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만사人事萬史
상앙은 엄격함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인물입니다.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로, 냉혹한 법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룬 명재상, 자신이 만든 법률에 결국 온몸이 찢겨 죽은 동양의 로베스피에르 등 그를 수식하는 별명은 많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3번에 걸쳐 살펴보고자 합니다. 3부작인 이유는 상앙이 마주했던 리더가 3명이었고 그 3명의 성향에 따라 상앙의 운명이 달라졌기 떄문입니다.
상앙이란 인물은 하나였지만 만난 리더에 따라 세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죠.
첫번째 이야기는 그를 처음 마주했던 리더, 양혜왕과 상앙의 이야기입니다.
상앙은 사실 죽기 얼마전에나 불린 이름이고 그는 생애 대부분을 공손앙(公孫鞅)으로 불렸습니다. 당시에는 성과 씨가 구분되어있었는데 그가 조그만 소국인 위나라(衛) 왕의 서자 출신이었기에 공손을 씨로 쓴 것입니다. 위나라 출신이란 뜻의 위앙(衛鞅)이란 별칭으로 불렸으나 이 글에서는 헷갈리기 쉬우니 상앙으로 통일하겠습니다.
당시에는 고국을 떠나 강대한 나라에 출사해 공을 세우고 입신양명하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상앙도 조그만 위나라에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당시 전국 7웅 중 가장 강력했던 위나라(魏, 상앙의 고국과는 한자가 다릅니다.)에 투신하게 됩니다.
당시 위나라는 천하의 중심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춘추시대의 강국인 진晉나라에서 갈라진 위나라는 옛 진나라의 알짜배기땅을 모두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 북쪽으로 조나라, 동쪽으로 제나라 등을 모두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이때 위나라를 다스리던 인물은 위앵이라는 인물로 훗날 혜왕(양혜왕)이라는 시호를 받게됩니다. 그는 명장인 방연과 공숙좌 등을 통해 이러한 위나라의 전성기를 잘 유지해나갔습니다. 상앙이 이 무렵, 위나라에 출사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상앙은 이떄 위나라의 재상이자 명장이었던 공숙좌의 가신이 됩니다.
어찌 되었건 당대 위나라의 최고 실력자인 공숙좌의 아래에서 상앙은 그 재능을 떨치고자 노력했습니다. 공숙좌는 일찍부터 그의 총명함과 재능을 알아봤지만 문제는 공숙좌 개인의 신조였습니다. 그는 국가에 상관없이 출사하는 당시 풍조를 무척 싫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히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의 다른 이름으로 공손좌라는 이름이 전해지는걸 보면 그 또한 위나라의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외국 인재들이 위나라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손자와 더불어 병법의 신이라 불리던 오기를 모함해 위나라에서 쫓아낸 것이 바로 이 공숙좌입니다. 그가 보는 상앙은 위험한 폭탄과 다름 없었습니다. 이렇게 총명한 인재가 위나라의 대권을 잡으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고, 외국으로 다시 떠난다면 위나라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래서 공숙좌는 상앙을 적당히 데리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공숙좌의 나이도 이미 백발을 헤아려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문왕을 온 혜왕에게 충고합니다.
"신이 데리고 있던 상앙은 뛰어난 인재입니다. 그를 저 대신 중용하십시오. 만약 중용치 않으시려거든 죽여버리십시오. 훗날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혜왕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상앙이 그렇게 뛰어났으면 자기가 몰랐을 리 없을텐데, 이제 이 명재상도 죽을 때가 다 되니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나봅니다.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공숙좌의 쾌유를 빌며 그의 집을 떠났습니다. 죄책감때문이었는지 공숙좌는 곧바로 상앙을 불러 "자네를 천거했는데 대왕의 안색이 좋지 않다. 아마 중용치 않을 모양이니 떠나게. 내가 자넬 죽이라 청했으니 사람을 보내 자네를 죽일걸세. 가서 자네의 재능을 펼치게."
상앙은 뭐라고 했을까요?
상앙은 피식 웃더니 "절 쓰란 말도 무시하시던 대왕께서 절 죽이란 청인들 들으시겠습니까?" 하고 태연자약하게 지냈습니다. 과연 혜왕은 상앙이 누군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신경을 꺼버립니다.
죽음을 당하진 않았지만 믿었던 동앗줄이 사라진 젊은 상앙은 이제 어디로 떠나야할까. 하고 고민합니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재주를 높이 사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사실 위나라 혜왕이 상앙을 놓친 것이라 보기엔 어렵습니다. 다만 위나라 조정의 몇 가지 인사관리 실패가 눈에 띄는 일화입니다. 먼저 공숙좌는 상앙이 인재임을 알았어도 그를 적극적으로 천거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계륵같은 사람들이 자주 보입니다. 지금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회사나 다른 팀으로 가게 되면 손해인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손해가 될 것 같은 지를 살펴 그 사람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리더가 보여야 할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알아보는 것은 단순한 탐색을 넘어 그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공숙좌는 그 재능은 알아보았으되 자신의 고집 떄문에 쓰지 못했습니다. 이는 혜왕도 마찬가지로 그 또한 공숙좌의 추천에도 상앙이 누군지조차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는 어마어마한 후폭풍으로 위나라에 돌아오게 됩니다.
