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기회 안에 있는 사람

by 만숑의 직장생활

우리 팀에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두 팀원이 있었다. 둘 다 한 업무를 맡아,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첫 입사 후 3년 동안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묘한 불안감이 찾아오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 다른 일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였을까. 그 즈음에 김 대리와 이 대리는 둘 다 조금 지쳐 보였다.

마침 그 무렵, 팀에서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였지만, 업무 범위가 꽤 넓고 복잡한 일이었다. 담당자였던 나는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Part.1 “어쩔 수 없죠”

김 대리와 아침 커피를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 그가 업무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터라, 이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

“요즘도 전에 하던 일 계속하고 있는 거지? 이제는 다른 업무도 좀 해볼 시기 아니야?”


김 대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죠. 팀장님이 다른 업무 시켜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던데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굳이 먼저 말 꺼내는 것도 좀 웃기고요. 제가 다른 일 하면, 지금 하는 일 맡아줄 사람도 딱히 없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받은 일이나 열심히 해야죠. 이렇게 일하다가... 기회 있으면 다른 팀으로 옮기려고요.”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순간 대화가 딱 멈췄다. 괜히 내가 더 묻는 게 오버하는 것 같았고,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기도 했다.

그 이후로, 김 대리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과제 이야기는 다신 나오지 않았다.




Part.2 “저도 들어가봐도 돼요?”

며칠 뒤, 업무 미팅이 열렸다. 과제는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었고, 대략적인 일정과 범위도 잡히기 시작한 상태였다.

회의실에 들어서다 문득 보니, 이쪽 업무와 관련이 없던 이 대리가 한쪽에 앉아 있었다. 팀장이 자리에 앉으며 그를 발견하고 반쯤 농담처럼 물었다.

“이 대리, 왜 들어와 있어?”

이 대리는 어색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 지난번에 잠깐 말씀 주셔서요. 괜찮으시면 그냥 옆에서 얘기 좀 들어보려고요.”

팀장은 “그래?” 하고 짧게 웃더니, 더 묻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회의는 그대로 이어졌다.

초반 몇 번의 미팅에서 이 대리는 대부분 듣는 쪽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메모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회의가 이어지면서, 그의 목소리가 간간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존에 하던 방식이랑 연결하면, 일정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팀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 대리를 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말했다.

“이 대리도 이쪽 일에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어때, 같이 한번 해볼까?”




우리는 흔히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하고, 실력을 쌓으라는 막연한 자기계발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기회는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슬며시 들어와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도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동안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을 기다리거나,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환경을 탓하고, 분한 마음에 ‘어디로 옮길까’를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대리가 한 일은 별거 아니었다. 한 발짝 들어와서, 듣고, 묻고, 자기 생각을 조금 보탰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과 ‘기회 안에 있는 사람’으로 갈라놓았다.

그때 이후로, 기회가 된다면 김 대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조금은 민망해도, 조금은 눈치가 보여도, 문이 살짝 열려 있으면 먼저 안을 들여다보라고.

회사는 생각보다 말없이 들어와 앉은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