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좌충우돌 직장생활
서른, 서울생활 3년 차 되던 해
바쁜 회사생활과 일상이 익숙해져 갈 무렵,비슷한 시기에 서울생활을 시작한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그 날의 이슈,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이 두 가지 단어로 모아지고 있었다.
‘이직과 결혼’
여자 나이 ‘서른’에 어울리는 이슈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들이 담긴 이야기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는 한 동기, 결혼을 준비하는 동기는 곧 회사생활을 접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남자 친구의 훌륭한 스펙과 신혼집에 대한 이야기, 피곤한 직장 생활을 접을 거라는 기대찬 말도 들려온다. 다음 달이면 곧 이직을 할 거라는 동기의 말이 이어진다.
“3년 다녔으면 이제 연봉 좀 띄워야지! 너무 오래 머물면 뜨기 힘들어.”
“그리고, 우리 벌써 여자 나이 서른이야. 더 늦으면 받아주는 곳도 없어.”
확신에 찬 그녀의 말이 정답인 듯 느껴졌던 그때의 우리는 연차 대비 연봉 인상을 위해 이직은 필수 코스라 여겼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성공했다고 느꼈던 선배들의 행보가 그러했고, 나 또한 그들의 행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직을 위한 활동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많은 시도와 도전의 출사표를 던졌지만 매번 좌절을 맛보며 나는 다시 나의 현실을 마주했다.
그들의 행보 뒤에 많은 발자취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현실적인 답은 무엇인가?’
단지 익숙해진 일에 대한 보상으로 경력과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보상‘다른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 다른 장소로의 이동! 그 외에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직장생활 3년 차와 이직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답은 내게 딱히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시기 또 다른 기회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신념과 묘한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이직이 아닌 현실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투자와 준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근무년수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공부하며 새로운 도전을 만들 수 있는 일들을 내가 일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만들어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정 후 나는 나의 공간, 현재의 직장에서 나의 다양한 커리어를 쌓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내게 질문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는 되었는가?
진짜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나는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는가?
결론은 아직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대목에서 나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답도 현시점의 나의 분야에 대해 나는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대목에도 나는 답을 내지 못했다.
나는 시간과 준비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3년, 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서울생활 3년 차, 직장생활은 5년 차를 지나는
시점,새로운 일의 작당이 필요하다.
앞으로 3년 후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나려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새로운 준비 시작!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할 전문지식도 부족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노답이었다.
현실을 직시하며 나의 분야에 전문성을 채워갈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해야, 어떻게 해야, 앞으로 3년 나의 전문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어떤 시간과 노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인지 질문과 답을 내보기로 했다.
질: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길 원하는가?
답: 시각디자인을 넘어 *VMD (visual merchandiser) 전문가가 되어보자!
질: 3년 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 기간 동안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답: 전문분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하고 습득한다.
질: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인가?
답: 내가 몸담은 분야, 실무에 적용하면서 진짜 사례를 만들자.
*VMD: 마케팅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관리하는 직종
이렇게 질문과 답을 내며 전문분야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리서치했고, 전문기관, 학교, 세미나, 전시회에 대한 내용을 분기별로 찾고 정보를 수집했다. 습득한 지식은 내가 하고 있는 분야의 실무에 하나씩 적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중고차를 진열하고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지, 제품을 정보를 어떻게 주고 판매해야 판매율이 올라가고 만족도를 높일 것인가에 고민을 시작했다. 전문 서적을 수집하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다양한 리서치와 현장 적용을 통해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완성도 있는 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은 즐거웠다.
나의 일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고, 기간별로 나의 직무에 당장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내용들을 현장에 접목해보았다.
현장은 내게 가장 큰 공부였고 그렇게 내게 가장 소중한 경험치가 쌓여갔다.
물론 다양한 시행착오와 질책이 따르는 일도 있었지만 나의 진짜 경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트렌드 조사?’
‘그거 어떻게 하는 거지?
‘L’사에서 주최한 한 세미나의 한 발표자료에서 나의 현실에 대해 ‘띵’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문가가 돼보자고 했던 나는 그 말의 의미와 방법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
내게는 늘 멘토로 불릴 사람이 없었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외부 활동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답을 찾아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개념부터 잡아야겠다.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찾기 위해 나는 필요한 기간 내 개념을 잡아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 세미나 발표자가 교수로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리고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을 생각하며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즈음, 년간 100만 원 내 교육지원을 시작했던 회사의 제도가 떠올렸다.
