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하였습니다. 요즘은 열정적이기보단 일상의 무난함을 길게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십 대의 격동의 시간과 막 서른이 되었을 때의 불안감도 남은 부스러기 없이 사라진 탓일까요. 어느덧 서른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아쉬움의 감정 따위는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 그런 생각이 들 때에는 늘 글이 쓰고 싶었습니다. 전문적으로 글에 대해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 속의 감정을 전달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듯 길을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어딘가. 내가 앞으로 이용하게 될 미용실과 슈퍼는 어딘가. 회사는 어떤 길로 가면 가장 편하고 빠른가를 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많은 흔들림도 잠시 뿐일테고 이윽고 길의 풍경을 본 척도 안 하고 오늘도 졸립고 피곤하다는 생각으로 흑백의 세계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동태의 눈도 일 년에 이 주정도는 초롱초롱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벚꽃 시즌이지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꽃들 중, 유독 벚꽃에 우리가 목 매이는 이유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너머 무언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이 허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무함'이란, 그 자체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영역의 감정으로 퍼져 나간다고 생각해요. 스물의 다정함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것과, 술을 마실 때 가슴 밑에서 벅차오르는 감정과 첫사랑의 아련함 같은 것이지요.
최근, 사랑니가 아파오더니 결국 제 곁을 떠났습니다. 아무래도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회사 선배들과 삼겹살을 먹던 중에 갑작스럽게 반으로 부서진 것입니다. 계속 기둥쪽을 남겨두는 것도 이상해서 치과에 가서 나머지 기둥 쪽도 빼야했죠. 거의 십오 년 가까이를 제 몸이라 생각했는데 제 입 안 왼쪽 구석은 빈 자리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치아를 뺐다는 고통보다 더 이상 내 몸이라고 그것을 부를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치 벚꽃이 다 떨어졌을 때처럼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오늘은 담배를 피우지 말 것과 술을 마시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사랑니가 제게 남긴 메세지였겠죠. 나와의 이별로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라는 뜻으로요.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은 제게 조금은 힘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사랑니란, 원래 그런 것이니 앞으로 양치를 잘 할 것을 권유했죠. 저는 웃었습니다. 마취가 풀려올 수록 아파오는 감정을 뒤로 하고요. 어쩔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 말로 들렸습니다.
그렇기에 순간의 허무함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떠나보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닌, 있을 때의 무난함과 평온함에서 감사함을 느끼려고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올해 벚꽃은 저에게 꽤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주 남짓한 벚꽃의 개화를 맘껏 즐기기로요. 일본은 아시다시피 벚꽃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어딜 가도 벚꽃 나무가 있고 특히 벚꽃으로 유명한 지역도 분명 존재하죠. 원래 살던 동네는 너무 잘 알아서 벚꽃이 보고 싶으면 어디를 가면 좋을지 알았으나, 지금 사는 곳에서는 벚꽃이 처음이었기에 인터넷으로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저희 집 앞 벚꽃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매일같이 출근하며 그 시각적 이미지를 향유했습니다. 이 주의 절반은 꽃을 시샘하듯 비가 왔지만 그래도 색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벚꽃은 지고 사람들은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짜증을 느끼고 있으나, 저는 순간의 아름다움에서 눈을 돌리지 않기로 했어요. 더운 여름도 결국 더운 여름의 의미가 있고 매일같이 일을 하는 생활에도 그것만의 의미가 있다고요. 사랑니를 빼야하고 미루던 벚꽃놀이가 꽃이 다 떨어진 후에 후회하게 되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난 뒤에 그때가 좋았다는 후회와 허무감에서 저는 조금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이별에도, 내년 이맘 때 또 찾아올 벚꽃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마음 속의 변덕에도 어서와. 당신을 마음껏 즐겨볼게. 라며 인사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