감을 앞두고 여전히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된 나를 보면 진짜 프로가 된 듯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돼도 평상시와 같이 생활한다. 외출할 일이나 아내와 보내는 시간도 미루지 않고 잘 챙기고 평소처럼 운동하고 먹고 쉬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 나는 식사, 산책, 운동, 샤워하는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는데 주로 편곡의 방향이나 새로운 일들에 대한 구상은 이런 시간에 이루어진다. 물론 막상 워크스테이션을 켜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더 구체화 되지만 전반적인 큰 그림은 일상생활에서 그리는 편이다. 특히 운동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은 머릿속이 복잡할 땐 골프연습장에 가서 스윙 연습을 하는데 같은 동작을 땀이 나도록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동시에 운동도 되니 좋은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장점까지 있다.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건반 앞에 앉아 있기도 했고 스트레스로 장염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시행착오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꼭 필요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곡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겠으나 그중 자신의 일상생활을 평소처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나 늘 마감에 쫓겨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직업일수록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투 데이’ 작곡하고 말 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