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약 1년 반 동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가 독일에 있어서 사무실 출근은 따로 없이 집이나 카페에서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면 '편하겠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복잡하게 생겨먹은 동물이라, 즐겁고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서는 챙겨야 될 부분이 많다. 나만의 환경과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비싼 책상일 필요는 없다. 대신 좀 널찍한 편이 좋다(나는 현재 160x80cm 크기를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길이보다는 폭을 중요하게 보는데, 확장 모니터를 쓸 경우 폭이 80cm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이 좁으면 모니터가 너무 가까워져서 눈이 시릴 수 있다. 매일 앉아서 일하는 곳인데 일할 때마다 눈이 시리면 일하기 힘들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신경과학자 앤드류 후버맨에 따르면, 모니터 높이는 나의 눈높이보다 살짝 위쪽에 위치하는 것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책상을 찾았다고 해서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있으면 곤란하다. '서서 일하는 게 좋다', '앉아서 일해야 다리에 부담되지 않는다'라며 한쪽 편을 들 필요 없이 둘 다 섞는 게 좋은 것 같다. 어떤 자세건 간에 똑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있으면 근육이 굳으니 자세를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탠딩 데스크가 없다면 책장이나 옷장 서랍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음은 환경인데, 같은 장소에서 반복해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하루가 지겨워질 것이다. 사무실의 경우 (아무리 같은 장소라고 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지만, 집에서만 일하면 고립감 때문에 괴로워질 수 있다.
그런 고립감을 날려버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카페에 가는 것이다. 도서관이나 공유 오피스를 가도 상관없다. 목표는 어떤 방법으로든 사회적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게 편해', '나는 카페가 좋아'라는 식으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이 역시 둘 다 섞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건 환경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야 주의가 환기되고 집중이 잘 된다.
포커스메이트(FocusMate)라는 서비스가 있다. 재택근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서비스다. 모르는 사람과 1대 1로 카메라를 켜놓고 각자 일을 하는, 마치 스터디 카페 느낌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각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짧게 나눈 다음 50분 동안 알아서 일하면 된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딴짓하는 것은 왠지 부끄러우니) 집중하게 된다.
영상이 부담스럽다면 투두메이트(todo mate) 같은 툴도 있다. 평범한 할 일 목록 관리 앱에 소셜 기능이 추가된 서비스다. 각자 할 일 목록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면서 '이 사람은 오늘 무슨 일 하나' 같은 느낌으로 훔쳐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할 일에 이모티콘 리액션을 달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내 할 일 목록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꼭 완수해야겠다'라는 묘한 사명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로 코딩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각코(모여서 각자 코딩) 모임에 드는 것도 방법이다. 구글 미트나 디스코드에 5~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카메라를 켜놓고 각자 코딩하는 모임이다. 규모가 더 작거나 클 수도 있고, 각자 조용히 코딩만 하거나 활발히 피드백을 주고받는 등 모임의 성격에 따라 모두 다르다. 모각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다양한 모임이 나오니 자신에게 맞는 온라인 모임을 찾아보자.
혹시 당근마켓을 쓰는 사람이라면 우리동네 게시판을 둘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근마켓에서는 물건 판매뿐만 아니라 '같이 OO 하실 분!' 같은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거기서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다른 사람과 함께 카페나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면 사회적 욕구를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 꼭 당근마켓이 아니더라도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 방법은 여기저기 많다.
개인적으로 전혀 다른 업계의 사람과 (그러나 일하는 스타일은 비슷한) 일하는 것이 같은 업계의 사람과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회적 욕구를 채우는 동시에 신선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들을 수 있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 같은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안정감과 긴장감은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된다.
집에서 일을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일할 맛이 나게끔 환경을 잘 가꾸어야 한다. 컴퓨터 화면에 지문이 얼룩덜룩 묻어있고 먼지가 소복이 쌓인 상태를 새 것처럼 반짝반짝한 상태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에어스프레이나 컴퓨터 청소용 용액으로 노트북과 휴대폰을 깨끗이 닦는 것만으로도 일하기 싫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다. 거울같이 깨끗한 화면으로 읽는 이메일과 손자국 가득한 화면으로 읽는 이메일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일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바탕화면에 어지럽게 늘어진 파일과 쌓여만 가는 즐겨찾기 목록을 보면 (아무리 익숙한 환경이라고 해도) 내 집중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필요 없는 문서는 지우고 자주 안 쓰는 파일은 폴더에 집어넣자. 맥 유저라면 CleanMyMac X, Disk Doctor, Daisy Disk 같은 앱을 추천하며, 윈도우에서는 '디스크 정리'라는 기능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휴대폰에서도 안 쓰는 앱은 과감히 지우자.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깔면 그만이다. 아이폰에서는 '스크린 타임' 기능으로 평소에 어떤 앱을 많이 쓰는지 확인해 목록 하단에 있는 앱들은 삭제하자. 안드로이드에서는 구글에서 공식으로 제공하는 Files 앱으로 잘 안 쓰는 앱, 중복된 파일 등을 손쉽게 확인하고 지울 수 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온라인으로) 늘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슬랙에 접속하면 꼭 '굿모닝!'이라고 쓰고, 퇴근할 때는 꼭 '바이바이!'라고 쓴 후 접속을 끊는다. 굳이 할 필요 없는 행동이지만, (차가운 디지털 공간에) 인간적인 부분을 가져다주어 분위기가 밝아지고, 특히 본인 입장에서는 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해지니 좋다.
디지털 업무의 단점은 할 일이 무한대로 있다는 점이다. 읽어야 할 메시지, 써야 할 이메일은 아무리 처리해도 끝이 없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죽을 때까지 무한대로 개선할 수 있다. 재택근무는 출퇴근을 위해 움직이는 시간이 없으니 업무와 생활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시그널을 꼭 만드는 것이 좋다.
이메일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퇴근 전에 이메일 보관함에 있는 메일을 전부 비우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 메일은 내일 읽어야겠다'며 그냥 보관함에 두지 말고, Snooze 기능을 통해 내일로 미루어버리자. 어차피 내일 다시 쌓이긴 하지만, 일단 싹 비워진 이메일 보관함을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슬랙이라면 remind나 북마크 기능으로 내일 읽어야 할 메시지를 표시한 후 안 읽은 메시지 숫자를 0으로 만들어보자. '다 비웠으니 끝!'이라며 명확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힘들지만, 매일 집에서 일하는 것은 쉽게 지겨워진다. 사무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이나, 효율적 환경,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 등이 사라지면서 일하는 즐거움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어떤 부분이 결여되었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하자. 관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내 환경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면 즐겁고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좋은 책상을 쓰자
2. 환경과 자세를 계속 바꾸자
3.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일하자
4. 오프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일하자
5. 컴퓨터와 휴대폰을 깨끗이 닦자
6. 안 쓰는 앱과 파일은 과감히 지우자
7. 일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자
*글에 사용된 일부 이미지는 Focusmate 공식 홈페이지와 CleanMyMac X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한 것입니다.
*본 내용은 요즘IT와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