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면서 답답한 것 중 하나는, 많은 회사들이 여전히 종이 계약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당연히 모두가 전자계약으로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무조건 종이 계약서를 고집하는 회사들이 아직 많다. 흥미로운 점은 해외의 회사가 전자계약을 요청하면 OK인데, 국내 회사와는 뭐가 됐든 종이 계약서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까요"라는 말이 싫다. 원래 그렇게 해왔으면 이제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그렇게까지 바꿀 의욕까진 없어요"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전자계약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종이계약서를 고집하는 것은 그냥 고집을 고집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보기에 전자계약서가 종이보다 간편할 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기까지 하다.
전자계약서는 종이계약서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서명자의 이메일 주소로 발송하기 때문에 '본인이 서명했다'라는 증거가 있다.
서명한 날짜와 시간, IP주소 등의 정보를 통해 '언제 어디서 서명했다'라는 기록이 남는다.
서명란이 강제로 지정되기 때문에 서명이 누락될 위험이 없다.
전자계약 플랫폼을 통해 문서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분실의 위험이 없다.
종이처럼 찢거나 불태워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
아마 전자계약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전자계약 플랫폼이 망하면 어떡해?" "해킹당해서 우리 정보가 유출될지도 몰라!" 정도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계약은 이미 전 세계 수백수천 개의 기업이 매일같이 사용할 정도로 안정성이 검증된 형태이다. 종이는 종이 나름대로의 취약성으로 가득하다. 잠겨있는 서류 캐비닛을 열쇠 없이 여는 방법은 유튜브를 검색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종이계약서가 더 유효한 상황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 간의, 특히 IT 기업들 간의 계약이 왜 종이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이제 더 이상 모르겠다. 혹시라도 내가 놓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