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제가 막 사회에 나왔을 때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글입니다.
'아반떼가 사고 싶어 졌다.' 그 생각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맘때였을 것입니다. 한국이었죠. 지금은 벌써 차를 두 대 소유하고 있고 어느 하나 간단히 살 수 없는 비싼 외제차라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아무것도 없는 청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망망대해 같은 사회에 이제 막 작은 돛단배를 띄운, 젖은 바짓단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가 아닌, 나 스스로 정한 나의 가치로 월급 두 번을 받았고, 통장에도 슬슬 몇 자리의 0이 채워졌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취업 준비를 3년을 했었고 주말과 주중의 경계가 없는 삶을 천 일이나 했던지라 주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원래의 소중함에 대해 새롭게 일깨워가는 중이었어요. 토요일을 맞아 집 앞 카페에 갔고, 친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는 아이스 티를 마셔가며 떠들다가 카페 문을 나왔습니다. 분명 더웠고, 해가 싱그러웠고 카페 문 앞에는 신형 아반떼가 새워져 있었습니다. 아반떼를 비롯한 어떤 차에도 관심이 없었던지라 그냥 지나쳤을 법도 한데, 번호판 밑에 로고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Hyundai for life』
분명, 제 기억 속 첫 아버지의 차는 현대 아반떼였습니다. 아직도 그 차의 번호판 번호를 가족 비밀번호처럼 사용하고 있었죠. 잘 모르지만, 아버지는 당시에 저랑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회에 나왔고, 가족이 생기고, 조금 더 윤택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차는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에 저를 태우고 저의 칭얼거림과 울음소리를 다 받아주기 위해 면목동과 신내동 어딘가를 밤늦게까지 운전하며 돌아다녔겠죠. 그리고 가솔린 타는 엔진 소리와 차의 할부금이 아버지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건, 아버지와 현대차에 대한 향수와 그런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순히 깨달은 것뿐입니다. 그 당시 저와 비슷한 나이였던 아버지가 그 차를 본인의 돈으로 사셨다는 것이 놀라웠다는 것이요. 한적한 주말의 동네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던 당시의 저와 아버지의 상황은 별 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차가 있었죠. 거기서 저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의 차가 가지고 싶다고요.
벤츠, 아우디 이런 비싼 차가 아닌 아반떼처럼 현실적으로 살 수 있는 차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저의 능력이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사회초년생이 가진, 돈과 언어의 힘과, 미래에 대한 잠재가치 같은 것이었죠. 물론 당시에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만, 차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아니, 차를 살 수 있는 능력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결국, 아반떼는 사지 않았어요. 곧바로 일본으로 떠났기 때문이죠. 대신, 일본에서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있기는 합니다. 제 차들 번호판에는 로고 같은 것은 없지만 현대의 로고는 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저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자극을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