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가는 길

2. 강경, 갱경, 갱갱

by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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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50분, 용산역에서 강경을 내려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바로 가는 차편은 모두 매진이라 서대전역에서 환승해야 했다.


강경의 강결이 일품인데 날이 흐려 걱정이 많았다. 갠다고는 해도 흐린 하늘이 한번에 깨끗하게 개어질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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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대전과 논산을 지나며 들 너머로 파란 하늘이 비추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논산 평야 너머로 강경이 나를 부르듯, 푸른 하늘이 시리게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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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가 되기 전 도착한 강경역 너머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곧 바로 해가 뜨며 하늘이 쾌청해지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이라 하기에는 따가웠고 여름 바람이라 하기엔 시원했다.


9월 허리께의 강경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행사 시작은 오후 2시. 아직 네 시간 여의 여유가 있다.

네 시간이면 강경읍내를 모두 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강경역은 1911년, 호남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했다.

강경은 전라북도와 맞닿은 지역으로 익산과 논산의 경계에 위치해있다.

강경역 다음이 바로 익산 함열역이다.


강경역은 충청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기차역인 셈이다.


예전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56년에야 구역사가 다시 준공되고 57년에는 연무대역과 연결하는 강경선이 개통되었다. 하지만 이전 이야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강경은 철도 운송의 핵심에서는 비껴져있었다. 이후 87년에 지금의 역사가 준공되었으나 이전 100만여명이 승하차하던 강경역은 점점 줄어 이제는 1년에 30만명도 내리지 않는다.


젊은 세대에게는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이 떨어져 죽은 역 정도로 기억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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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역에서 30m 정도 걸어나오니 길에 옛 강경포구의 영화를 알리는 듯한 안내가 붙어있다.


18세기 이후 약 2백여년간 강경은 그야말로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가까이는 논산과 부여, 홍성, 익산에서부터 멀리는 공주, 대전, 전주, 청주까지 모두 강경상권에 속해있었다고 한다.


그 세가 얼마나 흥성했던지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간혹 강경 대신 전주를 넣기도 하지만 대개 평양, 대구, 강경을 3대 시장으로 꼽는다.)으로 불린다.

평양이 고조선때부터 이어져내려온 고도이자 조선 제 2의 도시의 위상을 가졌고 사행길이 자나가 상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점, 대구가 드넓은 영남의 물산이 모이는 수부이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이었던 점, 강경과 함께 꼽는 전주가 조선왕조의 관향이자 풍부한 물산을 가진 호남의 수부였음을 감안한다면 일개 현의 포구였던 강경이 평양, 대구, 전주와 같이 이름을 어울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택리지에도 강경에 대해 한 달에 여섯 번씩 큰 장이 열려 사방의 물산이 모이며 배가 밤낮으로 드나드는 큰 도회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강경은 전라도와 충청도가 모이는 곳이었고 육지와 바다, 그리고 강이 만나는 곳이었으며 들과 산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렇게 강경은 조선후기 지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특히 현재도 다른 세 도시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과거 금강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의 대표 고을로서 강경이 자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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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경의 기억은 곳곳에 남아있다. 강경을 사투리로 갱경이나 갱갱이로 부르곤 하였는데 갱갱이에서 강경이라는 음차가 나온 것인지, 강경을 편히 부르는 말에서 갱갱이가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강경에 대한 표기가 등장하므로 갱경이나 갱갱이가 더 나중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곳 갱경사람들은 과거의 영광 덕인지 자존감이 강하다. 스스로 강경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내가 만난 사람중 어느 한 사람도 고향을 낮춰보거나 비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날로 쇠락해가는 고향을 안타까워했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자신들의 고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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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니 대흥 시장이다.

대흥리는 강경읍의 중앙에 위치해있다. 강경역과 버스터미널이 위치해있고 큰 시장이 있다.

다만 토요일 오전임에도 시장은 한산했다. 여기저기 가득한 백제라는 상호에서 1400년 전, 백제 수도 사비의 외항역할을 했을 강경의 영화가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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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화를 뒤로 하고 대흥시장을 지나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생각과 달리 논산 경찰서를 끼고 시장 초입까지 카페가 제법 많다. 홀로 커피를 마시던 내게 카페 사장님은 근대거리가 얼마전 공사가 끝났으니 꼭 들러보라 전해주시며 맛좋은 식당도 몇 개 추천해주신다. 지역을 사랑하는 강경사람의 마음이 커피잔에 가득이다. 아메리카노 하나를 마셔도 그릇 가득 같이 곁들여 먹을 것을 내어주신다.


거리를 더 돌다보니 여기저기 젓갈 가게가 보인다.


지금이야 마트가 있고 인터넷 쇼핑몰이 있어 내륙에서도 신선한 생선을 바로 구매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인근의 대읍에서 생선을 구하려면 강경까지 나와야하거나 중간상인들이 강경에서 구매해서 각 장에 풀어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운송과 보관을 위해 소금에 생선을 절였고 이것이 지금의 젓갈로 이어졌다.

곰소나 광천같이 바다를 끼치않았음에도 신선한 생선이 하항河港이었던 강경에 있으니 젓갈로 유통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헀다. 군산과 포항 등 바다를 낀 지역에서는 물고기를 해풍에 말리는 것이 더 대중적이었는데 당시에 물산이 모여 돈이 돌던 강경에서는 소금을 아낄 이유가 없었으니 젓갈로 담았다.


그 젓갈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지금도 젓갈하면 강경의 맛깔젓을 제일로 친다. 광천은 신선한 새우가 많이 잡혀 새우젓이 일품이고 곰소는 직접 염전에서 만든 소금을 써 맛이 좋은데 강경의 맛깔젓은 젓갈의 종류가 다양하고 회전이 빨라 신선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인지 강경에는 아직도 수십 곳 이상의 대형 젓갈매장이 즐비하다.

길에 풍기는 젓갈냄새가 구수하고 식당에 가 젓갈백반으로 먹어도 일품이다.


IMG%EF%BC%BF1370.jpg?type=w773 네이버블로그 '러블리려니(https://blog.naver.com/aryun8970/223972057694)'님의 젓갈백반 포스트 인용

맛있는 젓갈백반을 먹고도 사진을 찍지 못해 다른 블로거분의 글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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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거리로 길을 틀며 지나니 길가에 마른 포도가 여럿 보인다. 건포도도 이렇게 말려 만든다는데 열린 포도가 벌써 마른 걸 보니 이제 가을이긴 가을인가 하며 바삐 길을 재촉했다.


가을 품을 한 뼘이라도 놓치긴 아쉬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