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삶 안편에서 나름 이런저런 흔들림을 겪고도 용캐 살아남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했고, 매일 늦은 퇴근에도 냉동교자와 맥주 한 캔으로 근근히 행복을 챙기던 와중에도 비를 머금고 있는 시트지처럼 저도 모르게 새로 들인 버릇이 생겼습니다.
바로 우메슈라는 것을 만들어 마시는 것입니다. 우메슈는 아직 한국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일본 이자까야 어디를 가더라도 꼭 파는 술이에요. 한국어로는 매실주라고 하죠. 정말 여러분이 상상하던 대로 매실주의 맛이지만, 이것을 꼭 매화수처럼 마실 필요는 없고 여러 방법으로 마시는데 저와 제 동반자는 탄산수를 넣어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메슈는 상온에서 보관해도 되기 때문에 미지근한데, 그렇기 때문이라도 얼음은 꼭 필요하더라구요. 그렇게 저희는 약하게 취하는 것에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부침가루가 떨어졌을 때 새로 사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듯 지나간 후에 깨닫게 되더라고요.
우메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니, 슬슬 본론을 꺼내볼까 합니다. 바로 냉장고의 냉동실이 상태가 이상하더니 어느 순간 맛이 가버린 것입니다. 아예 얼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초반에는 버틸만 했지만, 점차 얼지 않기 시작하더라고요. 몇 시간 넣어둔 얼음을 꺼내보아도 전혀 얼지 않은 일이 매일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냉장고를 새로 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주 작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요.
예산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어요. 동반자가 아이폰 프로를 사고 싶어했고 이번 골든위크 때도 길게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막 살림을 꾸리기 시작하는 집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에 눈이 가기 시작했죠. 회사에서 비슷한 이야기로 고민을 이어나가는 중, 한 선배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냉장고란, 집의 커짐과 가족의 수가 늘어남에 있어서 조금씩 크기를 늘리는 편이 인생에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할 때 샀던 냉장고는 혼자 사는 것을 생각하며 샀기 때문에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둘이 살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는 그 내용물이 많아져 냉장고의 용량이 부족했죠. 그러나 단숨에 커다란 냉장고를 사는 것보다는 둘의 취향을 냉장고가 품을 수 있을 크기의 냉장고를 쓰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여 나중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의 식단도 생각해서 냉장고의 크기를 늘려야겠지만, 지금은 큰 것을 사고 빈 공간을 바라보는 것 보다, 작은 공간에 비좁아하며 조금 더 큰 용량의 냉장고를 꿈꿔야 할 시기였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뭐든 최고인 것을 준비해두는 것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중간한 것은 곧 그 위의 것을 원하게 되기 때문에 돈이 결국에는 배로 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세이코 시계를 사다가 필립 파텍으로 넘어가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필립 파텍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원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자녀에게 딸기를 사줄 수 있는 남편이 되기 위해 일을 해야한다. 조금 무리해서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조금 더 일을 열심히 해야한다. 조금 더 큰 냉장고를 사기 위해서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 또 달려야 한다는 것을 저는 냉장고의 고장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원래 쓰던 것 보다 한 칸이 더 넓은(야채칸이 생겼습니다) 냉장고를 샀습니다.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 것도 아니고 내년 여름쯤 이사를 할 생각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쓸 냉장고도 아니에요. 그러나 이 냉장고에 매주 장을 봐 온 식품을 채워 넣으며 어느샌가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큰 냉장고를 사기 위해 매일을 조금 더 힘내볼까 합니다.
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에서 살았었어요. 지금은 수도권에 가까운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도쿄에서 저녁을 먹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죠. 그러나 이곳에 오기까지 살고 싶은 동네 후보가 여럿 있었어요. 아마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챕터를 읽으셨던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이사를 하는 것에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조금씩 한 걸음씩 발전하더라고요. 오기 전에도 오고 나서도 말이죠. 저는 그것을 냉장고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모든 인프라가 완성되어 있는 도시보다는 이렇게 점점 개발되어 가는 곳이 더 살기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이, 매일 전해들어오는 소식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냉장고의 신선도같은 활기와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요.
아직은 전에 쓰던 냉장고가 익숙해 문을 확 열거나, 전에 살던 동네가 그리워 핸들을 꽉 움켜쥘 때가 있어요. 그러나 늘 그렇듯 그 모든 과정이 끊임없이 행복을 찾아 달리려는 우리의 마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