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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희 Aug 28. 2018

01 나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

part2. 슬기로운 여성생활 01


봄, 새로운 시작 

쌀쌀한 봄날, 새로운 준비로 분주했다.
왠지 모를 설렘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억되는 봄이다.
그리고 3년 전 대학원 진학을 두고 고민했던 시간이 기억난다. 


그 봄이 있기 3년 전 나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과를 고민하다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그때는 회사 내 학벌에 대한 이슈가 있었던 때였다. 배움의 목적보다는 학력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진학을 결심했었다.
결과는 낙방, 그때의 나는 목적의식 없이 단순히 내가 걸고 싶은 간판을 보고 내가 원하는 일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선택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지난 3년 동안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삶의 방향은 변화했고, 현재의 일, 발전 방향성, 그리고  나의 미래를 위한 준비에 맞게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의 실패는 지금으로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학,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 그리고 그 이후 시간은 새벽잠을 설치는 육아 그리고 다시 아침
그리고 수업이 있는 날은 칼퇴근을 해야 했다. 
퇴근 시간이지만 회사 분위기상 미리 양해를 구했고 그 공부의 결과를 하나씩 업무에 담아 보여주자.
그것으로  나는 그 이해를 구하고 또 성장하는 나의 모습도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브랜드를 관리하고 담당하는 일을 했다. 
고객에게 보이는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일로  매장, 인쇄물, 이벤트, 마케팅 관련된 일까지 다양한 일들을 다루었다. 
새로운 일에 대학원에서 얻은 정보를 접목해 일을 진행하고 매주 월요일 주간 보고에 다양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는 일들을 접목해나갔다. 그렇게 그 분야에서만은  정보과 실무가 접목되어  회사에서  제일 잘 아는 분야가 되어 가고 있었다.




힘들지만 행복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거니?”
“너무 힘들게 공부까지 해야 하니?.”


육아를 위해  생활을 같이 사시던 엄마의 시선 
늘  늦은 퇴근과 공부, 지쳐 있던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다. 


엄마의 삶은 늘 바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삼촌, 고모까지 함께 살던 가족 구성원이 열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새벽 다섯 시면 엄마는 시계 알람처럼 일어나 밥을 지었고, 모두가 집을 나간 후 집을 정리하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하시는 공장에 일을 봐주러 나가셨다. 그리고 오후에는 다시 집으로 퇴근해 집안일을 돌보시고 빨래에 청소에 많은 일을 혼자 해내셨다. 
그때를 살아가던 엄마의 삶에 비하면 나의 하루는 그렇게 고단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해주셨고,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케어하는 것 말고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십 대 즈음  엄마는  직접 운영하는 가게를 여셨고 그렇게 많은 집안일과 가게일을  늘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해내셨다. 일을 통해  또 즐거움도 찾으시고 그 안에서 만들어 기는 인간관계를 통해 힘을 얻으셨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건 그 많은 일들을 당연히 해내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엄마,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앞으로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일단 시작해보려고 언제고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해.”
 “엄마도 나 때문에 그 기간  힘들겠지만 좀 도와줘.” 


앞으로의 시간에 어떻게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과정이 꼭 필요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준비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그렇게 본인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셨던 것 같다. 
양날의 칼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시간이기 때문인 걸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이었다.


그 기간은 늘 피곤했다.

그래도 주말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 남편과 아이에게 나의 바쁨을 보상하려고 했고 직접 차려주는 밥상으로 모든 결핍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주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라도 엄마와 아내의 시간을  채워보고자 노력했다.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이었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준비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퇴근시간에 맞춰 발걸음을 재촉하며 직장인으로 엄마로 야간대 학원생으로의 삶을 살아갔다. 



행복한 퇴사 그리고 시작

졸업, 그리고 무작정 도전!


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째 인생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 나의 새로운 일.


‘나는 적합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가?’ 


우선 현재 직장인으로 나의 현재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의 현재 경력을 작성해 본다.
직장경력 15년, 시각디자인을 전공, 관련 분야의 석사학위, 대기업 브랜드와 마케팅 업무 수행, 브랜드 신규매장 오픈 경력 10년
나의 경력과 맞닿는 분야의 학과와 위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석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디자인 관련학과에 석사학위 교수진들이 많았지만, 석사를 하는 기간 동안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을더 많아지고 또 학교도 원하고 있었다. 나의 경력으로 가능한 자리는 업무와 강의를 겸하는 자리나 회사를 그만둔다면 산학협력 관련 특화된 자리만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와 관련해 모교 교수님과 선배들 그리고 후배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 나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를 담아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준비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일과 연관된  다양한 루트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원이 가능한 분야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교직원 구직사이트와 관련 카페를 들여다보며 몇 달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학교로 수십 통의 메일을 썼다.
간신히 서류를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가능성이 있어 보이던 자리 또한 실무만 하던 내게는 배점을 받을 만한 플러스 요소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나는 조금씩 직장생활의 탈출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낙심을 하던 무렵이었다.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031.000.000’
 내가 지원했던 경기권의 학교였다.
 “ooo선생님이시죠? 4월 1~4일 기간 중 언제 시간이 되실까요? “
 “인터뷰 시간을 잡으려고 합니다.”
 “네~ 시간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전화를 끊고 나는 속으로 ‘끼약~~’소리를 질렀다. 뭔가 새로운 도전에 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학과는 내가 관심분야로 생각하던 학과였고 처음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학교였다. 
교육경력은 없었지만 내가 관심이 있어  실무 영역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일이기도 하였고, 앞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분야를 더 깊이 경험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인터뷰를 위해 실무 프로젝트 파일을 정성껏 정리했다.


