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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Jan 10. 2024

MD의 옷을 입는다는 건

파트너사 직원 J님과 S님에게 배우다

"제가 00 업체를 되게 좋아하고, 많이 의지해요. 그리고..."

"저기, 잠시만요. 엠디님!"


(카톡)

<엠디님, 업체한테 다른 업체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아요. 되도록이면!>

<아... 네!>


  MD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파트너사 가공장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일적으로 만난 사이고, 적당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는데 사람이 그저 좋은 나는 친해지기 바빴다.


"과장님은 어떻게 도계사(닭생산업체)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다른 유통사 엠디들은 어때요?"


  첫날부터 질문 폭탄인 내게, 나보다 경력이 조금은 오래된 동료 엠디분이 슬쩍 충고를 해줬다.

모든 걸 오픈하지 말라고. 파트너사는 파트너사 일뿐, 이렇게 '사람'으로 친해지는 건 팀 사람들끼리만 하라고. 같은 회사 사람끼리만 하라고 말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더욱더 입을 닫고 있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하고 친해지고 이 사람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스타일일까? 어떻게 일을 할까? 등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그게 파트너사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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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사 J님과의 일화

"바이어님!(엠디를 바이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바이어님은 겉과 속이 너무 같아 보여서, 다른 사람들한테 이용당할까 봐 걱정돼요. 업체한테는 물론이고, 회사사람이든 누구든 딱 10%로만 오픈해요. 닭 판이 얼마나 살벌한데요. 바이어님처럼 착한(말이 좋아 착한 거지 물러터진 거다) 분은 이용당하기 딱 좋아요."


  업체 사람은 그저 '영업'인이어서 나에게 좋은 말만, 입바른 말만 한다고 선배들이 말씀하셨지만 '인간'적으로 잘 맞는 업체 J님이 있다. 한번 출장을 갔다가 서로 성향이나 취향, 생각이 비슷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후로 닭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J님에게 여러 가지로 많이 물어보고 배우게 되었다. J님은 내가 어떤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했을 때, 혹은 어떤 상품의 행사를 하려고 할 때 가격적인 부분이나 현실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한 번도 거절을 하거나 부정적인 표현을 한 적이 없다. 되든 안되든 일단 함께 도전해보려고 하고 서로 윈윈 하며 응원할 수 있어서 이런 게 진정한 파트너사의 '파트너'인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가금육이 아닌 다른 분류로 가거나, J님이 퇴사를 하게 된다면 서로 같이 장사를 하자고 할 만큼 끈끈한 관계가 된 것 같다. 우스갯소리지만, "제가 가금육을 맡는 동안 J님 승진시키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로 진심으로 그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고 나도 함께 잘되었으면 좋겠다.

  선배들이 업체는 100% 믿지 마라, 다 영업이다라고 늘 말씀하셔서 당연히 그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파트너사 중 한 명쯤은 진정한 '내 편'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무한 경쟁시대에 내 엠디생활에서 숨 쉴 하나의 틈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J님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그분이 있어(같은 회사는 아니지만, 늘 연락하고 함께 일하는 사이기 때문에) 내 회사생활이 조금은 '인간적'인 것 같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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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사 S님과의 일화

  "엠디님, 여기는 회사예요. 친구 만나러 놀러 나온 게 아니에요.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팀장님한테 가서 하고 싶은 일, 엠디님이 원하는 것 어필 반드시 하셔야 해요. 다른 사람 배려하다가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충분히 잘하고 계시고, 이렇게 열정이 있으시니 나중엔 더 높이 올라가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지금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제가 많이 도와드릴 테니 언제든지 말씀 주세요."


  파트너사 앞에서 눈물 훔친 사람, 바로 나다. 한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속이 답답했을 때 S님과 미팅을 했다.

그 누가 업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가. 나는 엠디의 자질이 없는 것인가?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이 세상 어떻게 헤쳐나갈까. 나는 애엄마인데, 이렇게 눈물을 쉽게 흘리나? 혼자 많이 자책하기도 했다. S님은 J님과는 반대되는 성향이지만, 다른 의미로 나에게 많은 도움과 배움을 줬다. 영업담당이지만, 항상 MD이상으로 일을 하고 또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이다.


"제 꿈이 MD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요즘에 MD를 안 뽑더라고요. 하하. 엠디님! 저는 엠디처럼 일하려고 노력하니까 언제든지 물어봐주세요. 엠디님 오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 제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S님은 말을 참 잘한다. 발표도 잘하고 자료도 잘 만든다. 능력도 있지만, 성실하기까지 하다. 회사에서도 꽤 인정받는 것 같다. 한 때 20대에 이자카야 술집 사장으로 2년 동안 엄청난 돈을 번 적도 있다고 한다. 하여튼, 이분도 정말 심상치 않은 것 같다. 나와 다른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세심한 성격이라 내가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이분이 계획하며 일하는 것을 보며, 나도 조금이나마 따라 하게 되었다.


"제 성격은 이렇지가 않은데, 엠디면 업체에게 무조건 갑으로 강하게 나가야 하고.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힘들어요. 약속된 일을 지키지 못할 때는 업체에게 너무 미안해서 말하는 것도 힘들고요. 때론 강경하게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참 쉽지가 않아요."


  J님과 S님은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이미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처음 배우는 순간부터 실수를 많이 했던 순간에도 "처음 3개월은 인턴기간이라 생각하고 봐드릴게요, 엠디님"하고 나의 처음부터 봐온 사람들이다.

비록 파트너사 사람이지만, 나는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배울 점도 정말 많고 한편으로는 정말 존경한다.


"나는 업체들 말 다 안 믿어."(상사)

"이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을 저절로 안 믿게 되었어요. 뒤통수치는 사람도 많고. 앞에서는 이런데 뒤에서는 딴 말하는 사람 많아요. 다 믿지 마세요 정말."(파트너사)


  서로 물고 뜯고, 갑이니 을이니, A업체가 낫니 B업체가 낫니, 이래저래 글 쓰다 보니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다. 그렇지만 결국 파트너사도 '사람'이다. 100% 아니고 10%로도 너무 비인간적이고, 한 20%만 보여주고 진심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일'은 '일'로만 보고, '사람'은 '사람'으로만 별개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끝나가더라도, J와 S가 회사를 다니는 시간 역시 끝나가더라도 끝까지 이어갔으면 좋겠는 인연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참 그분들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된 것 같다.

그럴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나의 회사생활을 열심히 기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J님과 S님께 남기는 한마디

장 과장님, 송대리님! 정말 감사해요. 과장님과 대리님이 제 파트너로 일해주셔서 제가 일하는 게 참 재밌고 보람되어요. 제가 가금육을 맡는 동안 항상 N극과 S극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이 다른 파트너사지만, 저는 두 분이 계셔서 항상 양어깨가 든든한 것 같아요. 뭐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게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엠디로써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저에게 많은 가르침과 응원을 주셔서 감사해요. 비록 회사분들이 '업체는 업체일 뿐, 마음 주지 마라.'라고 하지만 저는 두 분을 만난 것이 제 회사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많은 자극과 영감이 됩니다. 올 해도 함께 잘해보아요. 직접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기는 부끄러워서 이렇게나마 글로 남깁니다. 언젠가는 제 맘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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