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이케부쿠로

by 김만소

[미드나잇 인 이케부쿠로]

격조했습니다. 작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수필을 더 이상 쓰지 않았기에, 수필은 첫 문장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하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겨우 적응했던 설국에서 떠나야 하는 제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거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글을 적는 이유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레 웃깁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사실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었고 좋아하는 레몬 사와보다는 와인을 찾기 시작했으며 갤럭시 플립에서 아이폰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바다를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 그리울 때도 있지만 사우나도 그다지 가지 않게 되었어요. 바닥은 불바다 천장은 물바다인 제 생활도 나름 안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죠. 또는 더 이상 같이 무언가를 즐기며 잔을 기울일 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저는, ‘컴포트 존’에서 멀어졌습니다.

사실, 어쩌면 제게 컴포트 존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날씨가 어떻냐는 질문에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냐는 지인의 물음이 얼마 전에 있었기 때문이죠. 이 넓은 세계 중, 어느 장소에 있냐는 물음을 듣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끊임없이 변화했고 가변하는 기어처럼 인생을 살았나 봅니다.

그러나 물에 젖은 와인잔에 몇만 엔짜리 소비뇽 와인을 콸콸 들이부어 마시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변화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일 겁니다. 아주 귀찮은 일이거든요. 치과 의사에게 더 이상, 이 병원에 올 수 없다는 말과 비슷하죠. 나는 떠나고 내 진료 기록은 그대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슬픈 작년말이어요. 그리고 마침내 차의 번호판에 적힌 지역명을 지금 사는 곳으로 바꿈으로써, 저는 전에 살던 곳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습니다. 변화의 종지부 같은 느낌으로요. 약간은 서운했으며 한 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인생을 제가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요.

이쯤에서 지난 일 년간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알려드리자면, 그것은 바로 인생의 동반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자면 밤에 하는 운전과 비슷한 것입니다. 앞도 잘 보이지 않고 가드레일 너머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친다고 어디서 쉬어 가는 순간, 아침이 되어버려 더 이상 밤 드라이브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된다는 것이죠.

아마 저는(혹은 우리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말 아침에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거나, 조수석의 등받이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서요. 그리고 지금 제가 발로 밟고 있는 동네가 아마 우리가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요. 침대에 누우면 바깥에서 잘지 벽에 붙어 잘지 정하는 것부터 냉장고의 크기가 부족하다거나 일을 할 때마다 오늘은 몇 시에 집에 들어갈지 알리는 일까지 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도망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한밤중에. 매실주에 탄산을 따르던 것을 그만두고 말이죠. 이 잔을 마시면 우리는 영락없는 부부처럼 잠에 들어야 했거든요. 나가자는 말 하나에 우리는 간단한 짐을 챙기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타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딱히, 그러자고 정한 건 아니고 달리다 보니 종착지가 그곳이었습니다.

밤 운전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평소였으면 아름다울 산등성이들은 보이지 않고 나를 잡아 삼킬 듯한 삼나무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지요. 가끔 나오는 이정표에도 직진을 택했습니다. 얼마 전 새로 산 차를 탔는데, 대시보드에 붙은 먼지를 닦을 여유도 없이 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남짓 산길을 달려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워서 후지산을 지나온 것도 모르고요. 심야였는데도 불구하고 도쿄는 밝았습니다. 사람도 많았고 택시도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았죠. 한 달에 한 번은 꼭 도쿄에 들리곤 하는데, 이렇게 운전해서 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찻길에서의 시선은 도보에서 걸을 때와 많이 달랐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쿄는 여전히 도쿄였습니다. 여전히 화려하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죠.

도쿄역을 지나 이케부쿠로에 들어서고 우리는 한 중화 요릿집에 들러 교자를 한 접시 시켜 나눠 먹었습니다. 나는 간장에 고춧가루를 뿌려야 속이 시원한데, 제 반대편에 앉은 여성은 타레 소스에 교자를 푹 눌러 찍어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상황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집에서 밥을 차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러고서는 그녀의 디올 지갑에서 현금 천 엔을 꺼내 계산하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짧은 드라이브에서 적어도 저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곳에서 평생 살게 되더라도 설령 그곳이 미나토 미라이건 이케부쿠로건 고후건, 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삶을 사는 것은 변하지 않겠다고요. 그러니 변화하지 않은 삶은 있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었습니다. 그러니 한 동안은 다시 격조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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