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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Jan 21. 2024

상무님의 조언

경험과 연륜,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들

<송년회 회식>

  상무님의 앞자리에는 누구나 앉기를 두려워한다. 술을 워낙 잘 드셔서 앞에 앉은 이에게는 자꾸만 술을 따라줘서도 있지만, 아마 윗사람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약간의 어색함과 불편함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도 그 자리는 피해 처음부터 멀리 구석진 곳에 앉았지만, 상무님 앞에 앉은 같은 팀의 대리님이 눈에 밟혀 조금 시간이 지나 자리를 바꿔 앉았다.


  "상무님, 부문장님으로 일하시기 너무 힘드시지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점이 제일 힘드셨어요?"

워낙, 상사든 누구든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은 나는 상무님에게도 어김없이 질문을 던졌다.

 "음, 사실 여기까지 오기가 쉬웠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나는 좀 매번 운이 좋았던 것 같아. 내가 부문장을 맡고 나서 코로나가 터졌고, 그래서 사람들이 집밥을 많이 해 먹으면서 우리 축산, 수산도 많이 매출신장을 했지."

 "아, 그러셨군요. 운도 실력이고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항상 트렌드에 민감하시고 책도 매일 읽으시는 모습을 뵈니 너무 존경스러워요 상무님."


  이 날 상무님은 내게 아이들을 키우며 어떻게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시어머니와 일부러 가까이 살면서 도움을 받고 한 달에 한번 회사공동연차를 쓰는 날에는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적당히 갑, 을로 따지면 어머니께서 한참 갑이니 나는 적당히 내려놓고 뭐든 따른다고 했다. "에고, 예쁘다. 정말, 우리 와이프는 일은 안 하지만 결혼생활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우리 엄마를 어려워해. 우리 와이프가 너 반만 닮으면 정말 좋겠다. 절대 일 그만둘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다녀. 꼭." 하며 뜻밖의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옆에 앉은 과장님도 "이야기를 해보면 또래들하고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생각하는 마인드도 그렇고, 일찍 결혼하고 애들도 빨리 낳아서 그런가 철이 일찍 들은 거 같아요." 하면서 거들었다.


 요즘은 회식을 많이 피해 다니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술 한잔 마시며 상사와의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오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얻는 게 분명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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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 방, 팀 전략회의>

"자, 이제 가금육 차례야. 올해 리뷰를 간단히 하고, 내년도 전략을 한번 말해볼까?"

"네. 상무님. 가금육은 23년에 -00%로 매출 역신장에, 이익은+00% 신장했습니다. 23년에는 이런이런 점이 아쉬웠고 부족했는데, 내년에는 이 점을 보완해서 a전략과 b전략을 중점적으로 운영해보고자 합니다....(중략)..... 감사합니다."

"음, 잘했는데 너무 초보엠디인 게 티가 나. 이건 정말 딱 6개월밖에 안된 신입의 발표인 것 같아. 단순히 올해 부진했던 점을 리뷰하고 그걸 개선하는 게 내년도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되지. 엠디라면 상품을 좀 다르게 소싱을 하거나,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들을 해야 해. 좀 더 건설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직원은 올해 초 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예상한 대로 혹평을 받았다.


"과장님, 저 상무님한테 너무 초보엠디 티 난다고 전략답지 않은 전략이라고 소리 들었는데 어떡하죠?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 마, 시간 지나면 누구나 다 하게 돼. 나도 처음 왔을 때는 어리바리 뭐가 뭔지 몰랐지. 왔는데 난 이미 과장으로 왔고, 사람들은 직급에 대한 기대를 하고. 난 아는 게 없었고, 그래도 어떡해 그냥 하는 거지 뭐."


  그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와 일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 첫째를 키울 때, 나이도 어렸지만 육아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지금보다 정보도 없었고 친한 엄마도 없었을뿐더러, 주변에 결혼한 지인도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그냥 상황이 닥쳤으니 내 마음에서 자라는 모성애로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5년이 지나고, 둘째가 생겼을 때는 모든 게 수월했다. 우선 마음적으로 편안했다.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옷이나 육아용품은 물려받거나 큰애 때 쓰던 걸 쓰면 되고 아기는 어찌어찌 키우면 된다. 모유수유나 분유수유는 그때 상황 봐서 하면 된다. 셋째를 낳았을 때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물론 경제적이나,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육아를 못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마음적인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일도 육아를 처음 했을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 수월해질까?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최대한 완벽하고 꼼꼼하고 철저하게 해내야만 한다. 모르면 물어야 하고, 내 것이 될 때까지 익혀야 한다. 일이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까? 6개월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과연 발전했을까? 조금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브런치나 네이버, 그리고 서점을 통해 '일 잘하는 방법', '회사인간관계', '엠디가 일하는 법'과 관련된 글, 책을 찾아보고 가금육 엠디니까 '가금영양과 사양', '가금생산학', '닭고기/오리백과'같은 시중에 절판된 책들을 알라딘으로 사서 보려 하고, 어쨌든 어리숙하고 모자란 지금의 나보다 미래의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살아본다.


  그저 회사에서 누구에게 잘 보이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일한다기보다는 자아발전을 위해 일을 잘하고 싶다. 분명 지금의 경험이 언젠가 다른 일을 할지 모를 미래의 나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엄마는 아이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것이다. 남편과 가족들에게도 더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상무님처럼 이 회사를 20년 이상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13년은 다녀보기로. 내 나이 45살 때까지는 열심히 다녀보자! 경험과 연륜으로 내적으로 단단해지고 외적으로는 당당해질 40대가 기대가 된다. 일기일회,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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