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 했습니다. 사실 격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저를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멋대로 제 소식을 번번이 전하고 있고, 2주에 한 번은 제 생각을 문장으로서 전달해야 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잘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꽤 장거리였지요. 운전은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쇳덩어리를 조절한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이거든요. 관성에 몸이 튕겨나가는 것만 조심한다면, 꽤 적성에 맞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대신, 운전할 때에는 고속도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도를 선호하는 편이지요. 고속도로란, 빨리 갈 수는 있지만 밖을 구경하는 재미가 덜하지 않습니까. 동네가 바뀔 때마다 미묘하게 변하는 풍경이라든가 달리는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보 옆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할아버지들, 온갖 과일을 파는 직판장, 이런 곳에 이렇게 큰 회사가 있었어? 하는 물질감이 좋습니다. 가끔 새 대신 풍선이 떠다니는 것을 본다든가 생뚱맞은 곳의 번호판을 본다든지요. 저는 그런 자잘한 움직임이 좋습니다. 고급지게 표현하자면, 입체적인 것들이요. 저 자신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주제에 제 주변은 시시각각 돌고, 돌고 또 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뜬금없이 바다를 꺼내오고 싶습니다. 지구의 70%는 바다라는데 사실 지구가 아니라 해구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바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세, 네 번째에 속하는데 사실 집 근처가 바다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바다에 갈 수 있답니다.
그러나 저는 틈만 나면 바다에 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질리기 마련이거든요. 일부러 좋아하는 곡을 모닝콜로 해놓는다든가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같이 먹으면 쉽게 질려버리는 것처럼요. 혹시라도 바다가 질려버려 제가 아무 의미 없는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저는 글에서조차 바다에 대해 쓰는 것을 피하고 있어요. 마지막에 아껴먹는 새우튀김 같은 느낌으로요. 그러나 이번에는 제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바다를 거쳐야 했습니다. 덕분에 원 없이 바다를 볼 수 있었죠.
저는 웬만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중간에 멈추는 편이 아니므로 여러분도 제가 이 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오기 전까지 조금만 더 참고 읽어주세요. 뭐, 어쩌겠습니까. 합평하려면 읽어야죠. 그런 이기적인 마음에서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언덕 위 교차로를 지나면 멀리 보이는 수평선 같은 사람이요. 깊고, 잔잔하고, 변하지 않고요. 제가 좋아하는 시의 말마따나 무의미하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말이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어보고 나니,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누군가 저를 보면 감정 변화가 적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기도 하고 생각이 깊다고 말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심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몇 가지 있기 마련이죠.
가슴 속의 고이는 감정. 혹은 나 자신 자체가 내뿜는 감정에는 그것을 다스릴 자신이 없습니다. 최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평생 즐길 줄 알았던 취미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며 편하고 안정적이라는 위치에서 내려오기도 했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서 새 시작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저에게 큰 스트레스였나 봅니다. 심지어 바다와도 떨어진 내륙이라는 점이 크게 거슬렸습니다.
그 크고 작은 일들이 각기 다른 압력으로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피를 선택했어요. 일단,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자신을 뒤로 하고 멀리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내부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갈등과 여러 감정이 저를 휘몰아쳐 돌아 버릴 것 같았거든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먼 곳의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 작은 외딴 마을로 바다와 산길을 돌고, 돌고, 돌아다녀왔습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여행을 갔고, 국도로 갔고, 덕분에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나란 사람은 좀처럼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는 편이라는 것. 그런 제가 바닷가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죠. 평소였으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저는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죠. 그들은 엄청나게 큰 소용돌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크기에 저도 내심 놀라 눈이 커질 정도였죠.
소용돌이는 유체에서 다른 압력차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베르누이 방정식을 설명할 때 좋은 예라고도 하더라고요. 그곳은 소용돌이가 생기기 쉬운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주변의 암석들이 그곳에 무언가의 힘을 가해 소용돌이를 만들었겠죠. 그러나 소용돌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작은 힘이나 무언가의 충돌로 인해 곧 소멸하겠죠. 제가 본 소용돌이가 아직도 남아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용돌이가 생기기 쉬운 스팟이라면, 또 그곳에 소용돌이가 생기고 말 것입니다. 아주 쉬운 자극에도요. 점점 커져, 다시 제가 본 소용돌이 정도의 크기로 자라겠지요.
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이라고 말해도 기껏해야 10분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타 제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언제까지고 그 빙빙 돌기만 하는 현상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무슨 거창한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소용돌이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생각이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