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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사만사

동아시아 인재 선출의 변화와 시사점

인사만사人事萬史

by 만수당


중국 역대 왕조에서 인재를 선출하는 방법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제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으며, 현대 경영HR에서의 평가와 인재 선출 방식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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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나라의 향거리선제(효렴제도)는 지방 유력자들이 추천한 인재를 중앙 정부에서 평가하여 등용하는 추천제 방식이었습니다. 추천 대상자는 학문적 능력과 덕망을 갖춘 자로, 지방 관리 및 유지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평가 기준은 주로 윤리적 덕성과 정치적 충성심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지역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었으나, 추천자의 관계망에 의존하는 구조로 인해 부패와 연고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후한 말기에 가면 서로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 효렴이나 무재로 천거하며 공정한 관리 선발에 문제가 생겨 난세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http-__san.nobuwiki.org_pic_sancg_13_0638.jpg?type=w800 코에이가 제작한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의 진군. 구품관인법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죽간이 9개다.

이 같은 교훈을 받아 위나라 시절에는 진군이 구품중정제(구품관인법)를 고안합니다. 위진남북조시대의 구품중정제는 중앙에서 임명한 중정관이 지방의 인재를 9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계층화된 선발 제도였습니다. 관리를 9등급으로 나눈 것은 조선시대는 물론 현대 공무원 제도에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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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품중정제는 향거리선제와 같이 결국 지방 인재를 직접 추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출신 배경과 가문이 평가에 큰 영향을 미쳐 귀족 중심의 인재 등용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물론 체계적인 등급 평가를 통해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에 파견된 중정관들이 출신 가문에 따른 편향된 평가로 인해 계층 고착화가 발생했고, 유능하지만 가문이 약한 인재는 기회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오호십육국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거치며 중국에는 구품중정제를 기반으로 성립된 문벌귀족집단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군진세력이 주요 권력층이 되었고 이 같은 체제는 수나라가 중국을 다시 통일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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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년만에 중국을 다시 통일한 수나라의 문제는 통일제국에서의 황제권을 강화시킬 필요를 느꼈고 이는 일종의 공개시험인 과거제로 연결됩니다. 수나라 이후 도입된 과거제도는 시험을 통한 공개 선발 방식으로, 당나라와 송나라 시기를 거치며 정착되었습니다. 과거제는 유교 경전과 학문적 성취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출신과 가문에 관계없이 시험 성적으로만 인재를 선발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강조했으며, 학문과 능력을 중심으로 한 선발 구조는 장기적으로 학문적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제는 암기식 학습을 중시하여 실제 행정 능력과는 거리감이 있었으며, 시험 준비에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해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유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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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인재 선출 방식은 시대적 필요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신라 원성왕의 독서삼품과는 유교 경전의 이해도를 평가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시험이었습니다. 학문적 소양과 충성을 평가했으나 귀족 중심 사회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독서삼품과는 6두품들의 꿈만 자극한 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고려 광종은 중국의 과거제도를 모방하여 능력주의 기반의 관리 선발을 시행했으며, 왕권 강화와 함께 학문적 우수성을 검증하는 시험으로 권력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시험 감독관인 지공거와 문객(수험생)이 사제관계로 엮이며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고려 중기 문벌귀족으로 파벌화되어 고려 정치에 심각한 폐단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후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를 거치며 고려의 과거제는 유명무실하게 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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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선 시대의 과거제는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뉜 체계적인 구조를 통해 학문, 군사, 기술 분야에서 인재를 선발했습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여 학문적 성취를 사회적 계층 이동의 주요 통로로 삼았습니다. 특히 조선에서는 노비만 아니면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모두 과거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양반 계층이 지속적으로 과거시험에 도전하고 합격하며 계급으로 고착화되버리고 말았습니다. 특히 양란을 치러낸 후기에는 부패와 과도한 경쟁으로 시험제도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지방의 선비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한평생 공부했지만 붕당과 세도정치로 인해 그들은 입격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유명무실화된 과거제는 갑오개혁과 함꼐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러한 역사적 제도들은 현대 HR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투명성과 공정성이 필요합니다. 향거리선제와 구품중정제는 추천과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연고주의와 부패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현대 HR에서는 데이터 기반의 평가 시스템과 다양한 평가자를 통해 공정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둘째,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구품중정제와 독서삼품과는 출신 배경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현대 HR에서는 학력, 출신지, 성별 등 외적 요인보다는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능력 검증과 실무 적용성이 필요합니다. 과거제도는 학문적 능력을 평가했지만 실무 능력을 검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현대 HR에서는 프로젝트 수행이나 업무 시뮬레이션 등 실제 업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추가해야 합니다.


넷째, 지속적인 피드백과 성장 지원이 필요합니다. 과거제도는 단회성 평가에 그쳤으나, 현대 HR에서는 성과 리뷰와 피드백을 제공해 구성원의 발전을 지원해야 합니다.


다섯째, 개방성과 혁신이 중요합니다. 과거 제도의 장점 중 하나는 출신과 관계없이 공개 경쟁을 통해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현대 HR에서도 공개 채용과 내부 경쟁을 통해 인재의 자발적 성장을 유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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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인재 선출 제도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발전과 퇴보를 거듭해왔습니다. 현대 경영과 HR에서는 투명성과 공정성, 포용성, 실무 적용성을 고려하여 인재를 발굴하고 조직 내 성장을 지원하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조직의 장기적인 성과와 혁신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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