인터뷰가 있던 그때는 봄이 시작되던 시기, 졸업 후 8개월이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학교는 낯설지 않았다. 결혼 전 데이트하러 갔던 장소이기도 했고 남편의 모교였기도 했다. 좋은 예감을 가지고 학교로 들어섰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며 내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도전이었던 인터뷰를 열심히 끝냈다. 인터뷰는 나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실무 베이스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춰 잘 마무리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너무나 뿌듯한 기분이었다.
실무 베이스로 보여줬던 프로젝트 리뷰는 큰 호응을 받았고 생각지 못한 교수진의 찬사를 받았다.
무언가 이 일을 계기로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실무자로서 직장이 아닌 학계의 인정을 받았고, 나의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뿌듯한 기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내가 시도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할 기회였다.’
이대로 나는 학교에 입사하지 상관없을 정도로 내가 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생겼던 계기가 되었고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인터뷰였다.


나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일을 시작했고, 같은 브랜드를 오랜 기간 관리하면서 브랜드와 마케팅 일로 확장했다. 조금 더 나아가  고객중심 사고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접목해 공부하며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나의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고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큰 축을 차지하는 부분이 되었다. 
그 시기 내가 갔던 세미나에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접근이 없었다면 시도도 하지 못했을 일이고 공부하며 시도한 현업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과제를 만들고 실행하는 일을 계속해왔고 프로젝트 실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치들을 쌓았다. 
그 결과물들을 직장이 아닌 다른 자리에서 내 결과물와 실행에 대해 평가받고 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인터뷰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런 설레임은 잠시 2주간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갔다.


‘실무중심 경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인가?’


마음을 접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른한 오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제 어디를 향해 ‘내 가능성을 타진해볼까?’ 생각 중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박상희 선생님이시죠? 제가 해외학회를 다녀오느라 연락이 늦었네요~”

 “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신가요?”


‘야호’
속으로 함성을 질렀다. 서울생활 12년 만에 다시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어느 기간 양해를 구해야겠구나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상! 박마담이었습니다


이주 후부터 나의 두 번째 시작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제일 먼저 팀원들이 생각났다.
길게는 8년을 함께해온 친구들에게 나의 퇴사를 미리 알려야 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일이 매일  아침을 함께하던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궂은일이든 좋은 일이든 함께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팀과 함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결과를 만들며 성취감을 느끼던 일은 이제 못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쑤욱 올라왔다. 
하지만 언제고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에 서로의 새로운 길을 응원해주면 된다.
단지 내가 제일 먼저 그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서울생활의 첫 번째 도전을 받아준 회사 
2002부터 2014년이 된 현재를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 기간 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회사였고, 많은 기회를 준 곳이었다. 
어느 기간은  실망감을 느끼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 실망마저 내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내게 주어졌던 자연스러운 상황이라생각하고 서운한 마음은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긴 기간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해준 정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힘들게 했던 일들을 기억나지 않고 내게 좋았던 기억만 떠올랐다.


서울 상경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데리고 아현 가구거리를 안내해주셨던 이사님, 
전셋집을 찾는 나를 차로 데리고 다니시면 집을 봐주셨던 사장님, 
그리고 지방에서 올라온 저를 맛집들 데리고 다니며 살뜰히 챙겨주신 부장님,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들,
그리고 내게 가장 힘이 되었던 우리 팀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추억으로 마음에 담겼다.


출근 마지막 날이었다.
전체 팀장회의가 있던 날  2/4분기 마감회의를 하고 팀별 발표가 끝난 다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모든 분들께 마지막 인사 메일을 썼다.
외장하드에 담겨있던 그간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꺼내 메일에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그 사진들로 아쉬운  나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2002년 입사 후 첫 워크숍 , 체육대회 사진, 연말 파티, 장기자랑, 숨이 목까지 차오던  산행 후 먹는 비빔밥, 회사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사무실에서 고사를 지내던 사진까지 2002년부터 젊은 날을 함께 해온 우리들의 사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회사는 제가 20대와 30대를 가장 행복하게 보냈던 장소였고, 그 기간 제가 많은 도전과 기회를 준  곳이었습니다.

“새로운 출발에 응원해주세요. 어디서든 저답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상! 박마담이었습니다.”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은 아쉽고 힘든 일이었지만 나의 존재를 찾고 도전하며 살게 했던 그곳에서 나는 행복한 배웅을 받으며 퇴사를 했다. 
혈기 넘치는 20대를 지나 30대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그 곳, 많은 도전과 좌절의 시간, 그리고 성공의 시간들 
그 축적의 힘으로 나는 새로운 문을 열고 나는 두 번째 출발을 향해 내디뎠다. 





두 번째 시작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 
그것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첫 번째 시작이었다. 
나는 내가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는 일을 이루기 위한 끈기와 집념은 나의 큰 장점이다.
그렇게 꾸준한 준비와 실행으로 만든 작은 성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하게 된 새로운 도전은 내게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꾸준히 준비된 변화는 크고 작음을 떠나 그렇게 내디딘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인생에서 성공적인 일들이다.


생각지 않은 실패로 심리적인 부담을 가져올 수 있지만 모든 실행은 값진 경험이다. 
그렇게 두 번째 시작을 준비하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남겨본다.


!첫 번째, 나를 깨워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
!두 번째, 경험하라
나다움을 찾았다면 되도록 많은 경험을 통해 나만의 기준을 갖는다. 
!세 번째, 도전하라
경험을 통해 기준이 생겼다면 나만의 새로운 도전과제를 부여한다.


이렇게 나는 적게는 3년 길게는 5년을 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살았다.

내가 시도한 일들이 모두 성공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또 배우고 그 기간의 경험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진짜는 내가 직접 경험한 일들 안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을 알기에 나는 또 경험하고 부딪치며 성장하며 살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나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면서 말이다.



by 박마담의 ‘슬기로운 여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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