공숙좌나 혜왕은 모두 이도 저도 아닌 조치를 통해 인재를 놓쳤습니다.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기 싫었던 중간관리자와 관리자의 말에 별 신경도 안쓰는 최고 리더의 환상의 조합입니다. 우리도 이미 회사에서 많이 본 모습일텐데요.
그렇다면 만약 내가 거느리고 있는 조직원의 재능이 나보다 뛰어난 걸 알게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의 자리를 위협할테니 내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대표에게 말해 새로운 팀을 구성하고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나을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라면 우물쭈물 시간만보내는 건 필요 없습니다. 빠른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보완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상앙의 첫 번째 리더는 그렇게 별 접점도 없이 끝나버립니다. 첫 번째 리더와의 모습에서 상앙의 모습은 '투명인간'이었네요, 그는 이제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상앙이 위나라를 떠나 어디로 향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위나라의 서쪽에 있던 진나라(秦)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진나라의 지배자였던 진나라 헌공은 순장을 폐지하고 오가작통법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통해 변방의 진나라를 서서히 신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를 경계한 위나라, 한나라 등이 진을 치고자 하였으나 진 헌공은 오히려 위나라를 쳐 하서의 땅을 수복하는 한편, 소량을 공격해 1화에서 나왔던 공숙좌를 포로로 잡았다가 위나라에 돌려보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진 헌공은 이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아들인 영거량이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주변의 강국인 위나라 등이 진나라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와중 왕위에 오른 이 젊은 왕은 '구현령'을 내립니다. 구현령은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왕의 칙령입니다. 이때 상앙이 등장합니다. 공숙좌가 죽은 뒤 상앙은 구현령에 응해 자신이 스스로 출세해보고자 결심하는데요, 그는 다른 선비들로 인해 효공을 만나기가 어렵자 효공의 측근인 경감(경씨성을 지닌 환관입니다.)에게 줄을 대어 효공을 만납니다.
이때 상앙은 효공에게 '성인의 도'를 설파합니다. 당장 나라가 어찌될 지 모르는데 삼황오제와 같은 성인의 도라니.. 효공은 이내 이 지루한 이야기에 코까지 골며 졸고 맙니다. 첫만남이 소득없이 끝나자 상앙은 다시 경감에게 부탁해 효공을 만난 뒤, 하은주 3대 성군들의 이야기를 하며 '천자의 도'를 이야기합니다. 첫 만남때보다는 흥미를 가지는 듯 하던 효공은 이번에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감이 아주 난처했겠죠? 아마 효공에게 혼 좀 났을겁니다.
그런데 상앙이 또 사정을 합니다. 경감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효공을 알현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자 상앙은 '패자의 도', 즉 패도를 설파합니다. 패도는 부국강병을 이룩한 뒤, 칼과 창으로 천하를 얻는 방법입니다. 이에 효공은 상앙에게 흥미를 가졌고 마지막 네번째 만남에서 상앙이 이 패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효공은 며칠이 지나도록 넋을 잃은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모실 오너가 어떤 것을 원하는 지 정확히 파악한 것입니다. 사실 효공이 상앙을 면접본 것이 아니라 상앙이 효공을 면접 본 것입니다. 상앙은 일찍부터 법가의 일종인 형명학을 공부했던 사람이기에 성인의 도니 천자의 도니 하는 것은 그에게도 싫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패도를 같이 할만한 군주인지, 효공을 평가한 것입니다.
요즘 직원이 회사를 면접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는 이미 2500년 전에 그렇게 면접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면접 이후, 상앙은 효공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는 효공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법가 정신에 근거한 여러 개혁을 실시하게 됩니다. 그는 이전의 오가작통제를 개편해 십오제로 개편하여 진나라 백성들에게 상호감시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부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중농억상 정책을 실시해 세금수입을 증대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합니다. 또한 노예제도를 폐지해 지주,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갈 양인의 수를 늘려 재정과 국방을 모두 튼튼히 합니다. 또한 각종 악습을 타파하는 한편 타인의 죄를 신고하면 상을 주고 이를 알면서도 숨기면 벌을 주었습니다. 또한 수도를 역양에서 지금의 시안 부근인 함양으로 옮깁니다. 2천년 수도였던 '장안'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데 상앙은 군공수작제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20등급을 만들고 공이 없으면 직위를 빼앗고 공이 있으면 부귀영화를 약속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공을 세워도 신분이 낮으면 출세할 수 없었는데 이를 바꾸어 적의 목을 하나 베어올때마다 1급씩 계급을 높여주었습니다. 사극에서 많이 들리는 수급이란 말이 여기서 탄생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변법개혁을 발표하여도 모두가 반신반의였습니다.
