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좌충우돌 직장생활 01
“ 아빠! 저 서울로 가고 싶어요."
“ 집 나가면 고생일 텐데.”
“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스물일곱, 나는 서울 생활을 결심했다.
‘서울’이라는 곳, 지방에 살았던 내게 그곳은 동경이었고, 바쁜 아침에는 멋지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바쁘게 움직이고 저녁에는 멋진 장소에서 여유를 느끼는 그런 곳이었다. 지방에 살던 나의 서울 상경 결심은 남들이 가는 유학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 나이 스물일곱, 내가 살아온 시대만 해도 결혼을 생각할 시기였다.
그 시기에 새로운 도전이라, 다소 모험이기도 했지만 더 넓은 곳에서 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은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늘 따라다니는 생각이었다. 스물여섯 되던 봄 한 번의 결심을 꺾고 일 년을 더 버텼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남았 고, 그 해 겨울 지금이 아니면 도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서울행을 결심했다.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며 독립선언을 했다.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겁 없는 도전, 막연해 보일지 모를 미래를 향해 한발 내디뎠다.
늦게 시작한 그림, 나는 지방대 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그림을 늦게 시작할 때부터 나의 목표는 명확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면서 살겠다.
목표 의식이 있었고 그 목표치에 맞는 내 삶의 로드맵을 머릿속으로 그려가고 있었다.
졸업 후에는 소위 말하는 좀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 작은 회사가 아닌 큰 회사, 막연하지만 나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 그래서 나는 늘 나의 한계치보다 더 높은 위치에 꼭짓점을 찍어두고 그 길을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 너는 어디에서 일하고 싶냐?”
“ 큰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요.”
“ 지방대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쉽지 않을 텐데?”
4학년 취업 시즌, 실습 나갔던 서울의 한 대행사 선배가 나에게 어디서 일하고 싶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유명 대행사를 다니던 그들의 생활을 바라보며 나도 막연히 그 자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나를 보았을 때 막연한 동경만 있을 뿐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허상만 있는 목표는 실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 허상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목표가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실습 기간이 끝나고 학교를 다니며 나는 일명 이름 있는 곳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가며 했다.
지방대를 나온 내게 경쟁력이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어떤 곳의 일을 하는 것, 그곳에서 일한 경력한 줄 관리를 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oo 호텔, oo 기업, oo 대학교 이름만 말하면 알 수 있는 그곳들을 찾아가며 일 년을 보냈다.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정 그만큼의 성과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한 줄 긋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큰 원동력이 되었다.
서울 생활의 시작, 일단 올라가자.
늦은 저녁 경부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낯선 풍경과 냄새, 그 사이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잘한 일일까?’
그 약간의 흔들림을 뒤로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갑이 든 가방을 잘 들고 달랑 캐리어 하나를 끌고 지하철을 타고 함께 지내기로 한 서울 중심가의 대학 동기 언니의 원룸을 찾아갔다. 어둑어둑 어두워지는 길들을 지나 화려한 옷들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쳤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가는 순찰 다니는 경찰들, 하나 둘 집을 세어가며 집을 찾았다.
4평 남짓 작은 반 지하방에서 시작한 생활은 생각보다 더 불편하고 힘들었다.
가족이었던 여동생과 방을 같이 쓰며 티격태격하던 생활과는 달리 전혀 다른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 관계의 고민은 서울 생활의 고단함을 더 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길을 돌아 반지하 방에 들어올 때면 지방의 가족이 있는 집이 그리웠다.
‘항복하고 그냥 다시 들어갈까?’.
’ 아니야,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이력서를 쓰고 면접 연락을 기다리며 서울에 있는 선배와 친구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자소서와 이력서를 쓰고 취업을 위한 사이트를 검색하며 내가 가진 커리어로 갈 수 있는 기업을 찾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기업들이 뽑는 인재들 서울의 유명 대학을 나온 학생들이 지원하는 서울의 회사들 연고도 없고 듣도 보도 못한 지방대생이 지원하는데 뽑아줄 리 있을까?
2년 반 호텔 디자인실 경력, oo 대학교 홈페이지 디자인, oo 기업 사내 홈페이지 디자인, 그 한 줄의 경력들에 힘을 실어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나이 스물일곱, 나는 여자 나이로 많은 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신입과 같은 위치에 지원서를 냈다. 지방대 졸업, 경력 2년 차, 영어실력, 뭐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쓰면서 좌절을 맛보는 시간을 보냈다.
“ooo 씨죠? 면접 보러 오세요.”
한 통의 전화, 크게 내세울 경력이 없던 나를 찾는 곳은 내가 그렇게 원하던 큰 기업의 디자인실!
난생처음 가보는 20층이 넘는 건물 입구에서 후들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면접실이 있는 8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대기실에 몇 명의 인원이 보였고 나는 면접 순서를 기다렸다.
자기 키만 한 커다란 포트폴리오 보드를 들고 온 사람, 검은색 슈트를 입고 가지런히 가른 머리에 가죽으로 된 포트폴리오 북을 든 사람, 그 속에서 종이로 된 포트폴리오 북을 든 나는 왠지 초라해지기만 했다.
면접실로 들어섰을 때, 다섯 명이 면접관이 나를 맞이하였다.
2년간 호텔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그 간의 어떤 일에 강점을 나타내는지, 그리고 걱정했던 부분이었던 웹디자이너를 뽑는 자리에 웹 경력보다는 오프라인 디자인 경력이 더 많은데 지원한 이유, 이런저런 질문에 나는 소신을 다해 대답을 했다.
마음속은 두근두근 요동치고 있었지만 얼굴만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십 분간의 면접이 끝났다. 손에 땀이 차고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신의 키만 한 포트폴리오 보드를 가지고 왔던 친구와 만났다.
커다란 눈에 왜소한 체격 예쁘장한 얼굴을 한 그 친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갖 졸업한 친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잘 안되더라도 꼭 한번 만나자며 연락처를 나누었다. 같은 공간과 시간 긴장하며 그 자리를 지켜였을까 묘한 동질감 같은 게 생겼던 거 같다. 그날 내게 처음으로 면접 동기가 생겼다.
면접 후 삼사일 이 지난날 오후, 면접 봤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입사 채용 관련해서 상담이 있으니 언제 올 수 있냐고,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가 서울에 가고자 했던 큰 기업에 드디어 취업을 하게 되었다.
바닥까지 나뒹굴던 떨어진 자신감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 같았던 그날
나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던 그날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울 상경 후 취업!
나의 첫 번째 꿈을 이루었고 졸업 후 내가 다시 도전하고자 했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by 박 마담의 ‘슬기로운 여성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