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에 대하여

by 김만소

격조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저는 살면서 많은 나쁜 짓들을 해 왔기 때문에 행복함과 거리가 가까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만 제가 행복하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변덕스러운 연주자의 변주로 인해 머물던 화음보다도 2,3도 정도 높아진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무슨 소리냐고요? 그것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제가 일본에서 취직을 결심한 계기를 먼저 말하는 편이 좋겠네요.


변덕과 우유부단함과 매사를 가볍게 생각하는 성격 탓인지, 제가 일본에서 살게 된 계기. 일본에서 취직하게 된 계기. 에 대해 말할 때는 매번 답이 다르곤 합니다. 주로 면접 때는 홋카이도 한 시골 역사의 60년 된 엘레베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합니다. 또 술자리에서는 가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죠. 그리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대학 3학년 때 친구들과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중,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한 일본 회사의 설명회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친구 하나가 가볍게, 너는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 저런 회사 지원해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하였고 저는 그 자리에서 일본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하고 말았던 것이죠. 저는 원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포기하지는 않는 성격이라서 그 벌써 10년도 전의 짧은 대화로 인해 지금 일본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저는 그 현수막에 걸려있던 회사에 정말 다니고 있어요. 따라서, 줄곳 이사했다는 내용의 글을 썼던 것은 원래 다니던 멋진 회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유이자 어떻게 보면 운명과도 같은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만화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매일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밤 늦게 퇴근할 때 건물 외벽에 라이트로 붙여진 회사 이름과 제 사원증에 적힌 글씨에 흡족해하면서요. 얼마 전에는 승진도 했어요. 가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어떠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회사에서 마지막 한 명이 될 때까지 남아 일을 하며 실력을 쌓아 올리는 재미가 조금은 더 큰 것 같습니다.


문제는 밥이에요. 아무래도 밤 늦게 일이 끝나다보니, 저녁을 먹는 시간이 늦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 오고나서 반 년간은 혼자 살았는데, 그때는 아침도 편의점 저녁도 편의점이었던 때가 많았죠. 퇴근할 때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오거나 편의점 레조르트 식품을 먹기 대다수였습니다. 보통 열 시에서 열한 시에 퇴근하니 대충 입에 우겨넣고 잠을 자는 것이 더 중요했죠. 그렇게 사오는 것도 귀찮을 때는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계란을 끓는 물에 넣고 두,세 알씩 먹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삶은 달걀이라는 것이 은근 포만감이 있어서 두 개 정도면 아쉽고 세 개는 배부른 느낌으로 잘 수 있었죠. 계란의 밑둥부터 소금을 푹 찍어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부분을 반으로 갈라 달걀 하나를 세 번에 나눠 먹는 방법으로 계란 하나를 해치우는데, 노른자의 퍽퍽함은 냉장고에 잠들어 있던 맥주 한 캔이나 레몬 사와 한 캔 정도가 해결해 줬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 시간이 된다면 뭐든 대충하기 마련입니다. 삶은 달걀을 만드는 과정조차 버거워진다는 것이죠.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고 17분이라 생각하고 12분만에 꺼낸다든가 끓는 물에 대충 달걀을 투하하다가 달걀이 깨져 물에 흰자가 퍼져 나와 이상한 모양이 잡힌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가끔 계란을 한 입 크게 깨물면, 익지 않는 반숙 노른자가 입술을 타고 흐르고, 황급히 티슈를 찾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미끌어질 때에는 그만큼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반증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고작 달걀 하나를 푹 익히지 못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겠죠. 그 엉망이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결국 다시 일에서도 발에 밟혀 넘어질수도 있었고요.


실제로 많은 것이 무너졌던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 것 또한 사실이고요. 그렇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도 사실은 미완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지금은 결혼을 했고, 아무리 늦게 끝나도 빈곤한 저녁과 같은 나사 풀린 일은 용서받지 못 합니다. 주로 제가 요리하고 설거지는 동반자가 담당한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제가 많이 늦을 때면 그녀가 대신 요리를 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지요.


그렇게 저는 반숙 계란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에서 조금 멀어졌습니다. 흘러내리는 듯한 노른자를 더 이상 손으로 받아 바닥에 떨어트리는 것을 막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요. 갑자기 동반자가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고 해서 다이나믹하게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녁은 꼭 동반자와 먹는다든가, 집에 가는 길에 회사 앞 꽃집이 아직 운영한다면 식탁 위에 화분에 꽂아 둘만한 꽃을 몇 송이 사간다든가 하는 정도로 변했죠.


그러나 그런 미숙한 저라도 제게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내가 부족한 것을 누군가 채워준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서로 미숙한 것을 미숙한 채로 내버려 두고 등을 기댈 수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정말인지 행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더라고요. 둘이 함께여도 미숙할 때는 있습니다. 가정 조사라든가, 처음 해보는 서류 절차들 같은 것에 둘 다 포기하고 거실 바닥에 누워있을 때처럼요. 주말이면 청소를 하자고 다짐했으나 결국 이번 주말도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에 시간을 다 쓴다든가 하는 것들 또한 그러하지요.


그러나 그런 사소한 미숙함이 지금은 좋습니다. 둘이 합쳐 하나가 된 누군가와 그리고 이 세상에 있을 저희와 같은 꽤 많은 누군가는 삶은 반숙 달걀을 완숙 계란보다 더 좋아하는 것처럼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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