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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Aug 15. 2021

IT 스타트업의 ­인수합병이 실무자에게 미치는 영향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약 1년 전, 전략적인 이유로 다른 회사와 합병하였다.


인터넷에서 IT 스타트업의 인수합병 관련 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얼마에 팔렸다더라', '창업자가 돈방석에 앉았다' 같은 이야기가 많다. 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야기의 단편만 보여주는 것 같아 늘 아쉬웠다.


단순히 서류 작업이 끝났다고 해서 인수합병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서류 ¬¬작업이 끝나고 나서가 진짜다. 진행 과정에서 회사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직접 손을 담가야 하는 것은 바로 실무자들이다.


IT 스타트업이 인수 합병된 후에 사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실무자들의 업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자.


1. 새로운 책임자들 등장이요 

인수합병이 진행되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지휘체계가 자리를 잡는다. 매각된 회사의 CEO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고, 팀이 통폐합되면서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팀은 그대로이지만 새로운 팀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직함과 권한이 바뀌고 공지되는 것을 보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뭔가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나의 경우 합병 전이나 지금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지만, (합병된 회사의 멤버들과 직위 레벨을 맞춘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승진을 했고 새로운 동료들이 팀에 합류했다. 합병되고 몇 달간은 누가 누군지, 조직 구성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갖고 있는지 우왕좌왕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변화에 적응하는 동시에 기존 업무도 처리해야 하니 다들 조금씩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2. 인프라 합치기 지옥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일단 한 번 세팅이 됐으면, 그 익숙함 속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두 회사가 하나로 되었으니,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IT 인프라도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확산되고 충돌이 일어났다. 조직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는 (비록 혼란스러웠지만) 저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실무자들 업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영역부터는 수많은 미팅이 이어졌다. '각자의 익숙함을 최대한 지키기 대회'의 시작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A사는 프로젝트를 지라(JIRA)로 관리하는데 B사는 깃허브(Gitbhub)로 관리해왔다. 이제부터는 어떤 것을 써야 하나?

화상 미팅은 마이크로소프트 팀즈(Teams)에서 해야 하나 구글 미트(Meet)에서 해야 하나?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로? 아니면 슬랙(Slack)으로?

이메일 도메인 하나로 합치기(자동 로그인되어있는 사이트에 전부 새로 로그인해야 하고, 그로 인해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우왕좌왕하는 동료들이 속출한다)

서버 인프라를 아마존 AWS와 구글 클라우드 중 어디에 둘 것인가(그리고 한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발 일정 지연과 오류 해결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사람은 기존 환경이 바뀌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변화에 따른 수많은 귀찮음을 전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정을 새로 발급받아야 하고, 인터페이스를 익혀야 하고, 세팅을 새로 해야 하고, 기존 데이터를 옮기는 작업까지 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의 업무가 축적되면서 구축된 환경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합병하고 조직이 커지면서 보안 이슈도 있다 보니 로그인 정보를 얻는 것도 여러 번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고,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료들도 챙겨줘야 하니 잡일이 많아졌다. 원래의 업무와 별개로 해야 하는 일이라 더욱 귀찮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난 느낌이 많이 드는 구간이다.


3. 프로세스 까뒤집기 지옥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바뀌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 담당자 바꾸기 : A사에서는 파트너와의 연동을 엔지니어링 팀이 담당하는데, B사에서는 고객서비스팀에서 담당할 경우, 이 둘이 합병하면 어느 팀으로 업무가 배정되어야 할까?


A사에서 했던 것처럼 엔지니어링 팀이 담당하면 연동 퀄리티도 좋고 기술적인 이슈도 발생할 확률이 낮지만, 속도가 느려지고 개발에 쏟을 시간이 부족해진다. 반대로 B사에서 했던 것처럼 고객서비스팀이 맡으면 속도는 빨라지나 기술적인 부분이 허술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 회사가 합병되고 나서는 고객서비스 팀에서 맡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엔지니어링 팀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안 이슈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업무를 뺏겼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 보상 체계 바꾸기 : 두 회사를 합병했는데 보상 체계를 따로 운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보상 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는데, 절대적 금액이 인상되는 것이 아닌 이상 불만이 나오는 것은 예상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두 회사는 이전부터 보너스를 OKR 점수를 기반으로 계산해왔다. OKR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교육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았지만, OKR 양식과 보너스 계산법이 바뀐 것이 문제였다. 계산법이 달라지니 뭔가 손해 보는 것 같다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객관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계산법이었는데도 그랬다. 실무자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플러스가 되는 변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금액 차이는 별로 없으면서 계산법만 달라졌다면 일단 경계심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모두가 합병 이후로 정신없었기 때문에 설명과 납득을 위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더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 미팅 시간 바꾸기 : 새로운 동료들이 다른 국가에 있을 경우 해당되는 내용이다.