그리고 야심 차게 교육 신청품의서를 작성해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제가 이 분야에 교육을 한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박대리, 이게 무슨 교육이에요?”
“비주얼 머천다이저 교육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서 우리 매장에 잘 팔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공부시켜달라는 거죠?”
“네!”
대리급이었던 나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겠다며 품의서를 내밀었고 6개월과정의 교육을 사장님은 흔쾌히 사인을 해주셨다. 지금도 사장님께 열린 생각과 지원에 감사한다.
퇴근 후 3시간씩 고단하고 힘든 수료과정이 시작되었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공부였고, 그 내용들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배우고 접목하기 좋은 과정을 경험하며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 개념을 습득하였고 프로젝트를 결과물을 마지막으로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후 나는 비록 두 명이 운영하는 실이지만 우리실의 이름을‘ vmd실’로 변경했다.
연말즈음이면 분기별 트렌드 리포트를 작성해 팀원들과 서로 공유하는 스터디를 했고, 매년 그렇게 만들어가는 회사 일은 온전히 나의 경력으로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직 대신 택한 현실성 있는 나의 선택과 실행은 다음을 위한 큰 도약점이 되어 주었다.
외부의 시선과 말들로 방향을 잃을 시기,
나는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직무와 커리어를 객관적으로 인정해줄 정보와 지식 습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 시간과 경험치들이 쌓으며 나의 커리어를 만들어 갔다.
지금 돌아보면 개념도 방법도 알지 못했던 때, 내가 해온 일들이 지금의 시작점이었고, 그 작은 시작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일도 불가능했으리라.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지금까지도 가슴 한켠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서른, 결혼’
이 시기 두 단어는 우리의 삶의 주기에 뛰어넘어야 하면 하는 ‘인생의 허들’ 같은 것이었다.
‘서른’이라는 단어는 늘 내게는 먼단어라 생각했었고, 막상 만난 서른은 정착할 대상에 대한 고민과 확신이 없는 삶의 행보에 대해 불안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그 단어에는 많은 의미를 담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 삶의 균형을 위한 시작점이 되는 시기였고 나 또한 그 시간을 거스를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즈음 서울생활을 시작한 여자 동기들은 반이 넘게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떠났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또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1~2년이 더 지났을 때 여자 동기들은 하나,둘 서울생활에서 자취를 감춰갔다.
대학 1년 때, 서른이면 나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막상 마주한 서른은 결혼도, 엄마도 , 전문직장인으로도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한 나이로 불안정한 인생의 시기를 경험하며 힘겹게 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승진하고 성공하려면 결혼은 미뤄야 해!”
서른 그해 ,동기모임에서 확신에 차 말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때의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싶어 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성공’의 의미를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불확실한 미래, 서로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무용담처럼 꺼내어 우리의 미래를 대입해 봤던 것 같다.
‘서른, 결혼, 이직, 성공’
우리들은 능력과 연봉의 비례관계를 설명하고‘성공’이라는 단어 앞에 포기해야 할 것들의 순위를 세웠다. 결혼이라는 시간은 자연스레 미뤄졌고, 300~400만 원에 이직은 대단한 인정으로 생각하며 이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능력에 비례하는 결과는 연봉으로 봉착되고 그것이 작은 성공이라 믿었다. 그리고, 또 우리들은 2년 후 3년 후 또 얼마의 성공을 성취하길 기대하며 견뎌냈다.
그 시기 개인적으로 어려운 가정사를 함께 겪으며 내게 서른은 참 잔인한 시기였고 그랬기에 더 치열한 시간을 살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밑받침이 된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힘겨운 그 시간, 남들을 쫓는 방향의 막연한 동경과 부러움 대신 내가 원하는 방향을 수정하고 실행하며 살았다. 그리고 일정 기간별로 그 시기의 흐름과 변화에 맞게 나의 진로와 방향을 변경해가며 나의 삶의 퍼즐들을 하나씩 맞추고 채우며 살아왔다.
삶은 질량 보전의 법칙이 성립한다.
내가 투입한 만큼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동일한 결과값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어느 정도의 오차에 당황할 때도 있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나에게 온전히 돌아와 있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 것
!온전한 나의 방향을 찾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소신있게 걸어가는 것
나이 서른,
나는 많은 질문과 답을 내기를 반복하며 삼십 대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나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말이다.
by 박 마담의 ‘슬기로운 여성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