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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Jan 22. 2024

요샌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

나다움을 유지하며 세상과 타협하기

  요즘 마음이 꽤나 불편했다.

살면서 내 성격이 사회생활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누구를 만남에 거리낌이 없다. 팀이 바뀌어도 금방 적응하고 곧잘 따랐다. 너무 방심했을까? 너무 속이 다 보였을까? 나는 진심으로 대한다고 생각하는데, 남은 아닐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은 못했다. 겉과 속이 같아서 보이는 데로 느끼는 데로 칭찬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면 서슴없이 했다.


 "있잖아. 너무 솔직해도 안좋아. A업체를 좋아한다고? 너한테 충성을 다한다고 너도 좋아한다고?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팀장님이 네가 여자고 온지 얼마 안되어서 가만히 있지만, 내가 이랬으면 난리났어. 작살났을거야."


  아차,하는 순간이었다. 어떡하지, 푼수떼기로 완전 찍혔구나.


 "담당님, 사람들하고 친목도모하고 두루두루 친한 건 좋은데요. 너무 다 보여주진 마세요. 나중에 피해볼까봐 그래요."


 "같은 회사 사람이라고 해도, 팀 사람이라고 해도 같은 파트 아니면 조금 거리를 둘 필요도 있어. 매출은 민감한 부분이거든. 내가 못하면 더 잘할 수 있는 파트에 매출목표를 넘겨야하니, 좀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


"항상 이 전쟁터에서 누구한테든, 10%로만 보여주세요."


  사람들은 대체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 어떤 분은 나이에 비해 내가 순수하고, 열정있고 밝다고 했다. 그런데 나쁘게 말하면 철없고, 엉뚱하고, 생각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단기간에 이런 소리를 자꾸 들으니 남들은 노파심에 하는 조언이겠지만 내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내가 잘 못 하고 있는건가...?'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여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은 잊지않고 마음속에 새겨왔는데 말이다. 진심은 안통할 수도 있다는 것.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진심 자체를 받아들일 준비도 안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

.

<사내 메신저 S대리님의 안부>

"담당님, 요샌 좀 어떠세요?"

"요새요?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어요! 제 자신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 있긴 하지만요. 하하"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너무 모자란 것 같아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엠디는 업체도 들었다놨다할 수 있어야하고, 좀 강압적이고 세야한다는 그런거요. 저는 그러지도 못하고, 오히려 업체한테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적당히 나다움을 유지하면서 제 방식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는 자꾸 뭐라고 하네요. 제 성격이 워낙 솔직하기도 하지만 회사에서는 적당히 숨기고 살아야?하나봐요. 요즘 너무 이런 충고를 많이 들으니 은근 스트레스네요..."


"아, 저도 그런 편인데 누구한테든 모든 걸 다 오픈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내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다 오픈하면 결국 내가 피곤해져서 적당히 공개해야죠...근데 저도 약간 훈련소 동기마냥 다 오픈하고 그러고 다니고는 있어요. 그런게 익숙한데...또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니까요.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다니는게 되게 피곤해보이고 어려운 것 같아요."


"그니까요 대리님! 저 매장에 있을 때는 이런 솔직하고 밝은 성격이 오히려 장점이었는데, 사무실에서 근무하니 이런 성격이 단점인건가? 그냥 마이웨이로 혼자 일만 하는게 좋은건가 그런생각도 들고요. 엠디라는 일이 꼭 업체 갑질해야하고 큰소리쳐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유연하게 자기스타일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무슨 고민인지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뭔가 엠디는 업체한테 으름장 놓고 잘 갈궈야 일 잘한다는 분위기가 없지않아 있죠. 근데 담당님처럼 업체한테 유하게 하고 그러면 모르는 사람들은 업체한테 끌려다닌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자기 방식대로 잘 끌고가면서 실적 내주면 아무말 안합니다. 저도 업체한테 갑질 하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처음에 잔소리를 좀 들었는데, 실적 잘 내니까 그게 쟤 방식인가보다 하고 터치안하더라고요."


"오, 좋은데요? 자기스타일대로 끌고가면서 실적 내는 거라니! 저는 주변에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너무 친절하게?받아서 그런걸까요. 어느분들은 엄청 친하게 형동생하던데, 저는 그러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도 그렇다고 막 업체랑 술먹고 돌아다니고 그런게 절대 아니고요. 가끔씩 친한분들한테 술마시고 한번씩 전화해서 속마음얘기했어요. 회사에서는 일부러 잘 안그러려고 했고요. 엠디 오래한 사람들은 업체랑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그러는데, 처음에 너무 순하게 대하는 거 보면 '쟨 일 제대로 못한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담당님도 업체랑 잘 지내는 건 좋은데 약간 강단있게 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여주면(액션용) 좋을 것 같아요.하하 저도 전화로는 뭐라하다가, 따로 나가서 전화할때는 좀 이해해주세요~사회생활해야죠 저도, 대신 실적내게 꼭 도와주세요~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대리님! 자기다움을 지키면서 하는게 좋은 것 같아요."

"화이팅입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요! 별거없어요~ 뭐 어떻게 하든, 실적만 나면 땡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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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사이다같은 S대리님과의 메신저가 내 마음을 청량하게 바꿔주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다. 내 스타일대로! 적당히 선을 지키며, 적당히 보여주지만 무슨 일을 하든 나다움을 잃지말자고 다짐했다. 어떻게 하든, 실적만 나면 땡! 명심해야겠다. 후련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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