우리 회사는 독일에 위치하고 있고 합병된 회사는 미국 서부에 위치해 있다. 시간대가 다르니 커뮤니케이션 타이밍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있기 때문에 운 좋게도 아침 시간에는 미국 팀과, 오후와 저녁 시간에는 독일 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직원에게 시간대를 조정해가며 일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루틴을 바꾸기 싫어한다. 따라서 한 동안은 미팅 시간을 조정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여러 번 실험해본 결과, 모두가 애매하게 납득할만한 시간대로 바꾸기보다는, '이번 주는 유럽 시간 중심으로, 다음 주는 미국 시간 중심으로' 같이 번갈아가면서 한쪽을 편애하는 시스템이 호응이 좋았다. 참석하기 정 힘든 사람은 녹화본을 보면 나름 보충이 되었다.


- 일괄적으로 규정 적용하기 : 독일 회사는 유럽의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 때문에 직원들의 개인 정보를 빡빡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그런 절차를 다른 국가의 팀원들에게도 적용하려니 업무와는 별 관련없는 서류 작성과 확인 절차가 늘어나 팀원들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 제품 통합하기 :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일반적으로 각자의 제품을 하나로 합치거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페이스북에 인수된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으로 로그인하기'가 생기고, 애플이 다른 회사를 인수해 운영체제에 시리(Siri)를 넣은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이 통합 작업이 정말로 어렵다. 제품마다 사용된 개발 언어와 구조가 다르다 보니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구축되어있는지를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 양쪽 시스템을 모두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발자와 프로덕트 매니저가 필요해진다.


게다가 통합 과정에서 핵심 개발자들이 퇴사라도 하면? 핵심 노하우가 휘발되면서(아무리 문서화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린다. 통합해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합병을 했는데, 통합에 매달리느라 기존 비즈니스에 신경 쓰지 못해 매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실무자들은 새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과연 통합을 할 수나 있을까?' 같은 의문이 들면 스트레스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4. 문화가 바뀐다 

사람들은 내가 이미 아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합병된 후에는 더욱 그렇다. 비록 서류 상으로는 하나의 회사가 되었지만,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용어가 다른 것을 보면 익숙함 사람들과 더 가까이 붙어있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런 문화 차이를 하루빨리 없애고 싶어 하지만, 사람은 강요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바뀐 척은 할 수 있어도 정말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이야기하고 합을 맞춰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의 문화가 지배하기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실무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합병한 회사 사람들 일 잘하더라'라는 인상을 반복해서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새로운 팀원에게 건네줄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서 주고, 티켓 내용도 더 자세하고 읽기 쉬운 단어로 작성해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면 도움이 된다.


5. 좋은 점도 있다 

위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인수합병 후 겪게 되는 좋은 일도 많다.


그것은 바로 이직을 하지 않고도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직 후 새 회사의 시스템에 나를 집어넣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합병 후 가장 좋아하는 점은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몇 달 전 더블베리파이(DoubleVerify)라는 미디어 측정 서비스를 연동하려고 했는데, 기술적인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기존 동료들은 (모두 나처럼) 해당 서비스를 만져본 적이 없어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마침 합병된 팀원 중 한 명이 "나 그 서비스 다뤄봤어!"라며 자진해서 더블베리파이 Q&A 세션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배운 내용을 토대로 PRD와 티켓을 작성했고, 서로 다른 회사 출신의 개발자들은 머리를 맞대어 서버를 최적의 상태로 세팅해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손발이 맞았을 때의 기쁨은 남달랐다. 덕분에 프로젝트도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완료할 수 있었다. 


결론

서로 다른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머리가 아픈 일이겠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회사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합병을 진행했지만, 시너지는 그냥 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로 합쳐지려면 문서 양식부터 개발 아키텍처, 커뮤니케이션 방법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합병된 지 벌써 1년이 넘어가지만 아직 합쳐지지 않은 부분이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기존 사업을 유지하고 조직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사업 모델까지 만들어야 하니 보통 일은 아니다.


결국 새로운 구성원들이 얼마나 빠르게 협력 마인드로 전환하느냐에 달려있고, 내가 먼저 잘해주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것을 지키느라 자존심 세워봤자 어차피 강제로 바뀐다. 내용물이 같아도 실무자인 내 손으로 바꾼 것과 강제로 바뀐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프로세스나 문화가 강제로 바뀌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김이 팍 식어버린다. 그럴 바엔 내가 먼저 변화에 적응하고 남을 도우면서 티를 팍팍 내는 편이 훨씬 낫다.


*본 내용은 요즘IT와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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