특히 전장에서 적군 하나 벤다고 승급을 시켜준다니, 모두가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상앙은 꾀를 내어 큰 통나무를 함양성 남문에 세우고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면 10금을 주겠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아무도 옮기지 않자 50금을 주겠노라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누군가가 북문으로 나무를 옮기자 상앙은 50금을 그대로 주며 나라에서 백성들을 상대로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며 새 법령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전국시대 최강국, 진나라가 각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년 뒤, 당시 진나라를 표현한 말 중에는 이 같은 말이 있습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지 않으며 산에는 도적이 없다. 집집마다 풍족하며 사람마다 마음이 너그러워졌고 백성은 나라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히 싸우되 사사로이 싸우는 것은 두려워했다.'
이렇게 변법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뤄내자 상앙은 서쪽으로 ㄴ누을 돌립니다.
당시 위나라는 마릉 전투에서 태자 신과 대장군 방연이 손빈에 의해 죽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상앙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여 위나라가 점거한 옛 진나라 땅인 하서 공격을 요청합니다. 이때 대군을 거느리고 하서를 지키러 온 위나라 장수는 위나라의 공자 앙이라는 인물로 그는 상앙과 친분이 두터웠던 자였습니다. 특히 공숙좌와 함께 상앙을 추천했던 인물이기도 하였는데 상앙은 그에게 회담을 요청합니다. 공자 앙은 자신과 친분이 깊던 상앙의 말에 의심없이 회담장으로 갔고 상앙은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는 위나라 군을 향해 기습을 펼쳐 마침내 황하 서쪽의 너른 땅을 모두 수복합니다.
자신의 친구에게 뒤통수를 쳐 나라의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황하 근처 안읍에 수도가 있던 위나라는 이 일로 수도를 대량(훗날의 개봉 인근)으로 옮깁니다. 전편에 나왔던 위나라 혜왕이 양혜왕으로 불리는 것은 이때 대량지역으로 수도를 옮긴 뒤, 위나라의 별명이 양나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상앙은 고토를 수복했고 효공은 날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이 공을 높이 치하해 상앙에게 대량조라는 벼슬과 함께 '상'지역을 봉토로 하사합니다. 원래 공손앙이었던 이 인물이 상앙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위나라를 떠난지 십수년, 그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조량이라는 은자가 우연히 상앙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옛 진나라의 명재상이었던 백리해와 그를 비교하며 법과 벌로써 사람들을 억지로 따르게 하여 적을 많이 만들었으니 이제 자중하고 은퇴해 조용히 사는 것만이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상앙이 이를 들을 리 없었죠.
어쩌면 상앙의 생각은 당연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효공과 상앙은 서로에게 구원자였습니다. 효공은 처음엔 그를 의심하며 쓸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쓰고나자 의심없이 모든 것을 밀어주었습니다. 마치 제갈량과 유비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진효공과 유비가 달랐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말을 무조건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살아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효공은 같은 이유였지만 상앙의 말을 무조건 신뢰합니다. 다음 편에서 말하겠지만 그는 상앙에게 전권을 부여하였고 그로 인해 자신과 관련된 주변인까지 고통을 당합니다. 하지만 효공은 이를 묵인합니다. 그가 상앙에게 해준 대우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해준 것 이상입니다. 하지만 동반자적인 관계를 지향했던 유비와 다르게 효공에게 상앙은 자신을 대변할 페르소나였으며 인형이었습니다.
그는 상앙에게 막대한 힘을 주되, 자신은 뒤에서 방관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때문에 엄격한 변법에 대한 불만은 모두 효공이 아닌 상앙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모두 변법이 필요한 걸 알았고 그로 인해 성과도 얻었지만 불평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진나라 왕실의 힘은점점 더 강해졌고 상앙은 시한부 정치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상앙에게 절대권력을 쥐어준 효공이 없어지면 상앙도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조직에나 2인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표와 함께 창업 때부터 고생한 개국공신일지도 모르고 중간에 합류한 경력자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밑에서부터 올라온 내부 인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인자의 권한과 존재감은 모든 조직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상앙과 같은 유능한 사람이 전권을 쥔다면 진나라처럼 단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할지도 모릅니다. 조직과 오너에게는 이는 좋은 일이 되겠지만 반드시 그를 향한 진통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은자였던 조량은 상앙에게 이를 말하며 그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조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앙은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같은 조언을 거절합니다.
1인자와 다름없는 2인자들이 늘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진나라 왕실 입장에서 상앙은 대를 이어 충성할 지, 아니면 자신의 봉토에서 또다른 진나라를 시작할 지 알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유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직장에서 우리는 흔히 능력없는데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을 많이 욕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조직이 건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정확히 말하면 대표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대표나 오너 입장에서 고위 임원은 멍청하고 부지런할수록 자신에게 편합니다. 그 아래에 있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직원들이 알아서 성과는 만들테니까요, 그리고 팀장급까지 적당히 승진시켜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능력좋은 사람이 2인자의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조직은 반드시 갈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후대의 많은 2인자들을 스스로를 낮춰 위기에서 피했습니다만, 너무 빨리 태어났기 때문일까요?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상앙은 그런 생각 따윈 없었나봅니다.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친구의 뒤통수를 쳐 나라에 보답하고 오로지 진나라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에게 첫 위기가 닥칩니다.
바로 영원할것만 같았던 자신의 구원자, 효공이 44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